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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로 말미암은 것(고린도전서15:43-44,53-54)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666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43-44 개역개정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부활로 말미암은 것(고린도전서15:43-44,53-54/2019.4.21.부활주일)

1. 로마 제국의 13번째 황제가 된 트라야누스는 기독교를 잔인하게 탄압하는 황제 중의 한 사람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존 폭스가 쓴 세계 기독교 순교사를 보면, 그 중에 심포로사라는 과부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았지만, 그 명령을 거절함으로 분노한 황제에 의해 온갖 고문과 매 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녀를 헤라클레스 신전으로 데려가서 매 질을 당하였고, 그래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기에 만신창이가 된 몸을 머리털로 밧줄을 삼아 걸어 놓았다가, 나중에는 큰 돌멩이를 목에 매달에 강물에 던져 죽였습니다.
그리고 일곱 명의 아들들도 온갖 고문에도 불구하고 이방 신에게 제사하는 것을 거절하였기에 각각 기둥에 매달아 놓고 사지를 각각 이골 시킨 후에 또 다시 고문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장남 크레센티우스는 목이 찔려 죽었고, 둘째 줄리안은 가슴이 찔려서, 셋째는 심장이 찔려서, 넷째 프리미티우스는 복부에 찔려서, 다섯째 쟈스티스는 등을 찔려 죽었고, 여섯째 스텍티우스는 옆구리를, 일곱째는 산산조각으로 토막침을 당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같은 시대에 본투스의 주교였던 포카스는 넵툰신에게 제사하기를 거부한 죄로 석회를 굽는 가마솥에 던져 졌다가, 끓는 목욕탕에 던져 짐으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 몸에 채찍질을 당한 후에 기름을 칠하여 산 채로 불에 태우면서 그 살을 집게로 찢어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순결한 신앙을 위해서는 고난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순교자들을 포함한 많은 믿음의 선배들로 인하여 우리는 지나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복을 받아 누리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받은 고난으로 인하여 우리는 순교자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새 힘을 얻었고,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이 구차하게 생명을 구걸하지 아니하고 순교의 길을 걸어간 것을 통하여 이 부활 신앙의 위대함을 가슴속에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과 핍박이 가중되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2. 고린도전서 15장은 우리가 잘 아 는대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를 믿는 자들이 함께 누릴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기록한 장입니다.
이 15장을 통해서도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이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영적인 싸움이 치열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고백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걷고 있는 믿음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 인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지금 살아 있어도 언제 환란과 죽음이 임할는지 알지 못하는 삶이었습니다.
과연 지금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이런 삶이란 과연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되 하나님이 영원히 살리는 부활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란 그야말로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54)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표현 그대로 사망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음에서 부터 시작하여 온갖 저주와 고통이며, 슬픔과 실패며, 질병과 두려움이며, 어두움과 마귀의 권세를 단번에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말씀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 가지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변화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능력의 근본은 변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 28장에 보면, 승천을 앞두고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는 말씀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받은 능력이 무엇입니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받았으니 곧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부활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의 제자들, 부활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연약했고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뵙게 된 이후로 그들의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서 성령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성령 충만 이후에 그들은 이전에 예수님이 행하시던 일들을 대신하기 시작하였으니, 죽은 자도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온 세상에 염병처럼 번지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부활 사건을 통해 그들은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나비라는 말의 어원은, 나불나불 거리면서 난다고 해서 「날비」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런데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의 아름다움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닙니다.
알에서 시작하여 애벌레와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번의 허물을 벗은 후에 변화하여 하늘을 나르며, 햇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는 애벌레나 번데기 같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생각이 변화되었고, 그 생각의 변화가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변화된 삶에 성령님이 날개를 달아 주시니 인생의 목적과 방법이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가운데 오심도 그 목적이 우리들의 변화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는 듣고 배우고 보고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내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 낼 만 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셔서 도우시고 감화하시며 갈 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성령충만한 사람의 삶과 신앙을 종교적인 의무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본문을 포함하여 고전15장 후반부를 읽어보면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그 중에 한 가지는 육체라고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39절 이하를 읽어보면, 사람의 육체가 있고, 짐승, 새, 물고기의 육체 등 다양한 육체가 있듯이, 그 육체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영광도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체라는 것은 모든 면에서 불완전하고 결국에는 썩는 것이고 욕된 것이고, 늘 세상 가운데서 신음 하며 탄식할 뿐 아니라, 심지어 성령님을 그슬리는 존재이며 그래서 늘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작도 다르고 끝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가진 이 육체로는 결코 하나님의 온전한 영광의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연약으로 인하여 질병과 피곤과 여러 가지의 결핍으로 인하여 고통 하는 존재이며, 또한 마귀의 시험거리의 대상이요, 혈기 왕성하여 죄에 빠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육체를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이란 비록 연약하고 썩어질 육체를 가지고 살아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몸을 입을 것이요, 그것은 영광의 몸이며 신령한 것이요, 하나님의 가장 귀한 것들을 누리는 영광의 몸으로 변화됨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은 바로 이런 육체의 부활을 바라보고, 또한 그 부활한 자신이 받을 영광을 바라보면서, 구차하게 생명이나 재물이나 이생의 자랑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이 부활 신앙을 소유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정체성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씨를 뿌리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씨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은 뿌리면 100배의 결실을 거두는 풍성한 축복을 거두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희생하는 모든 것을 영원히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로 오염된 우리의 더러워진 육체를 주님께 드렸더니, 주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바꾸어 주셔서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죽음이 올 때, 그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고 영원함의 시작이며,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던 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그런 영광과 생명을 누림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는,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은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환경과 조건 때문에 잘 무너지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육신의 연약한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도 고상하고 아름답고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값아 주실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영원토록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몸이 어떤 몸 인가를 바로 깨달아 아는 사람입니다.
장차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는 내 몸이지만 지금은 어떤 몸 인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실이 42-44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6.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고 희생하면,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사도행전의 역사처럼 세상이 전연 예상치도 못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 사망을 이기는 능력일 뿐만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소유하면 박해로 인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가난이나 질병이나 실패 때문에 낙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 함으로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묵묵히 이 세상을 치료하고 위로하고 소망을 주면서, 우리를 다시 데리러 오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 하며 기다리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의 능력을 받아 변화된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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