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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도(누가복음22:39-46)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0
[성경본문] 누가복음22:39-46 개역개정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기도(누가복음22:39-46/2019.4.14.오전)


1. 18세기에 일어난 1차 산업혁명은 철도와 증기 기관차의 발명으로 인해서 농업 시대와는 전혀 다른 기계에 의한 생산이 시작되었고, 19세기 말에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발명으로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으며, 1960년대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반도체와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의 의한 디지털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 시작된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지금 까지의 그 어떤 산업혁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고 폭넓게 그리고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우리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적응하는데 많은 혼란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클라우스 슈밥이 쓴 제 4차 산업혁명의 책과 케빈 켈리의 인에비터블(The Inevitable-불가피한) 미래의 정체라는 책을 보면, 지금 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의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수년 전의 기록이지만, 전 세계에서 1년 동안에 800만곡 이상의 노래가 만들어지고 있고, 200만 권의 새로운 책과 16,000여 영화가 만들어지고 블로그 포스트는 300억 개, 신제품이 40만 개가 이 세상에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광대한 자료들을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서 다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된 문명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화상 무료 전화 한 통으로 서로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이니, 우리가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화되고 새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산업혁명을 통해서 기계 부품을 고안해서 제작하는 일이 100년 전에 비해서 100배 이상으로 쉬워졌고, 책을 쓰고 출판하는 일은 1,000배 나 쉬워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100년 전의 사람들과 우리의 삶을 비교해 볼 때, 누가 더 행복하며 누가 더 사람 다운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느냐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함께 염려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세상이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부재입니다.
과학은 발달하는데 사람들의 도덕성이나 가치관이나 영성은 갈수록 연약해진다면 그 결과 이 지구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인공지능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과연 인공지능은 무엇인가? 그리고 제 4차 산업혁명은 인류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와 답을 성경 말씀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3.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만찬을 마치신 후에 감람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감람 산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특별히 어려운 일을 만나고 고난 가운데 빠졌을 때 우리가 어떤 일에 힘써야 할지 자신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사방 천지가 사람을 유혹하는 함정으로 가득합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길거리의 간판이나 물건들, 화려한 네온들이 전부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십자가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하게 교회 나와서 예배하고 길거리에 서서 전도 하는 것만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방에 깔려 있는 온갖 유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영적인 전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할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무장을 하지 않고는 적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원문에 보면 번역자가 어떤 의도로 그렇게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40절의 유혹과 46절의 시험은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염려하신 것은 자신이 당할 십자가의 고통이 아니라 제자들이 시험과 유혹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연약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기도하는 사람은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는 자기의 연약함과 무능력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러므로 전능 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여 하나님이 우리 대신 일하시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 39장에 보면 애굽에 내려간 요셉이 나오는데, 그의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틈만 나면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감당하기 어려운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39장 9절에 보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였습니다.
요셉은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고 그를 더욱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해 감옥에 갇혀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이러한 담대한 마음은 감옥 속에서도 형통한 길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과 야곱도 유혹이 있었고, 다윗에게도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다 믿음으로 참았고, 기도로 승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새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으며, 기적과 능력을 원하면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용기를 주며, 기도는 연약한 사람에게 소망을 주며, 기도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그 분도 이 연약함을 이기기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믿음의 기도로 세상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5. 둘째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있고 개개인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뜻을 굽힌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 주위에는 많은 유혹 뿐만이 아니라 많은 대적이 있으며, 인생의 장애물이 있을수록 우리의 뜻을 성취하거나 소원을 이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권력에 의지하거나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이루어 놓은 자신의 뜻이 가져다주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취감은 잠시 잠깐일 뿐이고 결국 내가 이런 것을 위해서 내 인생의 평생을 바쳤던가?
이런 것을 얻으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 시키고 그들의 눈에서 피 눈물을 흘리게 하였던가 하면서 후회를 할 뿐입니다.
원하는 정상을 바라보고 올라갈 때는 몰랐지만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뜻이 높고 강대할수록 상대적으로 박탈 감과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들이 누리는 것을 볼 때에 시기심과 탐욕이 생겨서 먹지도 쓰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마침내 손에 넣고 보면, 그것이 얼마나 보 잘 것 없는 것인지 그제야 깨닫게 되지만 이미 내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11장18절에 보면, "악인의 삯은 허무" 라고 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사41:29)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전도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외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6. 그렇다면 어떤 인생이 가치 있는 인생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복이 있는 인생입니까?
본문 42절에 보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반절에 보니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자신의 뜻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 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더 유익하고 아름답고 소중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는 이런 기도는 결코 겟세마네 동산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홀로 기도하실 때에는 늘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도 우리처럼 외로움과 고통이 있었으며, 십자가를 앞에 두고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수 만 있으면 이 십자가를 피해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과 두려움이 언제 사라졌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좇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시고자 결심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기도를 마치고 난 후에는 그 어떤 난관과 고통이 다가와도 두렵지가 않았으며, 로마 군병이나 대제사장의 무리들, 빌라도의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7.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자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위해 오셨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내 죄를 위해서 그 십자가를 지게 되면 우리의 죽음은 내 죗값으로 죽는 것이지만,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되시면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부활의 능력과 영광에 함께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행함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행하신 이 일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일 때,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셨고, 이 일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8. 마지막으로 환란과 고난의 때는 기도할 때라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기도를 통해서 고난의 쓴 잔을 다른 것으로 바꾸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과하심으로 영원한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얻고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우리가 원하는 데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 아니라, 현재 그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제자들은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을 만났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본문 45절에 보니 슬픔으로 인하여 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기도로 이기려는 생각이 아니라 잠을 통해서 잊고자 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것은 세상에서 너무도 당연한 방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는 잠시 잠을 자거나 다른 것에 취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인생의 문제는 점점 더 꼬이고 복잡해지고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의 질병을 모른 척 하고 방치하면 점점 더 중증이 되거나 다른 합병증으로 확대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처럼 고난의 때에 기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본문 43절에 보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쉽게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천사를 보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한 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면 꿇은 무릎을 펴고 일어설 때, 하나님은 먼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변화 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9. 세상이 눈만 뜨면 천지 개벽 될 정도로 변화되어도, 기도하는 자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역사 하시고 천사가 동원되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기도의 능력은 세상을 변화 시키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의 리더십은 기술이나 자본이나 문명의 능력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영성을 세상 문명이나 과학의 힘이 따라 올 수 없는 것은, 우리 기도의 대상은 전능 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금식 기도하셨고,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께서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을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고 하셨고, 예수님도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고난의 때에 기도에 힘쓰는 자는 예수님 처럼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며 응답 받으며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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