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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은 사람(로마서11:1-10)
고영수 2024-04-27 추천 0 댓글 0 조회 249
[성경본문] 로마서11:1-10 개역개정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은혜를 입은 사람(로마서11:1-10/2024.4.28.)

 

1. 앤디 깁(Andy Gibb, 1958~1988)이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영국, 호주, 미국을 오가며 형제들과 함께 비지스(Bee Gees)라는 보컬 그룹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음반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22살이 될 때까지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면서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올리비아 뉴톤 죤과 함께 듀엣곡을 불러 히트를 했지만, 마약에 손을 대고 나서 막대한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고, 몸도 마음도 마약에 무너져 30살에 비참한 모습으로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남다른 재능이나 능력이 뛰어나서 명성과 부귀를 얻는다고 해도, 심령에 만족하지 못해 방황하며 불행한 삶을 살다가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진 것처럼 그렇게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마약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도 그것이 인생의 행복과 참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나서 죄를 먹고 마시며 살던 사람들이고, 또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에는 그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찾아오셔서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6:7) 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요 은혜입니다.

인생이 행복과 성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가고 있지만, 인생이 누리는 최고의 축복과 행복은 여호와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내 하나님,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펼칠 때마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값없이 얻은 구원과 순간순간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두려움이 없이 감사하며 사는 이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그 어떤 행위나 공로와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 자신의 주권에 의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녀 삼아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불러 주신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새기면서 감사함으로 보좌 앞에 나아가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느냐는 의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런 의문을 선지자 엘리야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합의 폭정과 핍박을 견디며 싸우다 지친 엘리야로서는 과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셨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라"(왕상19:18) 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에게 다 죽임을 당하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은 선지자와 믿음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자기 생각을 중심에 세우면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수록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에 맡기고 그를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고 하면서 계속해서,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55:8-9) 고 하였습니다.

 

3.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도바울의 경우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철저히 무너뜨리려고 노력하던 자였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그런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쓰임 받는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일이라면 자신은 망해도 상관이 없다는 각오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요 은혜였습니다.

엘리야는 나만 남았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7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영적 암흑기와 같은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백성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시며, 그들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어떤 시대, 어떤 박해 아래에서도 살아남았고,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사용하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시대가 어둡고 아무리 도덕적으로 타락해도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 일본에도 하나님이 남겨 두신 그루터기가 있고, 우리는 이 그루터기에서 복음의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려야 하고, 우리는 은혜로 남겨진 칠천 명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복의 능력이 있으시고,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바꾸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4. 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냐 아니면 인간의 행위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서두에서 자신도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는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처럼 행위로 말하면 나도 자랑할 만한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랑할만한 그런 행위로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산다면, 하나님 사랑하던 그 마음에 우상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회개하는 마음이 없으면 교만한 마음에 빠질 것이고, 그래서 자녀들에게 남겨줄 영적인 유산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이고 겸손함인데, 행위를 자랑하면 그 행위에 따르는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우둔해지고, 혼미해지고, 올무와 덫에 걸리며, 눈은 흐려지고, 등이 항상 굽게 되며, 실족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길 작정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 7절에서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얻으려고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 다 했습니다.

여기서 택하심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말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 이외에는 어떻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 졌느니라" 는 이것입니다.

여기서 우둔해졌다는 말은, 인간의 양심과 판단력이 마비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양심과 판단력이 마비가 된 사람들의 행동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그 대표적인 예가 시106편에 나오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크신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광야에서 욕심을 내어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재앙에 빠진 것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고기를 주셔도 그들의 영혼을 쇠약하게 하심으로(106:15), 그들의 육신은 살찌고 윤택해 졌지만, 그 영혼은 영양실조에 걸린 병자처럼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둔하게 된 자들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이 요구하시는 것은 다 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도리어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과를 시편기자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20)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다니던 교회는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렸고, 기도원이나 집회를 가도 환경이 너무 열악했지만, 성도들이 목숨을 걸고 부르짖었고 온몸을 드려 교회를 섬겼습니다. 교회가 건축한 후에는 시멘트 바닥에 방석을 깔고 예배드리다가 나중에 장의자에 앉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 건물이나 시설이 너무 좋아졌고 호텔이나 컨벤션 시설을 빌려 행사를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복을 받았는데 우리의 양심과 판단력은 마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 누리는 이 축복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썩어질 육신을 위한 것밖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이 정도라면 곁가지와 같은 우리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가난한 자에게 십 분의 일을 주기도 했습니다.

 

6. 본문의 서두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리셨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로 온갖 탐욕에 빠진 그런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럴 수 없다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이스라엘을 위해 계획하신 모든 일이 무너질 것이고,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무산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위로 하면 당연히 이스라엘은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소망이 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 말씀을 받을 때, 이스라엘은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고 춤을 추며 뛰놀았다고 했습니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으며 패역도 이런 패역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심으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과, 여호와는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2) 다고 했습니다.

한 번 택한 이스라엘은 버리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그들의 우둔함을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그들에게 임하던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계획이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넘어오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넘어짐은 도리어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되었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는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21:43).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방편이었습니다.

 

8. 명치 시대 초기에 일본에서 중죄인은 전부 북해도의 구시로 감옥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매일 피투성이의 싸움이 벌어지고 온갖 사고가 빈발하자 정부는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악질 간수장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죄수들은 그를 오니 아리마즉 악마 아리마라고 불렀습니다.

그 당시 이 감옥의 전도자로 있던 오오쯔카 시로시는 마가복음을 해설하여 기록한 것을 매주 이 간수장에게 보내었고, 그는 이것을 읽고 감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구시로 감옥을 평정한 후에 이번에는 다른 감옥의 간수장으로 전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미리 들은 그곳 죄수들이 무서워서 탈옥하려고 결사대를 조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니 아리마는 처벌 위주의 정화 교육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화하였고, 많은 죄수가 그에게 감화를 받았고, 다시 동경으로 전근을 하였을 때는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교도소가 다 무너졌지만, 1,295명의 죄수가 한 명도 탈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행위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영원한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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