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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권세(마가복음11:20-33)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299
[성경본문] 마가복음11:20-33 개역개정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 (없음)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늘의 권세(마가복음11:20-33/2019.11.3.오전)

1. 지난 10월 22일, 오가따 사다꼬(緒方貞子)씨가 92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에게 붙여진 많은 별명 가운데, 신장 5피드(150센치)의 거인, 뉴스위크지는 사상 최고급의 국제인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녀는 29대 총리를 지낸 이누까이 쯔요시(犬養毅)의 증손녀로, 외교관의 딸로 태어나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유엔대표를 거쳐 난민고등변무관과 국제협력기구(JICA)의 이사장을 거치면서, 전 세계 분쟁 하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분쟁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분쟁하는 양쪽으로부터 존경 받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활동과 눈부신 업적을 칭송하는 각국 나라와 국제적인 단체로부터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많은 상을 받았지만, 1995년 미국 국립헌법센터가 수여하는 필라델피아 자유상을 수상할 때, 그녀를 가리켜 세계 난민들을 위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 그녀 이상으로 미래의 위대한 희망의 상징이 될 만한 사람은 없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습니다.
국제정치학 박사로 국제기독교대학과 상지대학(上智大学-Sophia University) 등에서 교수 생활을 하였고, 여러 번 일본 정부로부터 외무장관 등의 각료 취임의 요청을 받았지만 한결같이 거절하고 전 세계 난민 지역과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였고, 2012년에 퇴임을 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지난 29일, 천주교 신자로 동경의 덴엔죠후(田園調布)교회에서 고별식을 치루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일생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권위나 혹은 리더십이라는 것이 정치력이나 재력을 가진 특권층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본래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 한 가운데로 자신을 던져버리고, 그 속에서 길을 찾고 인생으로서의 참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인생이 되고 감동적인 삶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억2천 7백 만의 일본에서 그를 능가할 만한 리더십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것과, 아직도 관료주의 중심의 일본 사회가 이 분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영적인 권위를 놓고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 간에 첨예한 대립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지도자들의 허락도 없이 예루살렘 성전 안의 장사꾼들을 다 몰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28절에, 예수님에게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책망 조로 물었습니다.
이 장면을 실제로 본다면 아마 사방에 고드름이 생길 정도로 살벌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지도자라고 하면,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을 말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성경보다 유대인의 전통에 가치관을 두고 권위를 세워 나가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 하다 보면, 이 세상에는 두 가지의 권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땅에 속한 권세가 있습니다. 땅에 속한 권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눈치를 보고 백성을 마음껏 기만할 뿐만 아니라, 절대 권력이 될수록 온갖 거짓과 위선과 부정부패와 착취로 타락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이나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그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32절에 보니 하나님 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고 고함을 치면서 회개를 촉구하면서, 굴러다니는 돌멩이 보다 못한 존재로 비유하였습니다.

3. 둘째는 하늘의 권세, 즉 하늘에서 내려오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권세의 특징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와 진실을 행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오가따 마사꼬처럼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으려면 이런 지도자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이 영적인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본문을 살펴보면 하늘의 권세 즉, 영적인 권위를 소유하거나 회복하는데 3가지의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기도의 능력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던 예수님이 시장하여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 까하여, 가까이 갔지만 잎만 무성하고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자,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였고, 저녁에 성을 나갈 때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버린 것을 보고는 제자들이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나무가 한나절 만에 이렇게 말라버리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광경에 놀라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3-24절을 보면 기도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포한 대로 이루어지고 산을 옮기는 이 기도의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22절 마지막에 보니 "하나님을 믿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기도만 하면 원하는 일들이 해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믿음이 없는 기도는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 같은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믿음이 강해도 기도하지 않는 믿음은 힘이 없습니다.

4. 성경에서 권위라는 말은 힘을 나타내고 있는데, 세상에는 네 종류의 힘이 있습니다.
내면적인 힘과 외면적인 힘, 그리고 정신적인 힘과 육체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고 있는 힘은 내면적인 힘,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힘을 말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헬라어로 뒤나미스 라고 말하고, 이 뒤나미스는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힘은 폭발력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이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이 빗나가게 되면 말에 대한 권위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 응답은 영적인 권위를 세워줍니다.
마가는 본문에서 믿음을 가진 자는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일보다 우리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 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이 무엇이며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6-7장에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마7:7)이라 하시면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11절에서 또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의 권위와 능력은 응답 받는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5. 두 번째로 하늘의 권세는 용서함에 있습니다.
본문 25절에 보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협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 원수가 바깥에 있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 인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를 괴롭히고 망치는 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감을 가지고 남을 미워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따라 마귀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용서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바로 그런 기쁨과 감격을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맛보았습니다.
그 때의 그 감격과 기쁨을 남들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내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부터 영적인 권위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요4: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하였고, 20절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 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를 영원토록 인도하실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보다 더 큰 권위나 리더십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에 감화되어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시는 선물이 하늘의 권세요 영적인 권위인 것입니다.

6. 세 번째로 하늘의 권세는 불의에 대한 공의입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입장에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서, 특별히 거짓과 위선과 불의를 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 인가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왕이라도 그 악행에 대하여 경고하고 책망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예수님 에게서 그 답을 찾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1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곳을 장터로 삼아 물건을 거래하는 장사꾼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채찍으로 그들을 쳐서 몰아내고 말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는 예수님의 분노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에 대한 부당한 대우나 잘못된 재판에 대하여서는 대항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고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셨지만, 귀신 병마에 사로잡혀 고통 하는 사람들을 보셨을 때에는 그 악한 영들에 대하여 분노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악에 대한 공의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나 진리를 두려워 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군중들이 가진 힘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눈치를 보다 보니 일관성이 없이 좌우로 흔들렸고 원리 원칙이 없었습니다.

7. 권위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관성이 없는 행위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개인의 이익이나 안일을 염려해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거나 의심하는 마음이 권위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강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23절에 의심하지 말라는 것과 24절에 미래에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행하실 일에 대한 확신, 믿음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그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믿었기에 골리앗을 물리치고 믿음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으로 충만한 하늘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권세로 인한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 문을 열게 하시고, 사랑과 용서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축복을 주셨으며, 불의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의로 싸워 승리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 가지의 하늘 권세를 가지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세상을 살리고 치유하고 회복하도록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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