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골로새서3:15-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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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감사, 감사, 감사(골로세서 3:15-17/2025.7.6.맥추감사절)
1. 지난 주간에 선교사 카톡방에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만한 뉴스가 올라왔습니다.
일본 성결교단에 속한 120년의 전통을 가진 동경의 요도바시 교회가, 6월 29일에 6대째 담임 목회자를 모셨는데, 김성섭이라는 한국 목사님이었고, 그 사실을 크리스챤투데이 신문이 자세히 보도한 것입니다. 참으로 축하할 일이고 정말 시대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전에도 한국 목사님들이 일본의 전통적인 교회에 초빙되어 담임 목회자로 서게 된 것은 더러 있었던 일이지만, 기독교계 대표적 신문사가 그 행사를 낱낱이 보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는 한국말 할 줄 아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한국에 친한 친구를 둔 것을 대단하게 여길 정도로, 일본에서의 한국 위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곳에서 42년째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저로서는 금석지감(今昔之感), 즉 지금과 옛날이 너무 차이가 커서 놀라울 뿐입니다.
1983년, 저를 선교사로 초청한 일본 교회에 들어가 보니, 일본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목사로서 인정할 수 없다면서, 그 교회는 저를 고상, 고상(고씨)이렇게 불렀습니다.
고오베 개혁파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 교회를 나와서 한인 교회를 개척하려고 교회 처소를 알아보고 다녔는데, 도무지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면, 마늘 냄새, 된장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 집에 어렵게 심방을 가면, 집 밖에 나가서는 한국말은 물론이고 인사도 하지 말고 조용히 가 달라고 단단히 부탁을 받았고, 제가 고오베로 통학하면서 전차 안에서 동료와 한국말을 하면,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자리를 피하기도 했고, 물건을 살 때도 발음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런 것 없다고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저의 은사님이 일본에서 신학교를 나오시고 목회도 하셔서, 일본으로 한 번 초청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거에 독립운동하셨기 때문에, 요주의인물 명단에 올라 있어서 일본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자 갱신 등의 일로 입국관리소를 찾아갈 때마다 죄인처럼 찾아갔고, 비자 갱신을 받으면 황송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선교사라면서 선교비가 오지 않으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면박 받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돌아보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멸시를 받았던 그 세월이 생각보다 험악했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시대가 열렸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한일 관계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전쟁이나 차별이 없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그런 관계로 계속 이어지기를 소원합니다.
2.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가치를 말하라고 하면, 저는 주저 없이 그것은 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 세상의 모든 정답은 돈에 있고, 돈이 인생의 모든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도덕이나 종교나 교육까지, 심지어 돈이 없으면 국가도 파탄이 나기 때문입니다. 형편없는 인격과 실력이라도 빚을 내어서 세상에 돈을 쏟아부으면 정치를 잘하는 것이고, 국민에게 나라가 어려우니 근면 절약하자고 하면 무능한 지도자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돈과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우리의 신앙도 돈이 없으면 헌금도 할 수 없고, 섬김이며 봉사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맘모니즘((mammonism) 즉, 돈이 신이 되어버린 그런 세상입니다.
3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황태자 빈 살만이 1박 2일의 한국 여행을 위해서 쏟아부은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심지어 자동차며 가구며 침대까지 평소에 쓰던 것들을 다 비행기로 실어 왔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1년 국가 예산이 600억 정도라고 했는데, 그의 재산은 2천8백5십조 원이었습니다. 그때 함께 한국을 찾은 일행을 위해서 서울 롯데호텔의 400여 개의 방을 사용하였고, 자신은 하룻밤에 140평짜리, 2,200만 원의 방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부자가 제 마음대로 돈 쓰는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 사람이 정말 행복하고 만족하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작가며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없어도 되는 것이 많을수록 부자"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평가를 소유로 판단하지 말고 비움으로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울수록 더 자유로워지는 정신적인 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우리의 옷장에는 입지도 않고 쌓이는 옷이 얼마나 많으며, 부엌에는 일 년 내내 쓰지 않는 그릇들과 도구들이 좁은 일본 집의 그나마 남은 공간들을 차지하고 있는데, 통장에도 노후를 책임져 주는 적금이나 보험이 있으면 우리 인생이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결국 자신을 노예로 만들기 때문에, 행복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딤전6:8)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재물이나 부족한 것이 있어도 그런 것 때문에 내 생활을 다소 불편해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3대 절기에 해당하고 우리에게는 4대 절기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문제는 절기를 지킨다는 생각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감사 절기 때문에 그동안 창고에 처박아둔 감사의 감정을 억지로 끌고 나와서 형식적인 감사기도와 찬양과 예물을 드릴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구원받은 자의 감격과 감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자는 생각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선택하고, 감사, 감사, 감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3.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골로세 교인들에게 새롭게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그런 삶의 방법을 소개하는 과정에 감사하라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감사라는 단어를 구약에서 살펴보면, 「야다」와 「토다」 가 있습니다.
「야다」는 입술의 감사를 넘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인정하고 고백함으로 나오는 찬양의 행위를 말하고, 또한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나를 인정하고 용납해 주시는 그분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다」는 이 「야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와 찬양과 감사 제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이 감사를 「유카리스티아」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 년에 몇 번 모여서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역시 「유카리스티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4.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당연히 구원받은 은혜에 대한 넘치는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주권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인정해서, 입술의 찬양과 내 삶 전체를 거룩한 예물로 드리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짜증 나고 화나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 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와 감사의 예물과 감사로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제가 70여 년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행위로 드러나야 하고, 하나님과 우리는 특별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관계는 무엇으로 어떻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신뢰가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많은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고 고백하였습니다. 감사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이 넘치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당연하면 감사할 필요도 없고 감사할 이유도 없으며,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느끼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우리의 감정은 분노와 절망에 휩싸이게 되고, 그래서 아무리 강한 자라도 무너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5.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제일 먼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구약에서는 「샬롬」이고 신약에서는 「에이레네」인데, 구약에서 샬롬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해서 이웃과 또 제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과 평화가 우리 안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약에서 말하는 에이레네는 분열이나 갈등이 없는 내면적인 고요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내적인 평안은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샬롬이나 에이레네는 바른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감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통해서 나올 수 있으며, 이런 감사가 충만한 사람은 속에서부터 평화와 고요함과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6. 계속해서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 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넘친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쓴 칼럼의 내용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저도 마음에 평안을 잃고 흔들리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바닥에 앉아 말씀을 계속해서 읽으며, 말씀이 내 속을 새롭게 변화시킬 때까지 묵상하며 평안이 찾아오면 일어섰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는 그냥 만들어지거나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임재하시고, 그분이 내 생각과 감정을 어루만져 주시고 다스리실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가난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우리 안에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는 것이고, 그래서 환란 속에도 행복하고 감사가 넘치고 찬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7절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에 복종하는 그런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노예에게는 감사나 찬양이나 기쁨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억지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바깥에는 이렇게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으며,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7. 복음이 없고 생명의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없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메마르고 고통스러운지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완벽하고 차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감사도 기쁨도 찬양이 없다면, 그것은 은혜를 입고 있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남다른 복을 받아도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당장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첫째로 15절 말씀처럼 마음에 평강이 넘칩니다. 그래서 흑암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둘째로 16절 말씀대로 믿음으로 풍성해 집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능력 있는 자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셋째로 17절 말씀처럼 감사를 통해 내가 먼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살전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삶은 저주받은 환경도 축복으로 바꾸고, 아무도 바꿀 수 없는 내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원한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맛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여기서 우리의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변화와 감사를 통해 기뻐하시고 많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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