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2:1-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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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버지의 소원(마가복음12:1-12/2019.12.1.오전)
1. 예레미야 18장에 보면, 하나님이 선지자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내시면서, 그 토기장이의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어떤 종류의 그릇을 만들지, 그리고 같은 그릇이라도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그릇을 만들지 결정합니다.
똑같은 진흙이라도 아름답게 만들 것인지, 천하게 만들 것인지 가치의 상하를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그 가치가 결정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복을 받을 것이고, 풍성하신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시면 어떤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복 되고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속해 있으며 누구의 손 안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다스리고 있으며, 나는 누구에게 복종하며 무엇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생사 화복을 세밀하게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고난이 많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사도 베드로의 말씀대로,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는 말씀을 믿고 인내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날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삼 일 후에는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나셨고, 우리에게도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단어의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2.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시고,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있고, 농부는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들은 예언자, 선지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포도원을 만들고 그 경작권을 어떤 농부들에게 주고, 1절에 타국에 갔다는 것을 보면 일절 포도원의 일에 대해서는 관섭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그들을 믿고 신용 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흘러 포도원의 수확이 있었고, 주인은 그 수확에서 일부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는데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많은 상처와 수치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인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종들을 보내었지만 결과는 점점 악화되었고, 어떤 종들은 농부들의 손에 맞아 죽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유대 사회에서는 새 포도원의 경우는 그곳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려면 최소 4년은 걸려야 하는데, 주인이 소작을 받기 위해서 종들을 보낼 때는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 법에 의하면 4년 동안 소작료를 내지 않고 그 땅을 계속 소유하고 있으면, 그 땅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농부들은 그런 법적 조항을 악용해서 주인으로부터 소유권을 빼앗으려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종들을 빈손으로 쫓아내고 때리고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주인으로부터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곳에 마지막으로 또 다른 사람을 보내는데 하나 뿐인 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상황을 보면, 농부들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살인까지 감행하면서 주인에게 대적하고 있는데, 포도원 주인은 그렇게 위험한 곳에 아들을 보낸다니 말이 안됩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이제 한 사람 남았" 다고 했고, 그 한 사람이 주인의 아들이며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 이라고 하였으니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3. 결국에는 그 위험한 곳에 아들을 보내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 마지막에 보니 종들은 다 때리고 욕 보이고 죽이더라도 내 아들 만큼은 그들이 함부로 대하지는 못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인의 생각은 아랑곳없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다.
7절에 보니, 이 아들놈이야 말로 포도원 주인의 상속자이니 당연히 죽여서 이 포도원을 우리의 소유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죽여서 장례도 치루지 않고 포도원 바깥에 내 던지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구성에서 보면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포도원의 주인은 따로 있으며, 농부들은 주인에게 포도원을 일시적으로 빌린 것이 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의 것을 빌려 놓고 갚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도적질이고 당연히 법으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아들의 생명까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무참하게 빼앗긴 마당에 그 일을 참고 자비를 계속 베풀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 포도원 주인은 군대를 보내어 그 농부들을 다 죽이고 그들이 강제로 점령하고 있는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불행과 고통이 어디서 옵니까? 탐욕입니다.
탐욕 때문에 포도원 주인을 배신하고, 욕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상속자인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4.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닭살이 돋을 정도로 정확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봉급은커녕 남의 집에서 먹고 자는 것 만으로도 들어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의 노조가 생겨서 회사의 경영권도 노동자들이 제 마음대로 휘젓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벌써 1970년대부터 노동자들의 데모와 횡포 때문에 문을 닫는 회사들이 많았고, 요즘은 많은 법이 정비되었고 인권 운동도 활발하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 보다 더 심한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의 지나친 탐욕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요즘 이 시대는 강도 만난 세상이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옛날에는 법이나 사회 구조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착취를 당해도 하소연 할 곳도 없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약한 사람들일수록 억울함과 고생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긴 것은 특권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 특권을 당연하게 여겼고, 도리어 시간이 갈수록 불만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탐욕 때문에 그들의 인성이 파괴된 것입니다. 양심의 화인을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복과 은혜를 베풀고 에던 동산을 관리하도록 아담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에덴 동산에서 나중에 한 일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역입니다.
5. 요즘 로마 교황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하나님처럼 숭배를 받고 있으며, 공산주의와 손을 잡고 겉으로는 가장 자비롭고 의로운 척 행세하고 있지만, 종교의 탈을 쓴 이리요 늑대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10:10) 라고 하였고,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12) 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정치가와 노조와 인권운동가며 종교지도자들, 교육가들이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고 공의를 구현한다고 떠들지만 그들의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포도원의 농부들처럼 하나님의 소유와 그의 영광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비록 포도원의 농부들이 탐욕과 살인과 수많은 과오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아들을 보내면 그들의 생각이 달라지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많은 종들이 개 죽임을 당하는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도 포도원 주인 된 아버지의 마음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래서 아들을 보낸 것입니다.
6. 그러나 농부들은 아들을 통해서 용서를 베풀기 원하는 이러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지나친 탐욕 때문입니다.
탐욕이, 욕심이 사람의 눈을 어둡게 만들도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예배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 (딤후3:2) 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보다 이웃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좌파 노조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야말로 거위의 배를 갈라 알을 꺼내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농부들은 주인의 의도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탐욕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탐욕의 끝은 어디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악인의 특징은 스스로 멸망에 이를 때까지 거역하고 불순종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비록 허물이 크고 죄가 깊어도 깨닫고 돌아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악인과 선인의 차이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니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무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움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의 눈치를 보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두려움에 대해서는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 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고 하셨고,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일요4:18) 고 하였습니다.
7. 포도원 주인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이 살벌한 포도원에 보내신 것은 그들이 탐욕을 버리고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지불할 뜻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계획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죄의 세력은 자신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힘으로 사람들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수많은 선지자들을 희생하시면서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도베드로는 말하기를 "오직 주께서는 너희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벧후3:9)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 뜻은 죄로 말미암아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끔찍한 포도원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저주를 받아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무한하신 사랑과 아들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8.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하나님은 구원과 은혜에 대해서는 역전의 명수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전연 다른 방법으로 구원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로부터 거부를 당하고 죽임을 당함으로 인하여, 그 구원의 은총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그런 환경을 하나님은 이방인 구원을 위해 역 이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건축가들에 의해서 쓸모없다고 버려졌던 그 돌멩이가 도리어 열방의 머릿 돌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말이 안 되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치 토기장의 손에 잡힌 진흙처럼, 철저하게 망가지고 소망이 없는 존재라도 욕심을 버리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 녹로대에 올려서 새롭게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누구라도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축복과 소망과 은혜를 입어 영원히 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제부터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이 일본 땅에 보내신 귀한 뜻을 깨달아, 받은 바 복음의 사명에 충실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고 늘 은혜와 평안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포도원의 주인 되신 하늘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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