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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두 증인(요한계시록 11:1-13)
고영수 2020-05-10 추천 0 댓글 0 조회 456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1:1-13 개역개정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전과 두 증인(요한계시록 11:1-13/2012.5.20.오후)


1. 본문은 지난 10장에서 이어지는 부분으로 보고 있는데, 문제는 이 본문은 가장 난해하면서도 또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분명한 멧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에 대한 사단의 핍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두 증인으로 소개되는 전도자들이 순교를 당하기까지 복음의 증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리 연약해 보여도 사단의 세력조차도 이겨낼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어떤 핍박과 환경 속에서도 교회는 교회로서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큰 격려가 되고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힘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요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분의 보호하심이 완벽하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작금의 교회 안팎이 매우 혼란스럽고 교회들은 연약한 가운데 있습니다.
온갖 이단들이 오사카에 들어와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며 경쟁하듯이 그 세력들을 확장하고 있는데, 기존교회들은 전도가 어렵고 교회 상황이 어렵다 보니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가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려면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인 줄 믿습니다.
특히 종말 시대를 맞이하여 교회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시록에 나타난 대로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고 분투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충분한 감동과 힘을 주고 있습니다.

2. 그렇다면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첫 번째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도요한에게 새로운 미션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3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성전, 두 번째는 제단, 세 번째는 그곳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측량의 대상은 정해졌는데 측량을 하는 목적을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 시점에서 이미 성전은 파괴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성전을 짓기 위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에스겔40장 이하와 스가랴2장에서 성전을 측량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본문이 그것들과 다른 것은 그곳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는 내용입니다.
곧 예배하는 자들의 수를 세어 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구약에서는 성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신약에서 건축물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측량을 명령한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포함한 이 교회가 다가오는 환란을 이겨낼 만큼 하나님을 향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고 있는가, 저들이 환란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만한 믿음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3. 이 사실을 확인해 주는 내용이 본문에서는 계속 등장하고 있으니 곧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참 예배자들은 환란을 통과하기 까지 그들을 확실하게 보호하시겠다는 의미인 동시에 거짓된 예배자들, 주님 사랑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는 위선자들을 아낌없이 환란에 내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권세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42달 동안 성전 밖 마당을 원하는 대로 짓밟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중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룬 것 같이, 종말에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중심으로 마지막 구원의 역사를 베풀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전 밖은 측량하지 말라는 것도 하나님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밭에 몰래 뿌려진 가라지같은 존재로서 당장 뽑아 버리고 싶지만 알곡이 상하는 것을 염려하여 추수 때 즉 심판의 때 까지 그냥 두라는 주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입니다(마13:25-).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심지어 교회가 환란 가운데에 놓여 있을 때에도 그 분의 관심은 교회 안에서 예배하는 신실한 자들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환란 가운데 있을수록,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일수록, 사람들이 진리에서 떠나갈수록 자신의 예배 자리를 지키는 이것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4.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두 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두 증인에 관한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세와 엘리아냐 또 다른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영웅들과 선지자들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원래는 거룩한 도성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으로 충만한 곳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에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주님은 교회 가운데서 두 증인을 세상에 내어 놓아 그들로 하여금 종말 시대의 마지막 증인으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볼 때 그 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어질 수 있을까 염려됩니다.
그런데 7-8절에 보니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는 삼일 반 동안 방치된 채로 온 세상의 조롱거리와 멸시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 두 증인이 과연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슥4장을 들어 두 개의 감람나무와 두 개의 촛대로 한 사람은 제사장 여호수아요 다른 한 사람은 스룹바벨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슥4:14절에는 두 감람나무가 기름부음 받은 자로 나오니, 기름 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는 의미요, 곧 이 두 사람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예수님처럼 기름 부음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받아,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이 두 증인 역시 순교의 피를 흘릴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들고 영적 전투장의 최전선에 나선 전도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배후에서 기도하며 물질로 후원하되 자신의 생활과 사업을 희생하면서까지 복음을 위해 배후에서 희생하는 의롭고 용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인천공단의 문화세라믹 사장님은 자신의 교회를 섬기면서도 방글라데시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모범적인 복음의 일꾼입니다.
회사가 부도에 몰리고 바깥에 나앉게 되었어도 선교를 위해 한 번 결심한 것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쓸 것은 없어도 방글라데시 선교회의 회당비는 꼬박 꼬박 지불하면서 어려운 선교사를 도운 결과, 지난번에 방문해 보니 지금은 하나님이 많이 축복해 주셔서 회사가 몇 배로 성장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생명을 걸고 애쓴 결과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지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은 결단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넘치도록 갚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고 하였고, 사도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8)고 했습니다.

6. 두 증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전도는 몇 사람이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다」(막6:7)고 했습니다.
전도는 한 사람이 하는 것 보다 함께 가는 것이 힘이 있고 더 좋습니다.
심지어 귀신들린 자도 둘씩 짝을 지어 다니고(마8:28), 소경들도 둘씩 다니고(마20:30), 가정을 이루는 것도 두 사람이 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이 함께 사역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참으로 귀한 것은 본문 7절에 보니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증인이 받은바 복음의 사명을 다하는 바로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그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권세는 그들의 죽은 시체를 타락과 배교의 상징이요 세상 권세와 우상숭배의 중심인 소돔과 애급의 큰 성 사거리에 온 세상의 구경거리로 방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슬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자들을 속히 영광의 자리에 올리지 않고 저렇게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하시는가?  
그들의 의심과 요구는 당연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가치를 모르고 복음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듣고 믿는 자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능력이 되며,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놓지 않았고, 그야말로 복음을 위해 살다가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 자체가 구원을 얻는 사람은 물론, 구원을 선포하는 자에게도 큰 능력이며 영원한 영광인 줄 믿습니다.

7.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 번째 내용이 무엇입니까?
환란과 핍박 속에 신음하던 교회의 승리입니다.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모여 죽은 두 복음의 증인들의 시체를 향해 조롱과 저주를 퍼부으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승리인양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사단의 권세는 교회가 그 사람들을 장례하려는 것도 금지시켜 놓고 마음껏 희롱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조롱받고 고통당하는 시간은 잠시잠깐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 시간이 3일 반이라고 표현함으로 그 수치와 조롱거리는 불완전한 숫자 즉 잠시잠깐임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사명자인 이 증인들에게도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영광에 이르는 길을 예비하셨고, 그들도 이 길을 함께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잠시잠깐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맛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에게 주어진 영원한 영광을 이 증인들에게도 베푸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요한 바울 2세는 말하기를,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너무 부유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과연 오늘 본문을 두고 한 말처럼 들립니다.
환란 가운데 있는 연약한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 앞에 순교자를 내어 놓았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순교자를 내어놓은 서머나 교회가 있었습니다.
저들은 그냥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야 교회처럼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믿음으로 승리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한 교회입니다.
교회와 복음의 증인들은 세상을 향하여 내어 줄 것은 없어도 하나님을 향하여는 생명과 영광과 존귀를 마음껏 돌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계에 충만하여 부족한 것이 전연 없으시나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정성과 희생을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그렇게 귀하게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8. 본문 4-5절에 보니 주님은 증인들이 살았을 때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능력을 주셨고, 11절에는 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순교한 후에는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이들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12)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 그리고 승천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예수님처럼,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환란 가운데 있는 지상의 교회가 받는 영광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의 삶의 결론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 전쟁의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영적 싸움은 반드시 승리하는 줄 믿기 바랍니다.
교회는 절대 세상이 흔들 수 없는 주님의 몸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성인 줄 믿기 바랍니다.
두 증인은 다름 아닌 오늘 우리 자신들, 받은바 사명을 위해 생명을 걸고 충성하는 우리들인 줄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몸 바쳐 충성함으로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칭찬받는 교회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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