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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사람들(로마서16:8-16)
고영수 2024-11-30 추천 0 댓글 0 조회 59
[성경본문] 로마서16:8-16 개역개정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사람들(로마서16:8-16/2024.12.1.오전)

 

1. 1996723, 제이 코스모의 오시마슈지(大島修治1948- )는 그날 회사 사장실에 누가 노크를 해서 대답하고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에게 휘발유 끼얹고 불을 붙였습니다. 온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큰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는데 전신 6도의 화상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의사는 살 가망이 전연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5번의 최악의 위기상황을 넘기면서 열 몇 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그야말로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고, 회사도 부도직전의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기적같이 목숨은 건졌지만, 불에 타서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았던 오른팔을 잘라내야 했고,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부친은 당시 86세였는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번 다시 너를 해치러 오는 놈이 있다면 내가 반드시 너를 지켜 줄 거야 라고 말했고, 모친도 너가 어떤 모습을 하고 몸 상태가 어떻게 되더라고 좋으니 제발 건강하게 살아만 있으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기적처럼 오른팔이 붙어 있었는데, 의사의 판단에 우선 썩은 살만 긁어내고 팔은 나중에 자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팔은 뼈 위에 겨우 살점이 조금 붙어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팔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2. 오랜 시간이 지나서 건강을 회복한 후에 퇴원했지만, 그의 마음은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범인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찾아내어 똑같이 복수를 하리라고 결심하고 매일 증오심에 이를 갈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데리고 간 어느 강연회에 참석하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강사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제 인생에서 자기 성격에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는 내가 이런 재앙을 만난 것은 내 몸에 불을 지른 범인의 탓이 아니라, 내 성격이 너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내가 많은 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후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그는 재앙을 만난 그날을 제2의 생일날로 정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무엇에든지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사명감에 불탄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재기한 후에 쓴 것이 도망가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되(人生逃げたらあかん)라는 책을 썻고, 그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품으라,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고난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3. 사람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해도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람 한 번 잘못 만나면 패가망신을 당하고 두 번 다시 재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승패는 만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누구입니까? 원래는 유대교에 대해서 철저한 추종자인 바리새인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던 일에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개종한 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를 두려워할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복음의 사도가 된 이후에는 시간이 갈수록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도우며 그의 곁에서 함께 동역하며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16장에 보면, 바울은 수많은 사람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주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생은 관계로 평가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 권세 있는 사람과 연관이 있기를 원하고 함께 이름을 올리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깁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큰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기록된 사도바울이 기억하는 이름들은 세상 다른 이름과는 전연 다른 특별한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고 인연을 맺고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8절의 암블리아나 9절의 우르바노, 11절의 나깃수, 그리고 14, 15절에 나오는 이름들이 대부분 노예 출신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도무지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시대의 노예는 집안의 가구나 사육하는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이라도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니 그 존재가치가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당시 기독교회의 핵심과 같은 사도바울로부터 문안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라고 불렀습니다.

10절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뜻은, 헬라어로는 도키몬인데, 이것은 불 속에서 제련한 금과 같은 것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판단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노예 출신이라도 구원받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사도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동역할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함께 메는 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5. 기독교 초기 사회에서는 신앙적이 박해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교회 안에서 신앙과 인격이 인정받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믿음이 열정적이고 적어도 영적으로 성령충만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 또한 인격이나 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 교회 성도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살전1:3절에 보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 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주어진 상황이 어떤 상태였습니까?

6-7절에는, "또 너희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 다 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과 박해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교회 나오라고 하면 코로나 핑계를 대고 안 나옵니다. 그런데 방역이 해제되고 나니 이번에는 바빠서 교회 못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벌지 못했던 돈도 벌어야 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야 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교회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참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위기를 만나면 자신들의 참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일 때, 사람들의 믿음의 옥석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6. 그리고 10절의 아리스도불로는 헤롯왕의 중손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악마와 같은 헤롯에게도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습니다.

11절의 나깃수는 노예출신으로 기록에 의하면,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해서 특별히 사면받아 해방된 유명한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그와 그의 가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고, 특별히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13절에 나오는 루포라는 인물은 막15:21절에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간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라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주님은 그의 아내와 아들 루포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온 가족이 믿어 구원받았고, 특히 그의 모친은 사도바울을 제 아들처럼 사랑했습니다.

성도로서 참된 행복은 온 가족이 구원받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사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라면 당연히 가족구원, 가정 복음화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본문 13절에서 이들을 가리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님께 온전히 헌신되어지도록 특별히 선택받은 자란 뜻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의 세계는 육신의 혈통을 중요시 하기보다는 영적으로 해산의 수고를 통해 믿음으로 낳은 영적인 자녀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2:50절에 보면,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온갖 기적과 능력을 행하실 때, 그 현장에 모친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이 찾아왔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에게 영적으로는 해산의 수고를 통과하는 산실이고, 양육의 고난을 감당하는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인생은 성령으로 어머니 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7.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을 다 거론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분명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만세전부터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고, 주님이 이 지상에 자기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목적을 따라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그 이름과 함께 그들이 복음을 위해 수고한 모든 행위가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동역자로서 사도들이 받을 영광을 그들이 함께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마10:42) 하셨으므로, 그들이 이 세상에서나 장차 주님 앞에서 받을 상과 그 영광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정욕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성공이나 재물을 탐하지 않으니 그래서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내어 놓고 재물도 아끼지 않고 주님께 드릴 수 있었으며, 이런 모습으로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위해 헌신했으니, 어떻게 이 사람들을 사도바울이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정말 가슴이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도 마음이 상하거나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미련 없이 지금까지 섬기던 교회를 버리고 떠나갑니다.

이런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주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지도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돌아보면서 또한 오늘부터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8. 16:3절에 나오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전도자 바울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도 내어놓은 사람들이었고, 본문 14, 15절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 혹은 성도라는 이 말은,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교회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공통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가의 다락방이나(12:12), 빌립보의 루디아의 집(16:40)이나 에베소의 브리스가 부부의 집(고전16:19)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단순하게 바울이라는 인간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마지막 시대로 환란의 때입니다. 우리가 살고 이 시대를 살리는 것은, 먼저 믿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서 그의 몸 된 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것입니다.

저에게 욕심이 있다면, 이 오사카중앙교회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처럼, 복음을 위해서라면 생명이나 재물이나 청춘까지 다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명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역사를 이루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선교의 중심에는 오사카중앙교회가 있고, 일본 복음화를 위해 롬16장에 기록된 이런 인물들로 넘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마28:18-20절을 다같이 합독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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