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3:14-27 개역개정
-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환란의 날에는(마가복음13:14-27/2020.3.8.오전)
1.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세 번째 나타나셔서 일 년 후에는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사라는 너무 늙어서 그 일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고, 그래서 이 말을 듣고 있는 사라가 웃었지만,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14) 고 하셨고, 약속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아들이삭을 얻었습니다. 이런 일은 신약에서도 있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 역시 나이가 많았고 자식이 없었는데, 그가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들을 약속하면서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할 것을 지시하였지만(눅1:13), 그 사실을 믿지 못한 사가랴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벙어리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요셉과 결혼을 약속한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고 하였고, 아직 처녀의 몸으로 지내던 마리아가 놀랜 마음에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37) 다고 하였습니다.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의 능력은 믿지 못하고 불신앙과 어려움에 빠져 고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 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그런 환경과 반복된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분의 창조적 능력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으며,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아버지의 능력과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곧 우리가 환영하는 일이든지 원하지 않는 일이든지 상관이 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건과 역사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2. 본문의 말씀은 종말의 현상 가운데 일어나는 환란 부분에 대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환란을 만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장차 다가올 환란의 내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13:2절에서 헤롯 성전이 파괴되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셨는데, 유대 고대사를 지은 역사 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기원 70년에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 곧 헤롯이 지은 성전을 파괴할 때 일어난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성 안에는 양식이 떨어져 굶주림이 심해졌고, 마침내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린 아이를 잡아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때 포로로 끌려간 자가 97,000여명이었고, 이스라엘 전토에서 죽임을 당한 자가 110만 명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거리는 시체의 썩는 냄새로 진동했고,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때에도 동쪽 성문 맞은편에서 로마 군의 깃발을 세워 놓고 이방 신을 향한 제사를 드렸고, 유대인들의 제사를 금지 시켰다고 했습니다.
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까? 그것은 인과응보였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때, 그 때 유대인들이 외치던 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빌라도가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해 놓아 주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기 위해서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27:25) 고 소리쳤고, 그들의 고함 소리와 억지가 무죄라는 사실을 이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3. 지금은 거짓말이 통하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사실을 왜곡하고 내로남불로 내 뜻을 이루고 공의와 진실을 이긴다 할지라도, 그기에 대한 결과와 보응은 반드시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늘 말조심해야 하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내 뜻을 관철 시키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과 천재지변은 다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진되고 있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 중에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 중에 이 고통으로 인하여 회개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도리어 중국의 경우는 이 전염병이 자기들이 일으킨 병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이웃 나라인 한국이나 일본의 방역활동을 비웃고 있는 상황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전염병이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과연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고 했습니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입니까?
원어로 보면, 몹시 구역질나고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나는 것으로, 이것은 더러운 우상이나 우상화된 물건이나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17절에 보면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화는 깊은 고뇌고 고통, 찢어지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만 보아도 다가올 환란의 고통의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4. 문제는 이런 전무후무한 환란의 날에 우리가 가장 먼저 취할 행동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1년에 일어난 후꾸시마의 쓰나미 재앙을 만난 이후로 일본의 위기에 대한 경고방송의 내용을 보면 무조건 피난하여 목숨부터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성경에 이미 기록되었는데,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 말입니다.
본문 14-16절의 내용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선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생명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창19장에 보면, 소돔 성이 유황 불에 무너질 때, 삼촌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 덕분에 천사의 손길에 의해 미리 피난 길에 나서는 조카 롯에게 천사가 말하기를,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19:17) 고 하였지만, 그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만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26).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라는 끝이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게 국가의 흥망성쇠가 그렇게 우주 만물도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끝이 있는 법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환란은 불신자나 믿는 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삶의 환경으로 인해서 고난 역시 함께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환란이라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영생을 낳으며,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지만, 불신자들에는 이 환란이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이요 그들이 가는 길은 영원한 멸망의 불꽃이 타오르는 지옥이라는 사실입니다.
5.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연 이런 환란 속에서 언제 까지고 성도들을 버려두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 할 것이라 하면서, 그래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 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피할 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14절을 보면 큰 환란이 시작될 때에 징조를 미리 읽고 도망하라는 의미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위기 상황을 빨리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15-16절의 말씀대로 생명을 보존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이나 욕심 많은 사람은 위기 때 설마 하면서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셋째는, 17-18절의 말씀은, 환란을 만나 도망을 가고 싶어도 도망 갈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빠질 수가 있으니, 그래서 미리 기도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19-20절에 기록된 대로 전무후무한 대 환란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그 환란을 인내할 수 있도록 조절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6. 본문을 읽으면서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살육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긍휼 하심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연약한 인간으로서 환란을 피할 수는 없어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성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환란은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성도들에게는 환란을 이기는 인내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정금 같은 신앙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성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은 본문 21-22절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입니다.
마24:24절에 보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고 하였는데,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로 위장한 마귀의 능력에 현혹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이 무너질 때에도 성 안의 일부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의 속임에 넘어가서, 성전 뜰로 피신하면 구원의 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해, 그곳에 피신한 6천 여 명의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이 타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말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24:27절에 보니 그리스도의 나타남이 인간들처럼 어느 특정한 장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이르기 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순간적이며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뿐 아니라, 본문 27절의 내용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해도 주님은 천사는 보내시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음성으로도 충분히 우리를 전부 불러 모으시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영원함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는 어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7. 환란의 날에는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 최우선이며,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택자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별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환란의 날에 기도로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고 새 힘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전염병에 주목하면 우리에게 죽음의 두려움은 우리를 흔들리게 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집중하면, 두려움 대신에 확신과 소망과 환란을 이기는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말하기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일요4:18)고 하였으니,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