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2:13-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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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는 누구의 것인가(마가복음12:13-17/2020.1.12.오전)
1. 기독교가 생긴 이래로 2천 년 동안 내려오는 문제 중에 하나가 국가와 교회 간의 문제입니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다는 것은, 시대적인 상황의 변화나 정치 제도와 교회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교회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전도나 하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이 사회가 평화와 안정 속에 성장할 수 있도록 뒤에서 기도나 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어떤 문제를 만날 때, 내 생각이나 경험에서 나오는 의견을 주장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본을 보이셨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단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로서는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에 관한 내용인지, 그것도 아니면 헌금에 관한 가르침인지 선뜻 답을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활동이나 이익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로마 정권의 힘을 빌려서 그를 제거하려는 목적에서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더구나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세력이고 헤롯 당원들은 정치적인 세력들인데, 이 이질적인 두 집단이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함께 손을 잡았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정치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고 하셨기 때문에, 이 내용에서 하나님의 것, 소위 헌금 문제를 제외 시켜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정말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핵심을 마지막에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곤란한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는,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고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설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설교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 본문의 내용의 배경을 보면,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된 나라들 중에 종교적인 문제로 가장 민감한 지역이 유대나라,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두 종류의 화폐가 통용이 되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주화는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로마 국가가 발행하는 것으로, 앞면에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또한 「황제 티베리우스는 신으로 숭배 받는 아우구스투의 아들」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또 어떤 기록을 보면, 뒷면에는 황제의 모친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이 여인은 원래 평화의 여신이었는데 사람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고 받드는 그런 주화를 이스라엘 가운데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주화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에는 상당한 저항감이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 내는 세금이나 신앙에 관한 부분은 이런 초상이나 글이 없는 유대 나라가 독자적으로 발행하는 주화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 정부가 요구하는 인두세를 낼 때에는 반드시 로마 주화를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몰아넣으려고 사람들을 보냈는데, 똑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20:20-26절의 내용을 보면, 거기에는 로마 정권에 예수님을 죄인으로 넘겨주기 위해서 정탐들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 관해서 말하기를,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 였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스파이를 보냈는데, 그들은 위선과 처세술에 능한 가짜 의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던진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본문 14절에 보면, 처음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예수님을 칭찬하여 앞뒤를 가리지 못하게 만든 후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먼저 정치적인 문제로 그들에게 시비를 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찾아와서 대뜸 가장 민감한 질문을 먼저 던져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3. 어느 나라나 경우는 마찬가지이겠지만 정치적으로 안정이 안 되고 혼란한 나라에서 상대방을 걸고 넘어지거나 어려운 상황에 빠트리는 방법 중에 제일 간단한 것이 정치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권을 비난하고 아무개를 비판했다고 누군가가 증언하면 잡혀 가서 조사를 받고 어려운 일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제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정치 세력인 헤롯 당원들을 끌어 들였고, 로마 정치 세력의 힘을 빌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 세력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얼마나 부패하고 거짓말로 똘똘 뭉쳐진 불의한 패거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입으로는 법을 말하고 인권이나 정의를 외쳐도 실상은 그곳에는 양심도 도덕도, 신앙이나 정의도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온갖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용하고 배신하며, 때로는 원수와도 손을 잡고 대적을 공격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신앙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정의나 도덕적 가치관은 이미 땅에 짓밟힌 지 오래 되었고, 오직 강한 자만 살아남는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첫 왕인 사울의 정권이 탄생했을 때, 온 백성들은 기뻐했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삼상8:5-8절에 보면,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김 같이 내게도 그리하는도다" (7-8)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하나님은 자녀들 같은 그들의 백성들로부터 버림 당하셨던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대신에 왕이라고 하는 정치 세력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이래로 하나님을 떠난 정치 세력은 절대 권력일수록 반드시 부패하고 백성들을 고통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4.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수도 없이 버림 당하셨고, 배신의 아픔을 맛보셨고, 나중에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스스로 내어 주지 아니하시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에게 스파이를 보냈습니까?
자신들의 정치적 활동과 이익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분의 약점을 잡아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만일에 공산 화가 되거나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당연히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 활동이 탄압을 받고 교회 문들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동독의 경우와 지금의 중공의 경우를 보면, 적어도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반드시 교회 안에 스파이를 보내서 교회를 감시할 것이고, 목회자의 설교를 분석하고, 그날 회의에서 있었던 내용은 낱낱이 보고가 되어, 자신들의 판단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면, 일차적으로 경고가 들어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이런 발언을 계속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설교나 회의 때에 이런 저런 정치 지도자를 칭찬하고 정책을 선전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 정치 세력이 심어 놓은 스파이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인 전부를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히려 가장 열심히 있고, 품행이 단정하고 신뢰감이 가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먼저 의심하라는 그런 말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것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그렇게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5. 본문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고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마22:18절에는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라고 하셨고, 눅20:23절에는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셨"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착하고 정직하다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악한 자들의 밥이 되고 이용 당하기가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세 가지로 무장을 하지 않으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능력입니다. 둘째는 말씀이 주는 지혜입니다.
셋째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적인 무기를 가진 신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믿는 자들을 깔보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예수님 말씀대로, 맛을 잃은 소금처럼 길바닥에 버려진 채 사람들의 발 아래에 밟히는 그런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자와 같은 영적인 각오가 없이는 그 누구도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으며,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드러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2020년도는 세상을 향해 우리의 믿음의 능력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6.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간계, 악한 의도를 아시고 하신 대답이 무엇입니까?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라고 물으셨고, 그들이 로마 황제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17절에 보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정치적인 질문했지만, 핵심은 이 정권에 복종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은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대답을 하던지 한 쪽에는 반드시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으로서는 어느 쪽으로도 피해갈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대답이었습니다.
동전에 그려진 그림과 글이 황제의 것이니 이 주화는 비록 지금은 너의 손에 있지만 결국은 황제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황제의 소유가 황제에게 되돌아가는 것을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실수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은 원천징수 당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제일 먼저 따로 구분해서 납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한 상황에 이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것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맨 나중에 계산하다 보니, 막상 하나님께 드리려고 할 때에는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십일조와 감사에 있어서 하나님에게는 늘 빚진 자처럼 부끄럽고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는 이 말씀대로, 자신을 온전히 십자가 위에서 희생함으로 어린양으로서 속죄의 사역을 완수해 주셨습니다.
7. 인생이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미래를 향한 더 높고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나아가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 자신을 그 분에게 내어 드렸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니, 50-60살까지 인생을 즐기시다가 천천히 십자가를 져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불과 33살의 꽃다운 청춘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아끼고 감추고 속이면서 가이사의 것도 하나님의 것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정치를 논하고 국가를 논하고, 정의와 공의에 대하여 잘못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의로운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공의와 생명의 빛이 있으며, 이것을 세상에 비추며 알리는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잘 하는 것은 칭찬하고 알리고 지지해주는 것도 교회가 마땅히 할 일입니다.
공공 방송이나 언론이 잘못하면 시청료 거부 운동도 하고 질타도 해야 합니다.
또한 경제 활동에도 일본의 오우미(近江) 상인들처럼 삼뽀요시(三方良し) 의 정신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 그리고 지역 사람들까지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한다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그 어떤 논리나 운동도 다 소용이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것을 내 삶에 적용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를 말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자기 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고(마7:3-5) 말하는 부끄러운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8.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후5:15절에서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바 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 우리는 진정한 애국자요 모범 시민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우리 각자가 주께 받은 사명을 완수해 나갈 때, 세상은 온갖 죄와 고통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고,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된 그의 자녀로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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