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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아이(창세기37:5-11)
고영수 2024-05-04 추천 0 댓글 0 조회 258
[성경본문] 창세기37:5-11 개역개정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꿈을 꾸는 아이(창세기37:5-11/2024.5.5.오전)

 

1.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서기 2천 년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는 10대들의 범죄가 일본열도를 충격 속에 몰아넣습니다. 나고야에서는 16살 소년들이 공갈 협박으로 5천만 엔의 거금을 갈취하였고, 히로시마에서는 고교 2년생이 학교에서 선생님을 칼로 찌르고, 아이치껜의 도요가와시에서는 고교 3년생이 생면부지의 주부를 칼로 찔러 죽이고, 사가 시에서는 17세 소년이 버스를 납치하여 인질들을 죽이고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작년도의 일본 경시청의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형법 범죄는 14.2%, 길거리범죄는 36.4%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형법 범죄라고 하는 것은, 살인, 강도, 공갈, 사기, 성범죄 등을 말하고, 길거리범죄란 노상강도, 날치기,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훔치기, 자동차 문을 따고 물건 훔치기, 자판기의 동전 털기 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조직폭력배와 연관된 범죄를 포함해서, 일어나고 있는 십 대들의 문제와 그들이 일으키는 범죄가 사회의 큰 위협이 될 정도로 심상치 않습니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이런 충격적이고 심각한 범죄를 장난삼아서 하거나, 충동적으로 행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소년들의 범죄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으로 비틀어지고 병들고 썩어가는 이런 현실에서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이 갈 길을 잃고 쉽사리 범죄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부모들의 책임 또한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년 살인 중에서 가족이나 친족 살인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아이들이 마음에 있는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다 보니 자존감이 약하고 그래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지 않고 인생을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너무 과보호를 받아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다 보니 인내심이 부족하고 강한 자존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친 규제나 책망을 받다 보니 잘못된 도덕관이 형성되면서 참고 참다가 폭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평범한 아이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 대한 문제점을 염려하고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입니다.

 

2. 오늘 어린이날을 맞이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이 시대의 자녀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얻고자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야곱의 아들 요셉과 그의 형제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11절에서 이 요셉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고 했습니다.

야곱은 12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요셉을 그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11명도 다 같은 자식인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해서 그렇습니까? 형들보다 요셉의 행위가 의로워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과 다른 것은 그가 꿈을 꾸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꿈을 가족들에게 들려주면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키워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루하루에 연연해서 사는 자식과 비록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미래를 보고 나아가는 자녀에 대한 부모가 쏟는 관심과 애정은 다른 법입니다.

요셉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믿음의 사람인 야곱은 11번째 아들 요셉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요즘 아이들이 꿈을 잃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부모도 자식도 꿈을 잃어버리게 되면,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사라집니다.

이런 대화 단절로 인해 부모는 자식을 이해 할 수 없고, 자식 또한 부모를 알 수 없습니다.

 

3. 아동문학가였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아이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우하자는 뜻으로 1921년부터 소년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린이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어린이날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때가 192351, 즉 노동절을 어린이날로 만들어 기념했는데, 일본 정부는 민족정신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이 행사를 금지했고, 어린이 잡지까지 폐간시켰지만, 해방되고 나서 1946년에 55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하고 1954년부터 국가가 이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이는 나라와 민족의 장래이니 어린이를 위해 10년을 투자하라고 했습니다.

가정의 장래, 부모의 미래도 어린 자녀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꿈이 없는 그런 시대에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주었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아이의 장래에 마음을 쏟는다면, 하나님이 이 아이를 통해서 행하실 일이 있다고 믿는다면, 매일 그 아이를 위해 축복기도를 하고, 함께 가정에서 예배하면서 말씀으로 아이의 미래를 열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디모데서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딤후3:14-15절에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가르치는 배워야 합니다.

 

4.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믿음을 심겨 주고 꿈을 준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가정은 배다른 형제들이 12명이나 모여 살고 있다 보니, 문제 또한 너무 많았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야곱은 잔머리 굴리는 데는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출생할 때에도 먼저 나가는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았고, 형의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도둑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손에 넣은 사람입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양치기로 일할 때에도 그랬습니다.

이러다 보니 야곱의 가정에서 꿈을 가진 자녀가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요셉의 형님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뿐 아니라 자신의 꿈을 자랑하는 그 동생을 미워하고 공격하고 나중에는 죽이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다는 말을 3번씩이나 반복하고 있고, 두 번이나 더욱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요셉의 환경은 꿈을 꿀수록 어려워졌고, 그 꿈을 나누려고 할수록 미움받았습니다.

요셉의 꿈을 듣고 칭찬하고 꿈이 성취되도록 도와줘야 할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형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꿈을 가진 요셉을 보호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꿈을 가진 자가 그 꿈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험한 길을 걸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비록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지만, 현실은 가족들도 인한 고통은 갈수록 험악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고난의 여정을 성장의 기회로 삼게 하셨고,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이루는 과정으로 삼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5. 요셉의 인생은 사실 많은 고난과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배신과 아름을 입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고 사람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요셉은 꿈을 가진 자였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자신을 노예로 판 형님들도, 보디발 장군의 가족에게도, 임금을 섬기는 관리들이 자신을 잊어버려도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꿈을 가진 요셉은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바라보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이나 타국에 가서 살게 되면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꿈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주목하고 그들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만, 꿈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보라 보며 나아가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감화시켜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전화위복(轉禍爲福), 온고창신(溫故創新) 이라고 하고, 사도바울은 이런 것을 가리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8:28) 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그토록 미움을 받아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신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흉년을 넘기려고 곡식을 사러 애굽에 온 형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난관을 넘어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나아가는 꿈의 사람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받은 축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6. 요셉이 마침내 그 꿈을 이룬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남다른 열심입니까?

아니면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입니까? 기회가 좋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꾼 꿈은 사람에게서 나온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그를 붙들고 동침을 강요할 때 요셉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9:9)하였고, 나중에는 겉옷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갔으며,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 억울한 감옥생활도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누구 앞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자기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만나도 그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믿음의 요셉을 예비하셔서 야곱의 집안 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기근과 고통에서 구원하시려고 요셉을 예비하셨고, 그를 단련하여 정금같이 나오도록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고 하였습니다.

 

7. 지금 세계는 시시각각 환란과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그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사람들이 꿈을 꾸고 싶어도 꿈을 꿀 수 없고, 의지하고 싶어도 의지할 자가 없으며, 그래서 어른이나 아들이 다 함께 "케세라 세라", 즉 흘러가는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될 일은 내가 힘쓰지 않아도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허사라는 것입니다.

꿈을 잃어버린 시대의 모습이고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 시대처럼 오늘 우리 각자에게 꿈을 주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를 가슴에 품고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우리 자녀들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이 성취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하나님은 우리를 일본 땅에 보내셨습니다.

자녀들이 꿈을 잃지 않고 그 꿈을 믿음으로 키워나가도록 기도하며 말씀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과 조건이 주는 고통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그 꿈을 성취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일본복음화라는 꿈을 가지고 이 고난을 헤쳐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21세기의 요셉처럼 사용하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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