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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하는 고통(요한계시록 12:1-17)
고영수 2020-05-10 추천 0 댓글 0 조회 486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2:1-17 개역개정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해산하는 고통(요한계시록 12:1-17/2012.6.17.오후)


1. 12장에 들어와서 매우 난해한 구절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늘에 큰 두 가지의 이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먼저 1절에 보면 해를 입고 달을 밟고 서 있으면서 12면류관을 쓴 여자가 등장하는데 과연 이 여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 3절에 보면 큰 용이 있어 머리는 일곱인데 뿔이 열 개고 일곱 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계시록의 내용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많지만 이 본문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내려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화가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문의 내용에 얼마나 충실했느냐는 것과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화가라면 해를 입고 달을 밟고 서 있는 이 여자를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어떤 모습으로 그리겠습니까?
그리고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지고 10개의 뿔이 달린 이 크고 붉은 용의 모습은 또 어떻게 묘사했으면 좋을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급히 많이 읽으려고 하지말고 각 성경의 저자의 의도며 개요를 살핀 후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통해 드러난 생각을 말씀 전체의 흐름을 통해 바르게 정리할 때 내 인생에 풍성한 양식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먼저 얼마만큼 본문의 내용에 충실했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동일한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시고 세상에 보내셨는데,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여 살아가는가에 따라 인생의 가치와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2. 제일 먼저 해를 입고 달을 밟고 있는 이 여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본 장의 가장 중요한 열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여자를 가리켜 천주교가 숭배하는 마리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마는,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이 여자는 신구약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지상의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지배적이 타당한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쓰고 있는 12면류관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하고, 신약시대의 12사도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약에서 보면 선지자들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켜 여자, 혹은 신부로 아내로 표현하고 있었고, 이것은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도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표현하는 등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인적인 여자로 보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개혁자 칼빈도 교회를 어머니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표현을 빌린 것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흔히 성경은 남성 중심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가장 흔한 예증은 이스라엘의 숫자를 헤아릴 때 여성은 숫자에 넣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도리어 여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남성 못지않은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구원의 역사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표현인 선민 이스라엘이나 신구약의 교회를 힘 있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유는 교회가 늘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본문 2절에,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본문의 여자가 틀림없이 주님의 몸된 지상의 교회임을 확증하는 분명한 증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출산하기 전에 이미 10달 동안 뱃속에 넣고 키우고 있습니다.
태교라고 해서 뱃속에서도 이미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면 자랄수록, 해산의 날이 가까울수록 얼마나 힘들고 고틍스럽습니까?
그러나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출산이 시작될 때, 즉 생명이 이 지상에 출생하는 순간입니다.
평생에 맛보지 못했던 고통이 시작되면서 욥이 고난 중에 세상에 출생한 것을 후회하고 그 생일을 저주한 것처럼, 여인들도 아이를 출생하면서 사망의 고통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면 교회의 젊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구동성 아이는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4년 혹은 4-5년 지나면 다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유는 몇 년 쯤 지나면 그 때에 고통이 어느 정도 잊혀지면서 하나쯤 더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아이들의 연령 터울이 서너 살쯤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 아내는 아이 둘을 해마다 연거푸 출산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제가 그 고통의 극심함을 모르고 있다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여인의 해산의 고통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이 교회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들만의 모임이요 집단이라면 이 여인의 당하는 해산의 고통 같은 어려움을 당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연구하고 학습함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늘려가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면 그렇게 까지 고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이 지상에 소리를 지르고 출생할 때까지 그 생명을 지키고 양육해야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온갖 고통과 몸부림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교회가 단순히 사도신경 같은 신앙고백만으로 유지되고 존재하는 그런 집단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등록하고 일정의 교육을 받고 교회의 정한 예배와 규율을 지키며 헌금으로 교인의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이 생명을 세상과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지켜 보호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적인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문제 많은 이 자상에서, 끊임없는 마귀의 도전과 유혹으로부터 우리의 신앙과 생명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치열한 전투를 하며, 그래서 여인이 출산하는 해산의 고통을 교회가 맛보는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 주변을 보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을 받고서도 간단히 교회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타 교회로 옮겼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교회를 옮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일들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주님 대신에 세상의 생명을 구원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양육하여 천국 시민으로서 합당하게 살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교회가 좋은 일 한다고 도와줍니까?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도록 협력을 해 줍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늘에서 쫓겨난 용이 분을 품고 연약한 여자가 낳는 아이를 삼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이요 세상의 권력이며 우리가 장차 당할 핍박의 내용들입니다.
          
5. 일본에는 후미에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독신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예수님의 초상화를 던져 예수를 부인하고 놓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 기독신바를 밝혀내 박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깟 그림쯤이야 하고 밟고 지나간다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무사 평안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것을 결코 밟을 수가 없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왜 재앙을 자초하고 왜 그깟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어떤 환란과 핍박이 있더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이상은 그것을 밟을 수는 없으며 밟지 않으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이요 신앙의 순결이요 거룩한 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려운 일을 피해가면서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많고, 목회도 그런 식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소아시아 교회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10)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이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사수하기 위해 생명을 건 각오와 그런 삶에서 참 신앙고백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후미에를 밟고 지나감으로 일시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해버리고 만 사람들이 나중에 말할 수 없는 양심의 고통과 후회에 사로잡혀 그림을 밟은 그 짚신을 가마솥에 넣어 삶아서 그 물을 마실 때마다 참회의 기도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신앙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남다른 사랑과 수고와 희생을 치루지 아니하고는 자랄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이 교회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하지 않는 이상은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하거나 입으로만 신앙 고백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사교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6.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출생한 생명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룩한 군사들의 진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신앙의 고백을 할 때 마다 교회와 성도들은 해산의 고통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내가 교회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신앙이란 거룩한 부담감이 필요합니다.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어머니처럼 생명을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는 거룩한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어머니로 아내로 거룩한 신부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돌뱅이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좌판을 벌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심겨진 나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 자리를 결코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지형이 변해서 그곳에 물이 들어오고 자신이 물 가운데 갇혀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비탈에 위태하게 서 있는 나무들도 자리를 옮기지 않습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요 하나님의 백성된 인간이 나무보다 못해서 되겠습니까?
본문 12절 이하를 보면 여자와 낳은 아이를 핍박하고 삼키려고 용이 공격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4절에 보니, 「큰 독수리의 두 날개」로 보호를 받았고, 16절에 보니 「땅이 여자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천 이백 육십일을 무사히 보낸 후에 악한 사단 용과 더불어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게 됩니다.

7. 여자는 지상의 주님의 몸된 교회요 아이는 교회가 해산의 고통을 통해 낳은 거룩한 백성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산모가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는 일로 인해 역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산하는 고통은 교회와 성도들이 받은 사명과 같은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은 내가 어렵다고 힘들다고 피할 수 있고 도망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까지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바로 그 과정에 이 교회가 서 있으며 이 교회를 중심으로 우리는 지금도 전투를 치루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했습니다.
환경과 주어진 조건이 어려워도 내 자리를 지키면서 한 생명을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하나님이 독수리의 날개로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땅 조차도 용이 쏟아낸 홍수에서 여인을 자키고 도움을 준 것처럼 하나님은 이 교회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든 고난과 환란 속에서 지키심으로, 주신 사명을 감당하여 칭찬받고 면류관을 얻기까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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