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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와 은 30개(마가복음14:1-11)
고영수 2020-06-10 추천 1 댓글 0 조회 334
[성경본문] 마가복음14:1-11 개역개정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향유와 은 30개(마가복음14:1-11/2020.3.22.오전)


1. 지금 전 세계적으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데, 그 중에도 유럽의 상태가 심각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이대로 가면 전 국민 60-70%가 감염될 수 있다고 하며, 이탈리아의 경우는 21세기 흑사병과 같은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매일 매일 환자는 늘어나고, 의료 시설과 인력은 부족하다 보니, 일주일 전 쯤의 뉴스에서 치료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의사가 말하기를, 80대의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곳에 20대 청년이 실려 오면 당연히 그 호흡기를 빼서 젊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70대 환자의 경우라도 젊은 사람에게 호흡기를 떼어서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생명이란, 국적과 인종과 소유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신생아에서 시작해서 내일을 장담 수 없는 고령의 노인이나 중병 환자나 지체장애자들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가치는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탈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가치 기준에서 보면,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고 노인들은 사회적 약자이거나 잉여 인간들로 취급 당하고 젊은이들은 젊다는 이유 만으로 노인들을 죽게 내버려 두고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도 그들이 우선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사람은 생각이 중요하고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사회의 노인들도 과거에는 젊은 시절이 있었고,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은퇴할 때까지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들어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이 만들어 왔던 이 세상을 이어받아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들은 과거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젊은이들은 미래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미래 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과거 만으로도 존재할 수 없지만, 이 세상을 유지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다 소중하고 가치가 있고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레19:32절에 보면,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문장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 하기 전에 먼저 노인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경외 하는 신앙은 먼저 바른 인간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사명인데, 그런 사람의 입에서 전 세계로 향해 나가는 뉴스를 통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이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마가복음 14-15장의 내용은 고난의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십자가 첫 부분에 마가는 두 가지의 아주 의미심장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한 여인의 이야기와 둘째는 스승을 배신하는 가룟 유다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26장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왜 마가는 여기서 전연 상반되는 내용의 이야기를 붙여서 기록해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향유 사건은 쏙 빼버리고 유다의 배신 내용만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에는 이 두 사건을 따로 떼어 놓고 기록하면서, 유다의 배신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사건을 붙여서 기록하고 있는 마가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향유와 은 30개 라는 제목으로 정해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또한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세상의 모든 관계는 죽음으로 끝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들의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해서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순교자들의 죽음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생명처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 생명 보다 그 분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하나 뿐인 생명을 아낌없이 그 분을 위해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이 받는 영광은 인간으로서 받을 영광 중에서 최고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의 주가 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3.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미 밝힌 대로 정 반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의 내용은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몸에 부은 사건으로 그 내용이 깁니다.
그러나 후반부는 가룟 유다가 돈을 받고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으로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내용은 자신들이 사랑하며 따르던 예수님 앞에서 물질에 대한 두 사람의 전연 다른 생각과 행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보물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전부 예수님의 몸에 쏟아 부어 드렸고, 다른 한 사람은 제사장들로 부터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떠나서 사회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스승에 대한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면 좋겠습니까? 당연히 전자의 경우는 선하고 후자의 경우는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사자인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신에게 행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치는 목적이 내 의지나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생각이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이 여인의 행위에 대한 유다의 생각이 먼저 나와 있기 때문에 유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4절에 보니, 유다는 그녀의 행위를 보고 굉장히 많은 화를 내었는데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너무도 귀한 향유를 함부로 허비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5절에 보니 그녀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계산에 빠른 유다 답게 말하였습니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옛날이자 지금이니 옳지 못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에게 가장 쉽게 이용 당하는 부류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4. 그런데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요12장에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팔고 있는 이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 그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12: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 보다 유달리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고 그녀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공격하는 이 유다의 생각이 무엇인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은 이 여인의 행위를 아깝다고, 허비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의 몸에 쏟아 부은 향유는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본문에서는 이 향유의 값이 300 데나리온 이상이라고 했는데, 300 데나리온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까?
데나리온은 로마 제국의 화폐 단위로 약 3.8그램의 무게를 가진 은전 하나가 한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당시의 노동자가 일반적으로 하루 품 삯으로 받는 액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300 데나리온은 은 1,140그램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당시 노동자의 일 년 품 삯에 해당하는 큰돈입니다.
직장인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아야 하니 한 달 봉급을 받아도 상당수가 생활비로 사라지기 때문에, 서민이 이 정도의 돈을 모으려면 보통 5-10년은 걸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젊은 여인이 예수님께 부은 향유는 적지 않은 세월을 통해 모은 재산입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화가 날 만도 하고, 어리석다고 비난 받을 만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5. 본문 6절에 보니, 그녀를 괴롭히지 말라시면서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 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화를 내고 있는데, 왜 예수님은 이 행위를 보시고 좋은 일을 했다, 잘 했다고 칭찬하고 계시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8절에 보면,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 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이 일을 위해 33년 동안 고난의 삶을 사시면서 준비해 오신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옥합을 깨뜨렸고, 그가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 되심을 온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는지 만 사람에게 단 번에 알린 것입니다.
권투 선수가 링 위에서 상대방에게 결정타 한 방 날려 통쾌하게 케이오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9절에서 "온 천하 어디서 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에 대하여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21절에 보니,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요 태어난 것이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생명을 얻을 것인데,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평안이 없고 그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정말 이 여인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되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곳에 모여서 예배하는 이 행위도 그 분에게 무엇 인가를 드리기 위함의 행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그곳에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행위를 비난하며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뜨거운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물질 중심의 삶을 살고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온 사람은 돈이 하나님이고, 세상이 천국이지만,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 되고 구원받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천국이고 예수님이 미래의 소망이고 예수님 만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줄 수 있는데 이 향유가 무엇이 그리 소중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낌없이 예수님의 몸에 부은 것입니다.

6. 그러나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한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붓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몰래 나가서 대제사장들과 흥정하며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은 30을 받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고 생각합니까? 더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이 공모해서 미운 동생 요셉을 돈이라고 받고 애급의 노예로 판 것처럼 예수님을 짐승처럼 취급하고 팔아넘긴 것입니다.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섬기고 생각하는 것처럼 제자로서 따라 다녔지만, 실상은 그의 목적은 돈과 세상 권력을 쥐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나 가난한 자들은 자기 성공을 위한 일시적인 도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시즈오까에서 출생한 쯔시마 히사오(津島久雄)는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자신이 한센병(문둥병)에 걸린 것을 알았고, 부모를 떠나 세또나이의 섬인 오까야마(岡山)의 국립요양소 나가시마애생원(国立療養所長島愛生園)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리 아침을 기다려도 컴컴해서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벌써 날아 밝았다는 것을 말해 주었고 자신은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하에도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목숨을 끊으려고 했는데, 그 때 들려온 음성이 있었는데 "너는 내 것이다" 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그날부터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검정고시를 하나 씩 패스해 나가면서 마침내 한센병자로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본기독교단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버림받은 병자요 인생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여기에 이르기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를 인도하신 이기 있으니 내가 죽고자 할 때에 내 이름을 불러 주시면서 너는 내 것이라는 주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남은 평생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다가 2004년에 은퇴를 하고 괴로운 날에 나를 부르라 「悩みの日にわたしを呼べ」 라는 책을 출판하고 2011년 81세로 소천 하였습니다.

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물질에 대한 두 사람의 대조적인 행위를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보물 같은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어 그 분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온 세상에 나타내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심에 불타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게 만들었습니다.
요12장에 보면,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은 이 여인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핑계되 었지만, 예수님처럼 우리를 위해 철저하게 가난하게 되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8:20에 보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하셨고, 또한 부모 없이 형제만 살고 있는 나사로 가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데나리온 30개만 받아도 내게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것이 잘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이야 말로 내 인생에 너무 소중하고 귀한 분인 줄 알았기 때문에 300 데나리온의 향유도 아깝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방이 교회요, 교회 안에는 주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중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드리고 희생을 해도 아깝지 않는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는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진 참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십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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