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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멸망(요한계시록 17:1-18)
고영수 2020-05-10 추천 0 댓글 0 조회 500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7:1-18 개역개정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11.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바벨론의 멸망(요한계시록 17:1-18/2012.10.7.오후)


1. 바벨론이라고 하면 혼란의 상징입니다.
시날 평지에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지혜와 능력을 모아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인간들의 언어를 복잡하게 만들어 그들의 의도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언어가 달라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함께 일 할 수 없었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한 통일의 상징이었던 바벨탑은 도리어 분열과 혼란의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기원입니다.
본문에서 음녀 또는 여자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데 이 여자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본문 5절에 보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녀는 곧 바벨론이요 바벨론은 분열과 혼란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음녀 곧 바벨론은 어느 한 시대의 권세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상의 타락한 권세를 말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았」 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하면서 크게 변영 하였던 바벨론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물 위에 앉았다는 것은 온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육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온 세상을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그 영향력을 많은 물위에 앉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2. 음녀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절에 가서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이 음녀와 연합하여 소위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유혹하여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몰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포도주에 취하였다」는 이 말은 음녀의 유혹에 빠진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성경적으로 보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음녀 바벨론의 분열과 혼란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까지 침투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는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르지 않았을 때에 이미 조직화되고 관료화되면서 교회 안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위와 이권을 위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을 이용해서 종교적 권력과 명성을 얻는데 치열했습니다.
중세 시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장 상징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 음녀는 4절에 보니 온갖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온갖 더러운 것들로 자신의 금잔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고 전 세계적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하는 것은 좋은데, 지난 번 보니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이 태반인 공연장에서 술병을 나팔 불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고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인터넷의 동영상의 대명사인 유투브의 시청 횟수가 3억 수천만을 넘어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칠 나쁜 영향을 생각하니 잘못되어도 한 참을 잘못된 일입니다.
일본에서 영웅 같은 야구선수 이찌로가 맥주 선전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나와 선전하데 이치로도 싸이도 음녀의 포도주에 취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2. 세상이 음녀의 포도주에 취해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 때, 3절에 보니 성령께서는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갔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음녀인 바벨론의 정체와 그 받을 심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음녀의 시종일관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령님은 공생애를 앞둔 예수님을 이끌어 시험 산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도록 도우셨고, 마지막에는 마귀에게 3번에 걸쳐 시험까지 받도록 했습니다.
이 시험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21세기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지혜로운 5처녀가 되었던지, 예수님의 제자이던 지간에 이 음녀 바벨론과 싸워 이기려면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 분이 우리를 광야로 이끌던지 시험 산으로 이끌던지 우리는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힘으로는 바벨론과 싸워 이길 수 없으며, 음녀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음녀가 붉은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에게는 많은 이름이 있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타락한 모든 권세들이 짐승과 손을 잡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음녀 또는 바벨론이라고 이름아래 연합체를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는 이런 바벨론의 세력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약한 인생이라도 성령님에 이끌려 세례요한처럼 광야로 나가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으며, 성령에 이끌려 시험 산으로 올라가면 예수님처럼 영적 싸움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3. 이 바벨론 음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든 사람들을 미혹하여 우상숭배를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음녀와 짐승과 사단인 용이 꾸민 계략이 무엇입니까?
8절의 말씀에 보니 요한이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다고 했습니다.
계시록 1:4절과 8절, 그리고 4:8절에 기록된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모방한 것입니다.
곧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를 흉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멀리하고 그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음녀의 꾐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이미 13:3절과 14절에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배교의 행위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마치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열심히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으로 착각하고 열심을 내는 것처럼 그들도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음행입니다.

4. 계속해서 13절에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고 하였는데 이것은 열방의 권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권세와 부귀와 온갖 능력을 짐승에게 헌상한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온 세상을 우상숭배라는 음행에 동참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소유와 능력을 아낌없이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체의 남은 때를 즐기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6절에 기록된 대로 순교의 피를 흘리기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리켜 주님은 6절에서,「예수의 증인들」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이름입니까?
이 이름은 순교자 스데반이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고 얻은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사도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그것도 모자라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후에 얻은 이름입니다.
음녀 바벨론을 중심으로 열방이 모든 것을 헌상하면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의 피를 흘리는 이 때에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바치겠습니까?
주님은 의로운 자들을 위해 약속하시기를,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막10:29-30)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이것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사는」(고전15:42-43)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 음녀 바벨론에게 모든 권세와 능력을 바치며 그들이 계획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14절에 보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도전입니다.
저들은 갈보리 십자가의 언덕의 사건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어린양을 향한 도전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당연히 어린양에게 패배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결론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패배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 영원한 멸망의 패배일 뿐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 싸움에서 승리를 얻어 영원한 영광을 얻을 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뿐만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예수의 증인들」 이라 불리는 저와 여러분이 함께 얻을 승리요 영광인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증거하기를 로마서 8: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하였고, 계속해서 증거하기를 결단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8:38-3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단과 짐승의 연합 세력을 깨트리시는데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은 16절에 기록된 대로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고 공격하게 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악의 세력을 심판하실 때 또 다른 악의 세력을 도구로 사용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의 세력으로 형성된 연합 세력이 깨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6. 우리가 믿고 확신 하는 것은, 세상 모든 일에는 그것이 종말론적인 사건일수록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진행되고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본문 17절에「하나님 말씀이 응하기 까지 하심이니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이 일시적으로 핍박을 받고 고난 가운데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종말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것이 생각보다 오래 가는 긴 시간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성도들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는 것을 주님이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악의 연합 세력인 음녀 바벨론이 깨어지면서 하나님을 향한 도전은 마치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렇게 또다시 악의 세력은 혼란과 분열에 빠지며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아래로 떨어져서 두 번 다시 회생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한 시대의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에 교회와 성도들은 연합된 악한 세력에게 노출되어 고난과 순교의 길을 가게 되지만, 어린양에게 붙어 있고 그분과 함께 동행 하는 이상은 결코 망할 수 없는 존재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사랑이 우리를 영원까지 보장하시고 또한 그분과 승리를 얻고 영광을 얻어야만 할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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