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이후의 일(계시록20:7-15)
고영수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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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0:7-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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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천년왕국 이후의 일(계시록20:7-15/2016.10.16.오전) 1. 오늘 본문의 내용은 천년왕국 이후에 잠시 놓임을 받은 마귀가 그 졸개들과 함께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것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서 지금까지 인간의 죄로 오염된 우주만물들을 없애버리는 일과, 마지막으로 백보좌 심판을 통해 선과 악을 영원히 분리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선과 악에 대한 영원한 분리입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선과 악이, 빛과 어두움이 우리 인생 가운데서 꽈배기처럼 얽혀서 분리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시에 분리하되, 악과 어두움이 성도들의 삶에 그것도 두 번 다시 상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와 거짓선지자들을 불과 유황 못에 던지는 것은 지금까지 인간을 괴롭히던 저주와 고통과 죽음의 세력을 영원히 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마귀에게도 일정한 권세가 있고 힘이 있어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데, 20장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며, 특히 마귀를 불 못에 던져 영원히 고통 받도록 하는 심판의 이 행위를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마귀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욥기에서도 알 수 있지만, 마귀가 의인 욥을 미워해서 그에게 고통과 실패를 안겨 주는 것도 일일이 하나님께 보고하고 허가를 맡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본문 3절에도 보면 마귀를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을 때에도, 천사 하나에게도 꼼짝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사로잡히고 있으며, 무저갱에 던져져 인봉을 당한 후에는 천사가 그를 다시 풀어놓을 때까지 이 마귀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인봉된 무저갱의 문을 열 수도 없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임을 당하신 후에 인봉된 죽음의 문을 스스로 여시고 부활하여 영원한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이유는 그가 생명의 주인이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선과 악에 대한 영원한 분리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은 내게 있지만 내 육체가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내가 원하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그 사실 때문에 탄식했는데(롬7:18-24), 마귀를 붙잡아 영원한 불 못에 던짐으로, 연약한 육체로 인하여 바울처럼 탄식하는 모든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마귀의 세력은 벌써 절단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마귀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통해서 영원한 패배를 이미 그 때에 맛보았지만, 그 마귀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경성하여 마귀를 대적하고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밤이 늦도록 등불을 밝히고 깨어서 신랑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의 말씀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에스겔38-39장에 기록된 내용으로, 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아마겟돈의 전쟁을 다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7절에도 나오는 이 전쟁을 가리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인류가 온갖 무기를 동원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무서운 핵을 동원하여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년왕국 이후의 마귀가 최후 발악하여 일으키는 이 전쟁은, 핵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입니다. 3. 무저갱에서 잠깐 풀려 나온 마귀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이 곡과 마곡의 전쟁이 그런 최첨단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무기를 동원하는 그런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3절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미혹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미혹한다는 말은 원어로 <프라네> 라고 하는데, 이것은 길을 잃다, 나쁜 길로 인도하다, 속임을 당하다 방황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영적인 세력들에 의한 유혹에 대하여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종말론적인 상황에서 거짓선지자들이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도록 유혹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이 전쟁이 육체적인 전쟁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계시록의 전체의 흐름에 적합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전쟁이 마귀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 때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까지 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달려든다고(벧전5:8)하였고, 그 방책으로서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5:9)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영적전쟁, 영적 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마24:22절에 보면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환란과 어려움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두려움을 주고 놀라게 만들 수는 있어도, 절대 그 생명과 믿음에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완벽하게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4. 계속해서 11절에 보니 신천신지,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한계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막12:18-27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곱 형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계대결혼법(繼代結婚法), 혹은 형사취수제(兄死娶嫂婚)로 형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 동생이 대신 형수와 결혼해서 형의 자녀를 낳아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신명기 25:5,6절의 말씀대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제도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고구려(부여, 흉노, 선비지역) 시대에도 널리 시행되던 제도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8형제가 차례로 형수와 부부관계를 가졌지만 아무도 자녀를 낳지 못하고 다 죽었으니, 이 여인은 부활하여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였” 다고 하시면서, 사람이 부활하면 또 다시 이전처럼 장가가고 시집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천사들처럼 된다고 하셨습니다(12:25). 다시 말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때에는 지금의 상황과 전연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죄로 오염된 그런 세상이 아니고, 전연 새로운 개념의 나라와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당연히 남녀의 개념이 없으며 차별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멀리 여행을 가면 시간이 갈수록 아무리 좋은 곳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된 그의 자녀는 당연히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5. 여기서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사실 한 가지는 백보좌 심판대 앞에는 두 개의 책이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니, 책들이 있고, 또 다른 책이 있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하고 있는 책들은 사람들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위해 기록된 책으로, 이것은 죽은 자들이 평소에 자기들의 행위를 따라 자세하게 기록된 책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 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책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름이 기록된 소위 생명책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람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당연히 믿음의 근거가 전연 없기 때문에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운 자가 되는가, 아니면 불신앙으로 자신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행위에서 전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렘17:10절에 보면,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행위와 불신자의 행위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신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키는 의무가 주어지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이 우리 삶을 통해서 역사하시도록 복음의 사명자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에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어도 상급이 있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믿는 자에게도 행위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6. 반대로 불신자에게 있어서의 행위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거부했기 때문에 당연히 믿음 대신에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만한 그런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법에 하나라도 저촉되는 것이 없이 완벽하다면 물론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일관되게 증거하기를, “사람은 다 거짓되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했으며, 사도들도 말하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행4:12)다고 하였으니, 과연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 구원의 문에 이를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스스로의 행위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그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고,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법에 따르는 공의를 만족시킬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옥 불에 던져져서 영원히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보 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가 미국을 가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행기 표를 구입하면 비행기가 알아서 목적지에 데려다 줍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까지 혼자서 걸어가거나 헤엄을 쳐서 오직 제 힘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가다가 빠져 죽던지 상어에게 찢겨 먹이가 되든지, 알래스카를 거쳐 가다가 얼어 죽던지 어쨌든 자기 힘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비행기 표와 같습니다. 믿음 하나만 있으면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고 그 분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7.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불신앙인들이 지옥에 떨어져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불신자에게 진노하시느냐 하면,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구원을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그래서 아들을 그들에게 내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불신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기억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선의를, 그 은혜를 짓밟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가 받는 성령의 인치심 대신에 마귀가 주는 짐승의 표를 받아 온갖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만 행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죄인들 위에 임하는 영원한 진노가 곧 지옥불입니다. 아직도 중세 시대보다 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나라와 민족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21세기의 현대인들처럼 많은 자유를 누리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대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자유는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기쁨과 평안함이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유의 진정한 의미와 자유함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잘못된 곳에 사용함으로 자유를 남용하고 더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는 목적이 내 마음대로 내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자유를 선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8. 1993년 10월 23일 새벽에 땟목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고, 그곳에서 따렌 항구에서 몰래 작은 배를 타고 탈출해서 황해에서 표류하던 중에 해군에 의해 구조되어 43년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조창호 소위가 있었습니다. 연세대 교육학과 1학년에 재학 중에 북한의 6.25남침으로 전쟁에 나가 싸우다가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돌아와서 간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군 소위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북한의 전향을 끝까지 거부하니, 노동교화소에서 12년6개월, 그리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구리광산에서 발가벗긴 채 13년간 강제 노동을 당했는데,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셔 폐가 움직이지 않는 규폐증을 앓게 되니 석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늘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소망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첫째는 어머니 묘소에 가서 기도 한 번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쟁 전에 자기 형제 2남 6녀가 새문안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 잘 했는데, 그 교회에 가서 다시 한 번 예배드리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12년간 하나님 잘 섬기다가 소천 하였는데, 그는 43년간의 박해와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자녀 인 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피 흘려 죽으셨는데 이 피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바로 나 때문에, 내 죄가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가 내 대신 죽으심으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생명책에 내 이름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의심 없이 믿고 고백하기 때문에 우리가 환란 중에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미혹의 시대요 거짓선지자들이 유혹하는 세상입니다. 성경에서 보는 인생의 본질은 연약한 존재요 목자의 도움이 없이는 바로 살아갈 수 없는 어린양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내가 약하니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미혹하는 자가 많아 안심할 수 없으니 그래서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잠시잠깐의 이 때를 인내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본문의 말씀대로 우리를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시고, 모든 악과 어두움을 두 번 다시 접근하지 못하도록 영원히 분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그 분의 영광 가운데 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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