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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에서 생명으로(로마서5:12-21)
고영수 2022-05-28 추천 0 댓글 0 조회 555
[성경본문] 로마서5:12-21 개역개정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망에서 생명으로(로마서5:12-21/2022.5.29.오전)

 

1. 아사리 게이따(浅利慶太,1933-2018)는 극단 사계를 창설하고, 그곳의 예술총감독겸 대표로 지내면서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켓츠 등을 무대에 올려 성공을 거두면서 일본 뮤지컬의 대표적인 연출가로 명성을 날리면서, 상업성을 가진 기업으로서 극단사계를 성장시킨 장본입니다.

그는 신인배우를 선발하면서 오디션에서 반드시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10년 동안 참아낼 수 있느냐고,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대부분은 1년 이내에 그만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배우는 성장하는 속도와 시기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않냐고 하면서, 늘 타인의 시계만 쳐다보다가 스스로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소질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10, 15년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기술과 능력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면서 뛰어난 배우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인내하면 고생하고 노력한 만큼, 소질과 인격적인 깊이가 배어난다고 했습니다.

아사리 게이따는 신입단원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은 지금까지 공평하게 대우받는 그런 사회에서 성장했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불공평한 세상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본말에 きこそ上手なれ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은 누구라도 좋아하는 일에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기 때문에 그래서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어도 열정을 가지면 그곳에서 무언가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는,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주일성수 잘하고 십일조 생활하면서 선하게 살면 이대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같습니다.

과연 이런 우리들의 생각대로 우리의 미래가 이어지리라 생각합니까?

 

2.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서 첫사람 아담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2: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는 이 말씀이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언약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한 약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는 이 나무의 열매 이외에는 온갖 좋은 열매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첫 사람 아담은 이 언약을 쉽게 깨트렸고, 그 대가로 저주의 고통과 영원한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뱀을 통해 아담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금단의 열매를 먹어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말에 탐욕이 생겼고, 하나님처럼 될 줄로 생각하고 먹었지만,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의 12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6천여년 전에 일어난 아담의 범죄가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본문이 반복하고 있는 내용인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실 때,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부인 하와뿐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오고오는 수많은 후손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3. 지난 22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두려움에 빠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손쉽게 항복할 줄로 생각했는데, 전쟁은 예상외로 3개월을 넘기면서 장기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볼로디미르 제렌스키 대통령이 국가동원령을 내려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남자들은 총을 들고 나와 나라와 민족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제렌스키 대통령이나 국민들은 러시아에 순순히 항복해서 전쟁을 회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통령의 명령입니다.

제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 만일 그가 항복하면 국가 전체가 항복하는 것이고, 그가 결사항전하면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대표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은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이고, 아담이 그 언약을 깨트렸기 때문에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사망의 고통을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 오늘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 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죄가 많은 사람을 저주와 고통과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행동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입니다.

 

4. 짐승은 죄를 짓거나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은 본능을 따라 사는 인격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출생함으로 그 분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지, , 의로 인해서 죄가 무엇이며, 죄의 대가가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의로운 일은 무엇이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이고,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알게 모르게 죄를 지으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율법에 관한 내용을 첨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3절에 보면, 율법이 없는 시대에도 이 세상에는 여전히 죄가 있었지만, 문제는 그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는 죄를 깨닫지 못했으니 무슨 죄를 지어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라는 기준이 없으니 죄에 대하여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책망하거나 고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내고 만들어진 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분명히 잘못되었지만,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법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문제는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지어도 죄가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도 죄는 관영했습니다. 그 증거로 율법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5. 어떤 사람들은 재치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출생한 영아가 곧 죽는다면 그 아이는 죄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실제로 죄를 짓지도 않았으니 그는 무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가 죽었으니 죄인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도,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아담이 범한 죄, 곧 원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생하자마자 죽음을 맛보는 그 죽음이 죄가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이것을 가리켜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고 했습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면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사망이 왕노릇 하게 된 이 사실을 알리고 고발하기 위해서, 율법이 들어온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죄로 드러나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죄로 인해 양심의 고통을 받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율법이 들어와서 이런 행위에 대해서 법적인 근거를 들이대면서 그들의 죄상을 만천하에 공개되고 하나님의 의로운 법정에 고발까지 당하고 말았으니, 인간이 느끼는 절망감과 죄가 주는 사망의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15절에서 한 사람 아담의 죄를 통해서 사망이 왕노릇한 것처럼, 또 다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은혜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을 통해 모든 인류가 죄아래 갇혀 저주와 사망아래 놓인 것처럼, 둘째 아담으로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을 의와 영생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때문에 억울하게 죄인되었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은,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은 단순하게 죄가 없는 이전 상태로, 저주와 죽음과 고통이 없었던 그때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의 아담은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그런데도 언제든지 죄의 유혹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고, 그래서 마귀는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할 수 있었고, , , 의를 통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욕심을 따라 잘못 선택함으로 죄에 사로잡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완성은, 두 번 다시 타락할 수 없는, 두 번 다시 유혹을 받을 수도 없는 더 완벽하고 더 놀라운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가 누릴 영광은 에덴동산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지, , 의 대신에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으로  왕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담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지만, 아담은 정욕과 불순종으로 우리에게 죄와 사망을 물려줬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누구를 나의 대표자로 인정하겠습니까? 첫 사람 아담인가? 아니면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겠습니까?

 

7. 맨발의 성자로 불리는 20세기의 성자 썬다씽은 인도 북부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기독교를 박해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미워하고 박해할수록 마음의 평안을 잃고 마침내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한 줄기 빛이 방안에 가득해지며 그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썬다씽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집안에서도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굽히지 않자 가족은 그를 추방할 때, 도시락이라고 준 음식 속에 독약을 넣었고, 그는 길에 쓰러져 죽어갈 때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살아났습니다.

16살이 되면서 인도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여행을 나섰고, 가는 곳 마다 박해를 받았지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12:24) 말씀에 힘입어 담요 두 장과 성경책 한권을 소유한 채 복음을 전하다가 1929, 40살에 티벳을 향해 전도여행을 떠난 뒤로 영영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지금까지 비밀에 쌓여 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를 미워하고 박해하던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그런 사람도 사도 바울처럼 오직 십자가 복음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에는 감동이나 감사나 기쁨이나 열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자녀된 우리의 삶은 연극배우가 가진 열정은커녕 차갑게 식고 말았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나에게는 나누어 줄 사랑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은 내가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면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평범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것들도 새롭게 신기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림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 인생이 아니라 그분을 위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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