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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버린 말씀의 맛(요한계시록 10:1-11)
고영수 2020-05-10 추천 0 댓글 0 조회 45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0:1-11 개역개정

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먹어버린 말씀의 맛(요한계시록 10:1-11/2012.2.5.오후)

1. 1996년에 일본에서 유명한 문예잡지 하나가 휴간을 선언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21세기를 눈 앞에 두고 세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데, 자신들은 스스로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휴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문예잡지는 글로 먹고사는 직종인데 더 이상 책을 출판할 수 없다는 것은 다름 아닌 변화하는 이 시대에 맞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말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맞추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글을 써야할지 알지 못하고 이 출판사가 고민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책망 받을 만한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회의 공기로서의 언론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 책망 받을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벌이나 인기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성찰을 통해 잠시 팬을 놓았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총선과 일본의 중의원 해산으로 인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는데 마땅히 지지할 정당이 없는 당파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가들이 말을 잃어버린 결과라 생각합니다.
현란하도록 변화해 가는 이 시대에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하고 있는 정치가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래서 어느 정당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2. 작가나 언론이 말을 잃어버리고 정치가가 말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하며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낼지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방황하고 고민하는 것은 실로 당연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지난달에 일본의 아꾸다가와 문학상에 도전하여 다섯 번 만에 성공하여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인터뷰를 할 때 술을 한 잔 하고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글을 통해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사로잡았지만 정작 전국의 시청자들을 상대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심한 것 같지만 요즘 책방에 가보면 일반서적은 물론이고 기독교 관계의 책들도 보면 그 내용이 매우 실망스러운 책들이 태반입니다.
정치가가 말을 잃어버리고 작가가 글을 잃어버리고, 학교에서는 바른 말과 바른 글을 통한 인성교육을 잃어버리고 보니 잘못되고 정제되지 못한 말과 글들이 세간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들과 그들의 미래를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의 교회는 과연 말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글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3. 정말 눈이 돌아가 버릴 정도로 변화되고 있는 이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이런 변화 속에서 목자를 잃은 것처럼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준비된 말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내게 그런 질문을 해 온다면 제 자신은 그저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교회의 안팎에서 아무도 그런 것으로 제게 질문을 던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를 해야 할지 부끄러워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 말다운 말을 잃어버리고 글 다운 글을 잃어버린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그 바른 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중해의 손바닥만 한 밧모섬에 갇혀 대부분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하루 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는 박해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떠나서 먼 고도에 갇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갇혀서 자유를 잃은 요한에게 그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스크린으로 삼아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고, 고난 가운데 지금이라도 당장 숨이 끊어져 교회가 소멸될 것 같은 그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 지상의 교회의 미래를 보여 주셨습니다.

4. 요한은 교회의 미래의 모습에서 다름 아닌 이 지구촌의 종말과 온 우주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인류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더 이상 세상 가운데서 누리던 인간으로서의 모든 자유며 욕망이며 미련은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요한이 이 밧보섬에 유배되어 온 것이 잘된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21세기는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 이외에는 시대의 변화란 어느 때나 있었습니다.      
사도요한의 시대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그렇게 빠른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황제들이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가장 가혹할만한 박해를 교회에 내려친 황제가 바로 도미티안 황제였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의심만 사도 당장 투옥이 되었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고문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라고 강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저항하거나 의심이 되면 가차없이 처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생명을 걸지 아니하고는 예배할 수 없고, 순교의 각오 없이는 신앙을 지킬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렇게 위급하고 힘든 시대에 하나님은 요한을 밧모섬에 보내셨고, 그곳에서 요한은 그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사모하고 기다리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것입니다.

5. 6-7절에 보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기를「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지체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시간이 없다, 그 때가 매우 임박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비밀」이란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신 그 뜻이 이 지상에서 곧 시작이 되며 또한 완성을 이루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는 말은 이전에 선지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준 것처럼 이 하나님의 비밀이 좋은 소식처럼 들려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시대가 말을 잃어버리고 글을 잃어버린 것도 큰 일이지만, 더 큰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그 말씀을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말씀 회복을 위한 아무런 노력이나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네델란드의 경제학자이며 국회의원인 하우스 바르트에 의하면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 폴란드, 러시아, 중국 등이 자본주의 국가로 넘어갔는데 이 나라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회주의 국가였을 때, 그 곳의 교회들이 더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통일되기 전의 동독의 교회들은 민주화 운동의 핵심이었고, 민족의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리어 교회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국가가 공산주의였을 때에는 모순된 것들이 금방 드러나지만, 자본주의가 되면 우리 영혼의 뼛속 깊은 곳까지 타락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유럽의 위기가 어디서 온 것입니까?
고상하게 말해서 경제문제요 사실은 돈 문제입니다.
일본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서 국채발행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도 이 자본주의의 욕심에 맛을 들여 교회가 당연한 듯 거래되고 성직이 마치 매매하듯이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의 욕심의 팽창은 결국에는 육신도 영혼도 남은 것은 파산뿐이라는 사실입니다.

6. 이런 위기 속에서 우리가 회복할 것은 그리고 힘써야 할 것은 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이렇게 위기에 빠진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을 수용했습니다.
9절에 보니,「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고 했습니다.
위기 만난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읽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다(시19:11)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뱃속에 들어간 말씀이 쓰다는 것은 언 듯 이해가 오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받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며, 소망을 주며, 새 힘을 주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베푼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먹으면 배속에서 쓰게 될 것이란 말씀은 과연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통해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중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의 쓴잔을 할 수 만 있다면 받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이유는 이 고난의 잔은 다름 아닌 십자가의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죄로 말미암는 고통이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당함이요, 모든 것과의 이별이요 괴로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먹은 자가 그 입에서 꿀처럼 단 것은 받은 말씀을 통해 은혜 받았기 때문이고, 새 힘과 소망에 넘쳤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받아먹은 말씀이 나중에는 쓰게 되는 것은 말씀을 받은 자의 사명 때문입니다.
받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해야 하며, 받은 말씀을 통해 생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해야 하기 때문이고, 주님처럼 온유함과 겸손함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도 그것이 나가서 전하는 것이든 가르치는 것이든 해산의 수고가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교회 또한 순교자의 숫자를 채우기까지는 고난의 길을 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곳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버가모 교회는 충성된 증인들을 죽음에 내어주어야 했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기쁨과 소망을 주지만, 이 생명을 주는 말씀을 받은 사람이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요, 쓴잔을 마시는 길이요 때로는 자신의 생명으로 순교자의 수를 더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11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도요한에게 더 많은 백성들과 나라들, 그리고 더 많은 임금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국을 떠나 이 일본 땅에 와서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도 우리가 주님께 받은 복음의 사명이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매일 생명의 말씀을 우리의 양식으로, 영적 전투의 무기로 삼으며, 우리가 받아먹은 이 복음의 말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능력과 소망을 줄 수 있도록 사명자로서 더욱 충성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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