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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히10:23-25)
고영수 2021-01-31 추천 0 댓글 0 조회 1244
[성경본문] 히브리서10:23-25 개역개정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히10:23-25/2021.1.31.오후)

 

1.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 그가 우리 가운데서 행하신 일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으며, 장차 그가 행하실 일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그 중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때 부터인가 사람들은 교회로 모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이지 않는 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자꾸 모이지 않게 되니, 시간이 갈수록 모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고 관행이 되고, 그래서 예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감염으로 인해 교회가 폐쇄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습관이 되고,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전에는 그 시간에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교회로 나가지 않는 지금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과연 우리의 이러한 현실이 올바른 일이고 정당한 결정인가?

확실한 것은, 계속해서 이 상태로 나가면 우리는 다 함께 신앙적으로 병들 것이고, 마음도 육체도 연약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두 가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연약해진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 힘을 얻고자 합니다.

 

2. 첫째는 사람들은 점점 모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이유로는 영지주의자들이 교회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유대인들은 교회 보다는 유대인 회당을 선호했고, 믿음이 약한 자들은 박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교회의 모임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모이기를 폐한다는 이 말을 원어로 보면, 버린다, 존재하지 못하게 만든다, 내버려 두거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모이는 예배나 다른 집회가 하나, 둘 없어져도 관심이나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은근히 그런 것을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현상 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하고, 교회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믿음이 점점 연약해 지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박해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부흥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은, 첫째는 성령님의 역사 하심이고 둘째는 그들 스스로가 교회에 모이는 것을 생명을 걸고 지켰기 때문입니다.

옛날 믿음의 선배들과 비교해서 우리가 신앙을 지키고 믿음의 공동체를 사수하는데 있어서 책임의식은 1/10도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그들 보다 모이는 회수는 물론이고 열정이 1/10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3. 둘째는 그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인데, 문제는 그 날이 무슨 날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그 날은 구약에서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로,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을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내용은 같은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에 열심히 모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반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회사에 대통령이 방문하기로 했다면, 그 날짜가 다가올수록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에 바빠야 정상입니다.

준비하며 긴장하고, 예행 연습을 해서 대통령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준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을 앞에 두고 점점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모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5절에서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하였는데,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그 날, 곧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4. 마24-25장에는 천재지변을 포함해서 많은 환란과 고통이 세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막13장에는 환란과 핍박에서 시작해서 온 세상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롬13:11-14절에 보면, 우리의 삶과 행동을 단정하게 하고, 지나치게 육신의 일에 힘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지 않고 예배를 멀리 하는 이유는 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마가13:5-8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12-13절, 19-21절을 부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읽은 성경 구절 가운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라는 전염병은 포함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무엇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까?

이제 조금 더 있으면, 모이고 싶어도 모일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지금은 모였다 모이지 않음을 반복하는데,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모이면 잡아가고, 벌금 물리고, 사회적으로 페널티(Penalty), 벌칙을 줍니다.

그래서 모일 수가 없습니다. 로마 시대가 그랬습니다.

그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대했습니까?

네로 황제 시대는 황제가 자기 백성들이 사는 로마에 불을 질러 대 화재를 일으켰고, 그 범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지목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순교 당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 시대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신들이 노여워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인을 잡아 죽였습니다.

이 때 형성된 것이 카타 쿰입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에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북방의 야만족의 침입을 받고, 전염병이 일어났고, 자연재해가 계속된다고 소문을 퍼뜨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습니다.

이 때 폴리갑 저스틴 마터가 순교했습니다.

그 외에 여러 황제들은 국가의 어려운 일과 재난이며 자연재해까지 전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물어 박해를 가하고 생명과 재산을 강탈했습니다.

 

5. 카타 쿰은 더 이상 지상에서는 믿음을 갖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땅굴을 파고 그곳에 내려가 숨어서 그곳에서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그곳에서 살다가 자녀도 낳고 그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박해 속에서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수록, 점점 환경과 조건이 어려워질수록 더 열심히 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생명을 걸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본문 23절에 보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는 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는 것과,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을 맛보며, 약속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더불어 사는 소망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23절 서두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곧 우리에게 이러한 구원을 주시고 천국의 소망을 주신 주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래서 믿음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은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환경과 조건을 따라가면 더 이상 모일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 인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6. 왜 우리가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까?

벧전 5:8절에 보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 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아궁이의 불과 같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이 사람 저 사람, 한 사람씩 아궁이에서 꺼내어 바깥에 던져 놓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활활 타오르던 아궁이 불은 점점 약해지고, 바깥에 던져 진 장작은 금방 불이 꺼지고 연기만 피우다가 새까만 모습으로 죽고 맙니다.

우리는 모여야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왜? 마귀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인데,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면, 믿음의 공동체를 내가 지켜내어야 합니다.

이 믿음의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고, 함께 모이는데 생명을 걸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에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본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이루어 나가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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