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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마가복음13:28-37)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73
[성경본문] 마가복음13:28-37 개역개정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깨어 있으라(마가복음13:28-37/2020.3.15.오전)


1. 영국의 헨리 8세는 밖으로는 로마 카톨릭과 대항하면서 안으로는 종교개혁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던 왕이었습니다. 1519년에 7명의 순교자가 나왔는데, 그들은 카벤트리(Coventry)에서 화형을 당했는데 그 죄목은 자기 자녀들에게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가르친 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뉴버리(Newbury)에서 화형을 당한 크리스토프 슈메이커(Chrietopher Shoemaker)라는 사람은 이웃집에 가서 복음서를 읽어 주었다는 죄로 기소를 당했습니다.
린컨의 주교가 보관하고 있던 당시의 재판 기록을 보면, 1521년 한 해 동안 영어로 된 성경 책의 어떤 부분이든지 읽거나 외우면 그 죄로 재판에 회부되고 심문을 받은 자만 1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런던에서 금세 공을 하는 죤 바렛(John Barret)은 아내와 하녀들에게 야고보서를 성경 없이 암송으로 들려 준 죄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그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법의 이름으로 탄압과 박해가 일상화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흔한 죄목 중의 하나가 위클리프의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그것을 반복해서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죄가 되었고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박해와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뒤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3월4일, 민주당에서 종교 행사나 체육 행사를 대통령의 긴급 명령에 의해 금지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서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야 예배도 드릴 수 있도록 하자는 안건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본 교단에서는 우한 폐렴을 이유로 종교 집회를 전면 금지하려는 것은 종교 탄압이며, 종교의 본질과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내었습니다.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중공 처럼 기독교를 환관 처럼 거세하고 유명무실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교회가 깨어있지 않으면 공산주의 세력은 온갖 구실로 교회를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일어날 여러 가지의 사건과 징조들을 말씀하면서, 우리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9절에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깨어 있으라는 이 말씀이 무려 4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깨어 있어야 하는지, 또한 무엇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인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어떻게 하면 영적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2절에 보면,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하늘의 천사도 아들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재림이란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의 심판의 주로 오시는 일인데, 왜 본인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더구나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으신 분입니다.
더구나 요16:30에 보면, 제자들도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고 있는데, 어째서 당사자인 예수님이 모르신다는 것입니까? 이런 말을 듣는 제자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의심스러웠겠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날짜는 기독교 초기 때부터 최고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측이 난무했고, 2천 여 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때에 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다가 이단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1990년대 다미 선교회의 이장림 씨가 주장한 시한부 종말론이 청소년 가출 등 가정을 파괴하며 한국의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3. 당사자인 예수님도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모른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고 연구하고 밝혀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문제에 관해서는 아예 신경을 꺼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알지 못하는 그의 재림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분명한 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33절에 보니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는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두 가지의 내용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날을 알지 못하니 무조건 깨어 있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재림의 시기를 인간이 아무리 머리를 써 봐야 소용이 없으니 그 날을 알아내려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항상 깨어 있는 것 이외에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누가 24시간, 그것도 일 년 365일을 깨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964년 미국에서 고등학생 남자를 실험했는데 무려 11일 간 무수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동안의 기억력과 정서적인 것과 삶의 상태는 정신착란과 근육무력증 등으로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깨어서 활동하는 동안에 뇌는 유독성 단백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수면을 통해서 쌓여 있는 노폐 물질과 독성을 뇌척 수액이 흘러나와 씻어 주어야 하는데, 이 뇌척 수액은 깨어 있을 때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수면은 본능이고 육체를 위해 일 순위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어떻게 24시간 깨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4. 여기에 대한 그 답을 우리는 마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곳에 보면, 10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기다리다가 늦은 밤이 되자 모두 잠들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신랑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기다린다 해도 쏟아지는 잠을 이길 장사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처녀들은 예외 없이 모두 잠이 들고 말았고, 한 밤중쯤 되었을 때,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25:6) 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잠들었던 10명의 처녀들은 놀라서 일어났지만, 그 때부터 상황이 두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미리 준비한 등에 불을 밝히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지만, 나머지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허둥대다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요청했지만 우리가 사용하기에도 부족하다고 하며 보기 좋게 거절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기름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혼인 잔치집의 문은 닫히고 그 다섯 처녀는 바깥 어두운데서 울면서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다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열 처녀 비유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과 똑같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런즉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는 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답을 여기서 찾아낸 것입니다.
그것은 깨어 있으라는 이 말씀이 24시간을 잠자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5. 또한 본문 3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깨어 있으라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35절에 보면, 주인이 사업차 타국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문제는 주인이 언제 돌아오던지 종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인과 종의 관계라도 언제 올지 알지 못하는 주인을 어떻게 한 밤중까지 깨어서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천사라면 모를까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마24장45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보면, 충성된 종과 그렇지 못한 종의 모습이 나오는데, 여기서 불충하고 악한 종들의 모습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48절 이하에 보면, 악한 종들은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술친구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어떤 것에 중독된 것, 다시 말해서 잘못된 것에 습관화가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전 부분인 37절을 보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때, 즉 홍수로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습니까?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8-39).

6. 사람 사는 것이 먹고 마시면서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대사인데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결국 본문에서나, 같은 내용을 기록한 다른 성경의 말씀들이 의도하고 있는 핵심은 그 날에 대한 준비가 전연 되어 있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우선순위로 다루어야 할 것들을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 때가 되면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방치하다가, 도리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살고 있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더구나 약물이며 술이며 도박이나 게임에 중독이 되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악하고 더러운 일들을 자신의 인생 한 가운데로 끌어들여서 그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삼고, 그런 것들을 인생의 보람으로 생각하고 가치 있는 일로 착각하고 있는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들의 멸망이 문 앞에 이른 줄도 모르고 세상에 취해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할 것은 본문 28절의 말씀처럼, 이 시대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읽어냄으로 종말적인 현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첫째로 모든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월성신, 곧 천체의 질서가 무너져서 그 영향으로 지구에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둘째는 사람들의 정신적 질서가 무너지면서 그 영향으로 사회적 질서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장담을 했는데, 지금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는 하나님도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의 입을 통해서 우리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7.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모든 일에는 징조가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것을 무시하면 어느 날 갑자기 고통이 일어나고 쓰러져서 목숨을 잃던지 대 수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징조를 통해서 조심하면 건강을 회복할 길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일에도 영적인 세계에도, 징조가 있기 때문에 그 징조를 읽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노아 시대에도 홍수가 나서 그 사람들을 다 멸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 쾌락을 즐기는데 바쁘고 피곤해서, 아무것도 아닌 쓸데없는 것이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그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루 일과가 새벽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가사나 직장 일을 준비하면 늦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날에 미리 다 준비해 놓는 것입니다.
마치 열 처녀 비유에서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미리 준비해 놓으면, 피곤해서 졸거나 몸이 불편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파수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파수꾼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8. 어차피 우리는 피곤하고 연약하여 잠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 누군 가가 내 대신 주인이 다시 오시는 그 때를 대비하여 신랑이 온다! 주인이 오신다고 미리 소리쳐 주는 파수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깨어서 기도하며 성도들과 이웃 사람들의 어려움을 나누며 위로하면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항상 오늘 내일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영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재림의 나팔이 언제 들려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사도 예수님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첫째로 그 날을 위해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과 둘째로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랑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을 가지고 사는 것도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깨닫는 것이나 깨어 있는 것은 평소에 반복된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 하고 기도하고 섬기며 전도 하는 것이 내 삶의 일부분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도르는 말하기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믿음의 공동체는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것은, 이 싸움이 영적인 싸움이며, 또한 우리가
연약한 자를 붙잡아 주고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죄악의 단 잠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깨어서 주님을 기다리는 거룩한 신부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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