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16: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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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마서16:1-7/2024.11.10.오전)
1. 주일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영국 성공회의 윌리엄 템플 대주교의 가르침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향한 전인격적인 복종이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크리스천이라도 예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경험하는 믿음의 세계는 전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매일 다니엘기도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있는데, 강사로 나오신 분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세상 가운데서 무력하게 살아왔던 그들이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분을 예배하고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순종할 때, 그 삶은 역전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반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한 죄 가운데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에게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영원한 축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요 가장 복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예배 가운데서 고백하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대상16:8,10)고 하였습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바울도 죄인의 괴수와 같은 나를 주님이 먼저 찾아와 주셨고, 십자가의 복음을 대적하던 그런 과거와는 상관없이,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하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배 때마다 구원의 감격과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다면, 지금부터 우리의 인생도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가 살다 보면,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돌아보면 잊혀지지 않는 귀한 분들이 있으며, 그들이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고, 그분들의 도움과 가르침이 제 평생에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바울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그는 이 로마서를 끝맺으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새기고 있는데, 제가 세어본 바로는 36명의 이름과 그 외의 다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바울을 도우며 그를 지켜낸 사람들이었습니다.
16장에서 이렇게 많은 이름을 거론하고 있는 이유는, 역사는 뛰어난 영웅만을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사람들을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그와 함께 다시 살아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롬6:11)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오늘 이곳에서 함께 예배하는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서로 안에서 함께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3.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이고 전쟁을 의미하는데, 누구라도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욕심을 따라 감으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 대신에 들어온 것입니다.
죄는 육체에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고, 죄는 인간이 추구하는 좋은 모든 것을 빼앗아갑니다.
그런데 롬5: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 다고 했습니다.
이 사망의 고통은 권력이나 재물이나 특별한 능력이나 지식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지은 죗값으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사망의 권세가 따라다니며 고통을 줍니다.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시38:4)다고 하면서, 죄가 나를 두렵게 만들고, 죄가 나를 실족하게 만들며, 근심과 슬픔이 떠나지 않으며, 원수가 나를 괴롭힌다고 하였습니다(시38:16-19)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찾으며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이외에는 죄를 범한 인간에게 그 어떤 소망이나 구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삶은 다릅니다. 죄가 주는 사망의 고통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 어떤 죄의 권세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수 없으며, 어떤 원수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는 것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욕심을 내고 자기중심으로 살아도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세상에서, 도리어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어 줄 정도로 헌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4. 그 대표적인 인물이 겐그리아의 뵈뵈라는 자매였습니다. 겐그리아 라고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행18:18절에,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나실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했던 것을 사도바울도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나실인이 되었다가 그 기간이 끝났을 때 머리를 깎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뵈뵈라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알 수 없는 귀한 도움을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1절에서 일꾼이라는 이 단어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로 이것은 섬기는 자라는 의미가 있으며, 또한 1절 마지막 부분에서 여러 사람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이 보호자라는 단어가 어떤 사람의 앞에 서서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녀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과 또 다른 전도자들을 위해 일꾼이나 보호자라는 표현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많이 수고하고 헌신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문제는 2절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뵈뵈를 로마교회에 추천하면서 하는 말이,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소용되는 바를 도와 주라" 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이 짧은 한 두 마디의 말이 뵈뵈라는 사람의 신앙과 인격이 어떻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뵈뵈와 같은 복음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귀한 일군들은 구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를 섬긴 사랍다 과부나, 엘리사 선지자를 섬긴 수넴 여인입니다(왕상17장, 왕하4장).
그녀들의 헌신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주의 종을 섬기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축복하시고 사랑하시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5.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하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는 심한데, 대한민국의 국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는 백성을 섬기는 머슴처럼 행세하다가 당선만 되면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제헌국회 이래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다니엘기도회에 5번째 강사로 나오신 향기 나는 사람들의 임정택 대표의 경우를 보면, 장애자들을 섬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소망이 없고, 자존감이 너무 낮은 장애자들을 먼저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 자신의 삶의 목적이요, 또한 주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달려갈 때 주님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치가 귀하다는 것이고,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전도자 사도바울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를 배후에서 돕는 신실한 사명자들이 연약한 인간 바울을 위대한 전도자로 사도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만났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소개하면서, 그들은 전도자 바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들의 목숨을 주저함도 없이 대신 내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도자 바울을 돕기 위해서 이 부부는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귀한 사명자들, 복음의 숨은 일꾼들을 어디가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신실하고 충성된 전도자들을 위해 뵈뵈 자매나 아굴라 부부같은 사람을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6. 그런데 행18장에 보면, 아볼로라는 성경학자가 있었는데, 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그를 데려다가 십자가의 복음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행18:26).
사도바울을 섬길 뿐 아니라 당대의 유능한 성경학자를 데려다가 제자로 삼아 가르칠 정도로 그들은 뛰어난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부부를 가리켜 3절에서 동역자라고 불렀는데, 동역자란 더불어 일하는 자라는 뜻으로, 그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실제로 사도와 같은 동급으로 그들을 대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가 주는 사망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인생을 소모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망의 고통을 벗어난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복음의 사명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인생입니까?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 받는 고난이나 박해를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난이나 박해의 고통보다 더 뜨겁고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왕에 십자가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사명자라면, 세상을 이기는 그런 믿음으로 받은 사명을 완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7.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에바브로디도 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바울은 이 사람을 가리켜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빌2:25)라고 하면서, 30절에 가서는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 지역의 성도들과 바울 사이의 수천 킬로미터의 길을 오가면서 바울과 성도들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당시의 치안이나 도로 사정 등을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도 연약한 사람인지라 이 일로 말미암아 병을 얻었고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의 염려가 되었고,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에 힘입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꿈꿀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입고 있으며,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천국 시민으로 창조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누리는 영원한 영광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된 마음이 소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온 세상에 복음이 증거된 것처럼, 우리도 뵈뵈 자매처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또는 에바브로디도 처럼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고 고난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명자들이 많이 나와서, 오사카중앙교회가 목표하는 일본복음화 세계선교로 더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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