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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이냐 복종이냐(로마서13:1-7)
고영수 2024-08-17 추천 1 댓글 0 조회 68
[성경본문] 로마서13:1-7 개역개정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저항이냐 복종이냐(로마서13:1-7/2024.8.18.오전)

 

1. 미국의 정치학자인 블라이언 클라스(Brian Klaas)가 쓴 권력의 심리학이란 책에서 왜 권력은 부패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모든 사람이 권력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어떤 특정인들은 권력을 탐하고 그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애를 쓰는데,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답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부패하기 쉬운 사람들이 더 권력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권력을 얻는데 더욱 노련하고 또한 승승장구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부패한 힘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더 이기적이고 동정심이 없으며 위선적이고 가진 힘을 남용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권력에 대해 일반인들이 나타내는 반응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누군가가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피해자를 도와주고 가해자의 행동을 멈추게 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부당한 일을 명령하면 그것을 거절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강요당하고 압력을 가한다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양심에 반대되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반대하고 저항하게 되면, 내가 손해를 보고 사회적으로 곤란한 입장에 내몰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대부분 망설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힘 있는 자가 명령을 하면 싫어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갈등상황이라고 하는데, 사도바울도 이같은 갈등에 대해 탄식하기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본"(7:14)다고 하면서, 우리 안에는 서로 다른 법이 이런 문제로 갈등하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 권력은 부모도 죽이고 형제도 죽이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로마의 네로황제가 권력을 나누려고 했던 그의 모친을 독살하였고, 중국의 수나라 양제(隋煬帝)는 권력을 빼앗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부친과 형을 차례로 죽일 정도였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서 꺼내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말대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이런 잘못된 권력에 대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생각해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하였는데, 이 말씀에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이 세상 권세 자들에 권력을 주셨지만, 그 권력을 남용하거나 불의한 방법으로 사용하라고 주시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여기에 대한 한가지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셨지만, 삼상 13장에 가서 왕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며 하나님께 불순할 때에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13-14).

이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상숭배하면서 백성들을 향해 수탈하고 괴롭힐 때, 예후를 통해서 그 가문의 씨까지 다 말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통치하는 권력자가 있다면, 백성들이 그 권력에 대해서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전연 없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법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의 사울 왕처럼, 그런 권력자가 오늘 우리에게 다윗 같은 의로운 자를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법보다 더 지엄한 왕명인데 아무 생각 없이 순종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가진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17:15절에도,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 이라고 하면서 특히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라고 하였으니, 모든 권세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국가가 백성에게 명령하고 요구하는 것에 순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시대에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자신들은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국가의 권력에 복종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가장 민감한 문제인 조세에 관해서도 이미 교회에 십일조를 포함하여 각종 헌금을 드리기 때문에 조세의 의무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참 자유를 얻었고, 하늘나라 시민권을 부여받았으니 왕명을 따를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이런 생각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속하였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육신과 생명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국가에 귀속된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의무와, 동시에 지상 국가에 귀속된 자로 그 의무를 함께 감당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권세에 대한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두려워하는 마음은 국법에 대하여 명을 거역하거나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권세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선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4. 요즘 법을 어기고 악을 행하면서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국법을 노골적으로 배척하며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안하무인 격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대한민국의 8.15 광복절 기념행사가 두 쪽으로 나누어져 분쟁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민 대다수가 알고 지키는 1948년이 건국절이라는 사실에 반하여, 어느날 부턴가 1919년의 삼일절이 대한민국의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한 국가의 건국이라는 것은 세 가지의 기본적인 사항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국가가 탄생하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과 영토와 헌법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1948515일에 95% 이상의 국민이 참여한 총선거를 통해서 정부가 수립되었고, 그해 717일에 정부가 헌법을 제정하고 공포함으로 이날을 제헌절로 삼게 되었고, 그해 815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정식으로 정부 수립을 선포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날을 온 국민이 건국절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일부 국민이 국가에 저항해서 자기들만의 광복절 기념행사를 따로 열었다는 것은, 오늘 본문의 2, 4절의 말씀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국가 권력에 저항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1919년의 삼일절 운동을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정신적인 자산으로 삼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도 그 정신을 헌법 서두에 기록해 놓고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삼일절을 국가 건국일로 지정하는 것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것으로 서로 나뉘고 싸운다는 것은 더 큰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5.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 갇혔는데 이유는 권세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금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권력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에 이 시대에도 국가가 법을 만들어 기독교 신앙을 억압하고 탄압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했고 그 권력에 저항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고, 집회를 금하면 집에서 혼자 몰래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날 때, 권세자들은 그들에게 두 번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으려 했고, 그때 그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4:19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고 하면서, 20절에 가서는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 하면서, 옥에서 풀려나자마자 사도들은 다시 복음을 전했으니,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한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6.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과 그 세 친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니엘 3장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누구라도 풀무 불 속에 넣어 죽이라는 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 말과 행동이 무엇입니까?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시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 아옵소서"(3:17-18)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다리오 왕 이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지겠다는 법이 제정된 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 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왕명을 거역하였고 국가의 법을 어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들을 풀무 불 속에서 건져내셨고, 사자 굴에서 구원받게 하셨습니까?

그 답이 본문 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자는 한편으로는 선한 마음으로 백성에게 유익을 베푸는 자가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합왕처럼 탐욕과 불법을 행하면서 백성을 고통케 만들며 죽음으로 내몰거나,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박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신앙의 양심을 따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권력에 무조건 복종한 것이 아닌 것처럼,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사악한 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7. 서기 325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회심하면서 지금까지 박해 속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던 기독교 신앙을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국교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국가와 교회는 하나라는 개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황제는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권세를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이 권력이 교회로 넘어오게 되었고 국가는 교회에 복종하는 형태로 세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였고, 그러나 그 권력이 교회에 집중되다 보니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교회가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나중에는 사람들의 행동은 물론이고 생각까지 국가의 머리인 교황이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자는 국법에서 치외법권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법을 어겨도 면책을 받았습니다.

결국, 교회는 지나친 권력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국가는 국가대로 근간이 없이 흔들렸습니다.

이런 흐름에 최초로 반기를 든 사람이 영국의 헨리 2세였습니다.

교회나 국가는 똑같이 하나님의 통치영역 아래에 놓여 있지만, 교회와 국가는 본질에서 전연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권력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소유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앙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선을 행하라고 하였고, 양심을 따라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해서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전복을 시도하는 것은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그들의 마음이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원래부터 부패하고 가증스럽기 때문입니다.

 

8. 페미니즘이니 사형제도 반대니,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런 흐름은 롬1장에 보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1:28)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 만물의 통치자가 하나님이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였고, 유발하라리는 이것을 가리켜 호모데우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인간도 신성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나 생명공학 같은 과학의 힘이 인간을 더욱 위대하게 하며, 인간도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은 인류를 멸망으로 빠르게 몰고 갈 뿐입니다.

어쨋던 그리스도인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함으로 국가와 그 법으로부터 당연히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그 권력이나 법이 우리의 신앙을 박해하고 무너뜨리고 불법으로 많은 사람을 고통하게 만든다면, 다니엘과 그 세 친구처럼 제일 먼저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도 앞장서서 생명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정권은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명이 잘못된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이나 전복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신앙을 지키는 싸움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 모든 영역에서 드러나도록 해야 하고, 특히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9.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자 그것을 반대하며 펄펄 뛰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사랑하기 위해서 그를 아들로 삼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악한 정권이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것이며, 선행을 통하여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들로 알게 한다면 적어도 우리는 권세자들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세에 관한 내용이 6절 이하에 나오는데, 사도바울은 우리가 세금을 바치는 이유는 그들이 단순한 권력자나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백성들을 돌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구약시대는 레위인과 제사장을 위해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쳤고, 로마 시대에도 인두세라는 것이 있어서 14-65세의 남자들과 12-62세의 여자들이 이 세금을 국가에 바쳤고, 토지세로 곡물은 10%, 포도나 기름은 5%의 세금을 내었고, 소득세는 물론 기타 도로 사용료까지 내었습니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22:21)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여러 가지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국가에 대해 세금을 거부하거나 탈세를 하거나, 때로는 통치자를 공격하며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반역행위에 더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마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평안히 거할 수 있고, 가난해도 한 가정을 믿음으로 이루어 가며, 자녀들도 미래에 소망을 가지고 성장해 간다면,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노골적인 방해가 없다면, 국가에 감사해야 할 것이고, 통치자를 존경하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사랑과 선한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이것이 복된 인생길로 나아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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