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3-11 개역개정
-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두려움이 없는 인생(고린도전서15:3-11/2024.3.31.오전)
1. 죠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74세)는 17살 때, 다이빙하다가 물속의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척추가 부러지는 등 전신마비의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목 아래로부터는 자신의 힘과 생각과는 상관이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평생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직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친구 신디가 찾아와서 그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에 대해서 코웃음을 쳤지만,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분도 나처럼 똑같은 고난을 겪으셨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면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고, 그분의 사랑이 그녀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32살이 되던 1979년에는 죠니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나라에서 상영되었고, 한국에도 1982년 6월에 죠니라는 제목으로 보이스사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출판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이 책의 서문에서, 하나님은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저의 필요를 잘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을 때는 머리를 약간 돌리는 것 이외에는 몸의 어느 부분도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너무 두려웠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2. 어느 날 누군가가 침대 곁에 "잠잠하고 내가 하나님임을 알라"는 시편46:10절의 말씀이 기록된 액자를 갖다 놓았고, 그녀는 그 말씀을 보면서 지옥 같은 고통의 수렁 속에서도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면서, 나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훨씬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제게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녀는 나를 침대에 묶어 놓은 이 울타리는 나를 구속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위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세월을 이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는 것은 끔찍하지만,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싱싱한 만나를 나는 얻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염려와 잘못된 생각을 내려놓고 매일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을 쓴 작가로, 유명한 화가로, 방송인으로, 장애인들을 돕는 일과 기독교계의 지도자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죠니 에릭슨 타다의 이야기는 어느 불행한 장애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인생을 찾아와 새 힘을 주시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은, 우리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입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과, 우리도 영광의 부활에 참여하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지난주에는 조그만 사업을 하는 32살 일본 청년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열심히 벌어도 일본 정부가 이래저래 다 가져가고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든다고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여간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내가 당신과 당신의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했더니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현대인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 제일 힘든 부분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경제가 어려운 요즈음, 사업은 물론이고 직장 생활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언제 정리 해고될지 모르고, 가정을 만들면 그 가정을 먹여 살리는 일이 두렵고, 세월 가는 것이 두렵고, 죽음이 두렵고, 질병과 수많은 문제로 일어나는 인생의 고통이 두렵고, 내일에 대한 불안함이 인생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범죄자들은 쫓기는 두려움, 승부사들이나 도박꾼들은 패배의 두려움,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결핍과 가난의 두려움, 사랑을 잃고 버림받는 두려움에 갇혀 있습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이 당하는 두려움, 사법고시 같은 시험을 앞둔 사람들의 불안함, 해산의 고통속에 맛보는 산모의 두려움, 어린아이들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세상을 살면서 두렵지 않은 것이 없고,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3. 그렇다면 소망을 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인생이 왜 두려워하고, 왜 불안해하며, 왜 스스로 고통해야만 합니까?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도 두려워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래로 인생은 두려움 속에 사는 존재요 두려움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자의 은총을 누리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도 불안해하지 아니하고, 죽음 앞에서도 침착하고, 신앙의 핍박을 당해도 당당하고,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고, 병자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함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고난 속에서도 감사 찬송이 넘치며,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원하는 것은 다 소유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그렇게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죽음에 임해서는 그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사력을 다하며 죽음을 거부하는데, 무엇이 우리 기독자를 이같이 담대하고 확신에 넘치는 삶을 살게 합니까?
그것은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근본이 되는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롬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고, 롬 5:12절에도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세상 부귀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행복하고 편안하고 기쁘게 살고자 하지만, 죄는 우리를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죄는 사람이 어디를 가고 무엇을 행하던지 평생 우리를 따라 다니면서 죗값을 치르라고 재촉합니다. 이러한 죄의 추적에서 벗어날 자는 아무도 없으며, 그 죄의 값은 영원한 죽음뿐입니다.
4. 어디 그뿐입니까? 그 죄값은 성경에 보니,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른"(출20:5)다고 하였으니, 죄는 후손들까지 저주받고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은데 가보면 망하고 평안이 없고, 어려움은 점점 가중되고 그래서 인생 사는 것이 다 고통일 뿐입니다.
빅톨 위고의 작품인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그 두렵고 지긋지긋한 가난함 속에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조카들을 위해서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4번의 탈옥을 시도한 결과 19년의 형을 언도 받고, 도중에 가출옥되지만 집요한 자벨이라는 형사의 추적을 받으면서 죽음이 찾아오기까지 20여 년의 세월을 도망하며 살아갑니다.
정직하게 살고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그 죄값에 대한 추적은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현실이요, 영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위협하는 이 죄의 세력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와 고통과 죽음을 대신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니 더 이상 추격받을 이유도, 두려움에 떨 이유도 없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인생의 종말이 죽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죽음이 도리어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요 풍성한 생명의 넘침이요, 환희요 능력이요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두려움 대신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불안 대신에 참 자유와 소망에 넘치는 것입니다.
5.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3일 만에 부활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장래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과연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죄 문제가 해결된다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시 살되 영원히 사는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코 신화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열두 제자와 500여 명의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목격되었고, 사도바울에게도 부활의 주님은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26장에 보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에게 부활의 사실을 증거 하였고, 베드로도 공회 앞에서 이 사실을 증거 하였고, 그 증거가 오늘 우리에게도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온 세상에 공개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각에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우리의 부활까지도 확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요11:25-26)라 하셨고, 요14:3절에는,"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심으로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미래까지 보장하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장래를 아무도 보장해 줄 수 없지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셨습니다.
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도에게 무한한 확신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신성 모독죄로 불법 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지만, 그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온 세상과 우주 가운데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지만, 이 부활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 믿음의 길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우며, 얼마나 귀한 은혜의 길인가를 나타내셨습니다.
세상의 종교들처럼 거짓된 것을 믿고 따라가다가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그런 길이 아니라,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축복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초라하다고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존재요, 잘못되고 싶어도 잘못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부활의 영광과 최후의 승리뿐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1:12)다고 했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이 그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으며,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으며, 지난주에 행한 성찬과 세례가 또한 이 사실을 증거하는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지금 이 거룩한 자리에 참여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고, 우리의 모든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고 살아가는 이것이야말로 저와 여러분이 주께 받은 축복이요 능력이요 영광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더는 우리를 두렵게 만들 수 없고, 불안에 갇히게 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도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고통과 실패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저주와 슬픔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3일 만에 그 분의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사, 우리의 영원한 구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