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15:22-3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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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제공: 대한성서공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로마서15:22-33/2024.11.3.오전)
1.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나서는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원래 직업이었던 어부의 일을 다시 하겠다는 핑계로 박해의 전운이 감도는 예루살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고향 갈릴리 바다로 돌아왔지만, 마음먹은 대로 고기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신으로나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렵다는 핑계로 자기 자리를 떠난 사람을 누가 믿고 따를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이 무슨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적인 판단으로 보면 이미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내가 섬기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는 물론이고 모든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복음의 사명자의 자리로 다시 불러 주셨고,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행2장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는 십자가의 복음의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의 설교를 듣고 그날에 회심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3천 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겁이 많고 비겁하고 연약한 베드로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힘이고 믿음의 능력입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생각의 주인이 바뀌니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되는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살던 그런 인생이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베드로는 짧은 시간에 계획 없이 적당히 사는 자의 삶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자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를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2.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고전 2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면서, 그러므로 계속해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1-12)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기독교가 무엇이며, 믿음이 무엇이고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구원의 역사와 능력을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하였고, 바울이 에베소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을 행해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행19:2)고 물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믿는 것과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통상적인 세상 지식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뭘 믿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만든 종교 생활에 갇혀서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교회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서 내 행위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 나같은 죄인도 버리지 않고 먼저 찾아와서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은혜를 감사 감격하여 내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를 믿는 바리새인 출신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인 줄 알고 박해하다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고 보니, 자기 과거의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믿음의 생활이 아니라 종교에 사로잡힌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남은 생애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던 것입니다.
3. 바로 이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로마교회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만나서 하나님이 내려 주신 귀한 은혜를 나누려고 했지만, 번번이 길이 막혀 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로마를 방문해서 성도들과 사귀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의 스페인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꼭 먼저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헌금한 것을 전달하고 나서 로마에 가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바울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울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2절에 기록된 대로 로마로 가려던 계획이 번번이 막혔다고 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자기 생각을 따라 사는 자는 뜻대로 되지도 않으면서 고난이 많습니다.
그래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그 화풀이를 사람들에게 퍼붓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서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더 좋은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가 보다 생각하고 도리어 감사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람인, 이 사도 바울의 경우는 로마로 가려던 계획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4. 하나님은 모양과 방법은 다르지만, 바울이 원하는 대로 로마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27장에 보면, 다른 죄수들과 함께 묶여서 알렉산드리아 호 배를 타고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말렸지만 사도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보라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 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2-24)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오직 성령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에게도 생각과 계획이 있지만, 그런데도 내 뜻대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비록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이라도 피해서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런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보았다면 분명히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고전2:14)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여기에 대해서 생명을 걸고 말았으니, 얼마나 무모한 생각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것 당연합니다.
5. 그런데 바울은 본문 30절에서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이란 사실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만큼, 믿음의 길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래서 힘써 기도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선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특히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은 치열한 영적인 싸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기도의 원군이 필요하고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돕는 손길과 힘찬 응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슴에 뜻을 품고 기도하면,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기도로 점점 뜨거워지고 성령께서 도우시면, 우리가 가진 계획에 필요한 물질과 사람은 물론이고, 하나님은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복된 손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배후에는 많은 기도의 용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 요청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자들을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고 간 헌금은 환란과 핍박 속에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기쁜 마음으로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8:2-3절에 보면,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본문 27절 후반절에 나오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방인의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누리는 영적인 축복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이고, 축복받은 이방인을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심이 나서 복음으로 돌아오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교회들이 빚을 갚는다는 빚진 마음에서 구제를 기쁨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는 지상 교회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6.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이 이렇게 까지 헌신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는 것은, 자신들이 받은 영적인 은사와 축복이 너무 귀한 것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온갖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원래 죄인의 괴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을 감사하고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내가 맡은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가는 앞길에 무엇을 만나든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나 죽는 것도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본문 32절에 보니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장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여정에 내 생각이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며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1,2,3차 전도계획을 세워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번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기도하며 계획을 세워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슨 계획이 있습니까?
7.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그의 사도인 바울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섬김의 계획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하셨으니 제자라면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함으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몇 주전에 전도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복음의 열매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에도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계선교를 위해서 헌신할 때에도 그곳에는 나의 희생과 섬김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 계획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로 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기도를 요청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도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5: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 인생을 지으셨습니까? 당신 자신의 영광의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받은 은사와 능력, 그리고 재물까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헌신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것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시23편).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시고 이 일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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