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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선택(로마서10:16-21)
고영수 2024-04-20 추천 0 댓글 0 조회 258
[성경본문] 로마서10:16-21 개역개정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스라엘의 선택(로마서10:16-21/2024.4.21.오전)

 

1. 교회 출석하고 있는 어느 고등학생의 부친을 전도하기 위해 목사님이 그 가정을 여러 번 심방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가정의 내막을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그 아버지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 법대 출신이었는데, 문제는 날 감히 어떻게 보고 이래, 하면서 직장을 때려치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갈 곳이 없었고, 그렇다고 중소기업은 자존심이 상해서 들어갈 수 없다 보니 18년을 실업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부인 집사님이 조그마한 가게를 꾸려 근근이 생활하는데,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장관이나 검사나 유명인사들이 나오면, 저놈은 내 밑에서 놀던 놈인데 출세했네! 아니 공부도 못하던 놈이 어떻게 장관이 됐어! 이런 식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못된 자존심이 사람을 죽이고 가족을 괴롭히고 인간관계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교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정신병원입니다.

서로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데, 나는 사장이야 하면, 옆에서 난 회장,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멀리서 이 소리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내가 언제 널 왕으로 세웠니? 웃기지 마! 하더랍니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스스로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선천적으로 악하고 마음이 강퍅하고 고집이 세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보다 내 마음과 육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죄짓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디로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이미 허물로 죽어 있었기 때문에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망할대로 다 망해버린 소망이 전연 없는 그런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과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시면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도 없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죄인의 괴수와 같았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이렇게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이 강퍅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시고, 말씀으로 악한 생각을 물리치게 하시고, 선물로 받은 믿음으로 의심하는 마음을 바꾸어 믿고 순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표현대로,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 하였고,

딤전1:13절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었" 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니 새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택함 받아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원래는 화를 잘 내는 성격이고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수 믿고 회개하고 또 목회하면서 배우고 깨닫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은혜의 삶을 살려고 말씀과 성령에 붙들려 노력하니까 이만큼이라도 된 것입니다.

그래서 늘 돌아보면서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 알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온갖 능력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고, 그들 자신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자부심을 품고 살아왔는데, 왜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22장에 보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고 혼인을 축하해 줄 사람들을 초청하는 왕이 나옵니다. 사방으로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의 일에 바쁘고 왕의 일보다 자신들의 일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왕이 보낸 종들을 때리거나 죽여버렸습니다.

7절에 보면, 왕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혼인 잔치에는 초청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채웠다고 했습니다.

이 기묘한 예화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잡아 죽인 이스라엘에 대한 메시지였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로 혼인 자리를 채운 것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14절에 가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는 말씀으로 이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아! 이 메시지는 바로 나를 위한 말씀이구나 깨닫고 회개해야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복음을 전한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들었다고 다 믿는 것도 아닙니다. 이유는 사람마다 각각 자기의 생각과 고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는 듣고 믿는 자와 듣고 마음이 완고해지는 자가 있는 법입니다.

 

4. 이스라엘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왜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까?

그들은 영적으로 우월감을 가졌고 그래서 첫째는 교만한 마음에 자신들만 하나님께 택함을 입은 거룩한 선민이고, 나머지 이방인들은 다 부정한 짐승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교만한 마음에,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롬3: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에서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 말씀대로 노력해서 성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죄로 인하여 철저하게 망가지고 더러워진 죄인임을 깨닫고,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롬8:3-4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늘 인간을 따라 다니며 죄값을 내어 놓으라고 하면서 저주와 고통을 주는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요구를 묵살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이 이스라엘을 향하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이제는 받을 자격도 없는 이방인된 우리들에게 대신 베풀어 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 것입니다.

그들의 불순종, 그들의 잘못된 선택이 죄로 인하여 소망없이 죽어가던 우리에게는 이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복음이고 영원한 축복이었습니다.

 

5. 본문 19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시기심이 나도록 하나님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구원은 당연하고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런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원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은혜가 아니라 죄에 대한 진노였고,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 심판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죽음과 고통이었습니다.

무엇보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율법에 기록된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선물인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얻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제시한 값없이 공로도 없이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거부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들을 버리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23:37절에 보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느니라" 고 함으로 비록 죄로 인하여 그들을 향해 진노하셨지만, 그들을 영영 버리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한 번 택하신 자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한 번 약속하신 것을 어떤 일이 있어도 바꾸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이방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6. 오페라의 황제라고 불리는 베르디의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하면, 리골렛토, 일트레바트레, 라 트라비아타가 있습니다. 그는 1813년 이탈리아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닜지만, 음악에 소질을 인정받아 10살 때 교회의 올겐을 연주하게 되었고, 스승의 딸과 결혼하고 재능을 인정받아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두 자녀가 전염병으로 죽고, 2년 후에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베르디를 안타깝게 여긴 라 스칼라 극장의 지배인의 도움으로 다시 작곡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특별히 두 번째 아내인 소프라노 가수 수세피나 스트레포니의 사랑에 힘입어 가극 나부코를 시작으로 재기에 성공하고, 47세에는 국회의원이 되고 58세에는 아이다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01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오페라계의 절대적인 사랑을 입었다고 합니다.

연약한 인생이라도 도중에 무너지고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이라도,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이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은 그 어떤 죄인이라도 지옥에서 건져 올릴 수 있으며, 그 어떤 연약한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외형적으로 보면 온 세상에 전파되었지만, 전한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니고, 들었다고 다 순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고집과 잘못 선택한 결정으로 인해, 이 세상은 절대 다수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본문 21절의 말씀처럼, 지금도 자기 백성에게 종일 손을 내밀고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처럼, 우리도 가족을 향해, 그리고 이웃과 이 땅 이 민족을 향해 인내심을 가지고, 손을 벌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아오도록 손짓하고 마음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7. 이스라엘의 교만한 마음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인 믿음 대신에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는 행위를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되었지만, 이때까지 이스라엘로 행하던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이방세계로 넘어오게 되었고, 우리가 그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세워서 하늘나라에 이르는 그날까지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는 이 말씀입니다.

교회가 부흥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초대교회처럼 모두 성령 충만한 자가 되어 거리로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이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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