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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 2:5-11)
고영수 2020-12-31 추천 1 댓글 0 조회 1364
[성경본문] 빌립보서2:5-11 개역개정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 2:5-11/2021.1.1)

 

1. 살아가다 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설득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절실한 욕구 중에 하나는, 상대방으로부터 이해 받기를 원하는 욕구입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같이 통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립되고 수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어느 정신건강 기관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로 부터 고립되었다고 느끼거나,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3배나 빨리 죽을 것이며, 4배 이상의 신경쇠약과, 5배 이상의 의기소침, 그리고 10배 이상의 신경, 정신적인 장해를 일으킨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서로 마음이 통하는 좋은 인간관계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보약이 된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보면 저절로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 관계에서 마음이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신년을 맞이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어떤 마음, 어떤 인간관계를 가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내 삶도 복 되고 형통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2 우선 내가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떠 올리거나, 이름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는 집안 식구나 친척들, 친구나 회사의 동료들, 교회 성도들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가정들이 남들이 모르는 갈등과 고민으로 고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결혼생활이 처음에는 너무 가깝고 좋은 사이로 출발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배우자와 점점 멀어지며, 꿈과 이상을 가지고 출발했던 결혼생활이 이제는 서로에게 고통과 후회를 가져다줍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내 자신이 먼저 용기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상대방보다 먼저 다가가지 않는 이유는 거절 당하고, 더욱 관계가 나빠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거절 당하면 어떻게 하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아닌가 몰라.

그러나 이런 두려움이 우리를 고립된 삶으로 몰아가고 남 모르는 상처를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고 나서는 그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말하기를, “내가 두려워서 숨었나이다”(창3:10)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와 고통과 두려움에 빠진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는 헤롯 왕을 비롯하여 종교지도자들과 수많은 사회의 기득권자들로 부터 외면 받았고, 배척을 당하셨고, 많은 공격을 받으셨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고,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 자신이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시고, 예수님 자신이 말씀으로 천지 만물과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려고 합니다.

이유는 고립 당하거나 미움을 받거나 손해를 입거나 몸과 마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딤후1:7)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없고 육신도 연약해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힘과 용기가 생기고 인간관계에도 담대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기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그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하며 관심을 가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남을 밟고 넘어가도 모자랄 무한 경쟁의 시대에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를 모둔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두렵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예수님께 믿음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그 다음에 우리는 나보다 사람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앞에 있는 4절을 보면,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삶에 필요한 많은 욕구들을 배워가는데,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욕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의 욕구에 최선을 다하면 할수록,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서서히 끊어지고 무너질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채울수록 그것 자체가 그만큼 죄를 더 많이 지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성경은 그 분 안에는 신성으로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비록 연약한 육신을 입으셨지만, 그 안에는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실 때의 능력과 권능은 물론이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을 때 가지고 계셨던 그 모든 영광을 변함없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능력과 영광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열 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실 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모욕하고 죽음으로 끌고 가는 자들 앞에서 도살장의 어린 양처럼 잠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3년 간 이 세상에 계셨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이후에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시는 부활의 영광을 누리실 때까지 죽음의 고통 가운데 머물러 계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죄인 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오병 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것은 물론이고,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 내시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 만으로는 완전해 질 수 없으며, 내가 필요한 것 모든 것도 스스로 채울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도 자신의 결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쁜 버릇이 없는 사람이 없고, 결점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며, 실수와 실패를 맛보지 않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잠17:9절에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고 하였으니, 우리가 남을 공격하고 미워하는 대신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실수를 용서할 수 있으며, 도리어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6.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을 통해서 은혜를 끼치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엡4:29절에,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입에서 나오는 말의 능력을 주셨고 생명의 말씀인 복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모든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면 좋겠습니다.

엡4:25절에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고 하였습니다.

거짓을 말하면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까지 고통을 당하는 것은 내 말을 듣고 있는 그 사람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쁜 말이나 더러운 말이나, 공격하는 말은 결국 공동체인 나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말은 믿음을 가져다주고 소망을 갖게 만들고 서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또한 기회 있는 대로 상대방을 축복하며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힘 있고 용기와 넘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있기 때문에 위로를 주며 힘이 되어 줄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7. 그러므로 이제부터 믿음의 형제들과 이웃에게 축복을 선언하고 용기와 믿음을 주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그것이 나와 우리 모두의 힘이 되고 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적게 하고, 먼저 행동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말이 정말 강한 능력을 가진 도구라면, 그것을 함부로 많이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이 말은 그 말 하는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평소에 말이 많고, 헛된 맹세를 남발했다면 그 사람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면, 전도의 열매는 삶을 통해 저절로 맺힐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간관계를 주신 것은, 서로 경쟁하고 대적하라고 주신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이끌어 주실 때,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며 격려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며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의 환경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과 부끄러움을 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로 오염된 우리의 심령과 지성이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욕심과 욕망과 어리석은 계획들은 지금도 모든 관계가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이런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는 비결을 주셨습니다.

본문 7-8절 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심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얻으셨으며, 그 가운데 우리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이 말씀의 의미는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내 마음 먹기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있으며, 어떤 마음과 자세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느냐에 따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달라지며,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2021년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온 세상을 복된 관계로 가져가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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