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4:2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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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참된 예배(요4:24/2023.5.14.pm)
1. 우리는 일주일 동안 하나님 앞에서 많은 예배를 드리며, 삶의 현장 속에서도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은 예배가 죽은 예배가 되고, 예배 드리는 사람들도 죽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된 예배며,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가?
본문에서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고 하였으니, 예배자로 살아간다면 당연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로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예배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죤 맥아더는 말하길, 예배는 죄인에게 구원과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역사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총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이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한 창조주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하기를, 왜 꼭 교회만 가야 하는가? 예배를 강조하는가? 질문한다.
이유는,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구원받은 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제사, 곧 예배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져야 할 것이다.
2.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고,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 또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불타오르는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는, 반드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만나 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구약에서 예배는 엎드린다, 따른다, 섬긴다 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기쁨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했다고, 대하29:30절에 기록하고 있다.
또한 욥1:20절에서,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이 예배라는 말의 의미가, 보상하다, 복무하다, 봉사한다는 의미를 첨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눅2:37절에서, 안나 선지자가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라고 하였고, 마2:11절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고 했다.
영어의 WORSHIP 은, 값어치를 지불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시29:2절에서,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고 하였다. 여기서 합당하다는 말은, 당연한 값을 지불한다는 의미이다.
당연한 값이란 구원받은 은총과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에 대한 당연한 반응을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을 향해서 이렇게 당연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그다음에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문에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의 요소에는 「영과 진리」 가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견해는 초대교회 시대의 교부들의 것으로, 참된 예배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만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회개할 마음을 주시며, 또한, 말씀을 듣고 결단하여 새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도와 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깊은 감화와 감동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때, 예배자에게는 감격과 눈물이 있고, 감사와 감동이 있으며, 심령 깊은 곳에서 영혼의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는, 마음이 상하고 낙심한 심령에게 평안과 위로를 허락함으로 하나님과 살아 있는 영적인 교제를 나누도록 도와주신다.
그래서 마음이 상한 자나 의심하는 자가 변하여 새 힘을 얻고, 받은 상처가 치유되고,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된다.
4.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고 감동적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는 예배는 그냥 죽은 예배에 불과하고, 이교도들이 올리는 제사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동도 회개의 눈물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엄히 책망하였는데, 이유는 그들이 타락한 삶 속에서 죽은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절기와 성회를 멸시하며 찬양 소리조차 내지 못하도록 하셨다.
현대 사회의 교회는 날로 치장이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작고 허름한 교회를 경원시 하는데, 그럴수록 그들의 예배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영혼은 병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이나 역사하심이 없는 예배는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럴듯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든 믿는 자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고, 성령의 감화하심에 따라가는 예배가 될 때, 이 예배는 장소와 순서나 모인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이 아름답고 향기나는 최고의 예배가 되는 것이다.
5. 그 다음에 생가해 볼 것은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리는 모든 예배에는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예배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배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이 말씀이 깨달아질 때, 참예배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상 여타 종교와 다른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계시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생명력이 있으므로, 그 안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치료하시고 회복시키는 생명으로 풍성하다는 것이다.
말씀이 무엇인가? 요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하였으니, 말씀은 곧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대신 중보의 기도를 올리고 계시고 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말씀을 공급받으면, 그 말씀을 통해서 진리의 영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창조적이고 풍성하고 복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입게 되는 것이다.
6.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의 예배 대상은 누구인가?
온 세상 우주 만물 가운데 인간의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왕하17:35-36) 이라 하였다.
예배의 대상, 경배와 찬양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이나 마음의 평안을 위해 예배하는 자가 있으며, 다른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자도 많다.
이런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고,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 예배는 그 예배를 드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받으시는 자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를 유익하게 하고 나를 기쁘게 하고 내게 위로가 되는 목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예배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그분 앞에서 죽이는 일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인격도, 나의 생명도, 나의 소망, 나의 삶도, 나의 소유와 젊음도 다 죽이기 전에는 온전한 예배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이런 것을 죽일 때, 참된 십자가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7.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온전하고 아름다운 예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미리 준비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살아계신 주님을 꼭 만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와야 한다.
둘째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히10: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고 하였다.
예배를 위한 온전한 준비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것이다.
셋째로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
예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내 기분이나 태도를 따라 드려서는 안된다,
항상 이 예배는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내가 어떤 환경과 조건에 있다 하여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고 예배하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올려 드리는 지상 최고의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삼상2: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고 하였으니, 우리가 바르고 참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귀하게 여기실 것이다.
8. 우리 인생은 예배를 위해 태어났고, 교회 또한 이 예배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배가 정지되고 예배가 형식화되고, 예배가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면, 이것은 그 예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참된 예배이다. 오죽하면 참된 예배를 찾기 어려우니, 마18:20절에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하셨을까.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 그리고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그런 예배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면, 먼저 내가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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