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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태복음 2:1-12)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39
[성경본문] 마태복음2:1-12 개역개정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태복음 2:1-12/2018.12.16.오전)


1.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 많은 별들이 하늘 이 끝에서 하늘 저 끝까지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별들은 밝고 크게 보이지만, 또 어떤 별들은 너무 작고 희미하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는 그런 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크게 보이고 밝게 빛난다고 다 큰 별이 아니며, 가물 가물거릴 정도로 희미하다고 다 작은 별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도리어 잘 보이지 않아도 대단히 큰 별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 예로 1950년대 후반에 발견된 「퀘이사」라는 별이 있는데, 이 별은 모든 별 중에서 가장 밝고, 가장 멀리 있는 별로서, 그 크기는 은하계에 모여 있는 천 억 개가 넘는 별들을 다 합친 것의 100 배나 더 밝은 빛을 내며, 지구에서 느끼는 태양보다 1만 배가 더 밝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퀘이사가 별이 아니라 또 다른 은하계, 혹은 은하계를 잡아먹는 거대한 블랙홀 이라고도 하는데, 아직 까지 정확한 실체를 다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큰 별들이 우리의 눈에는 가물거리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가까운 것은 6억 광 년에서 먼 것은 무려 280억 광 년의 거리에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6억 광 년이라고 하면, 빛의 속도로 그곳을 향해 달려도 6억 년 세월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우주는 인간의 지성과 능력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존재이며,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별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도 전부터 열심히 연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입니다.
그들은 이 별을 연구하다가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 한 사람들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내용은 동방 박사들이 헤롯 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하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왕궁을 찾아가서 헤롯 왕에게 이런 질문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온 세상의 인류를 다스리는 왕 중의 왕으로서 탄생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전에는 본 적도 없었던 새로 나타난 별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보내시는 아기 예수, 곧 인류의 구원자인 메시야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입니다.
원래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와 축제의 뜻을 가진 마스(Mass)의 복합어로, 이는 그리스도의 축제, 그리스도만의 축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성탄절은 기독교회를 포함하여 어느 사이에 그리스도가 없는 축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만드는 상업적인 축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썰매를 타고 달리는 산타클로스도, 스페인의 세인트 니콜라스가 자기 생일인 12월 5일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에서 유래한 것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서양 세계는 바겐세일로 전락하고 말았고, 이것이 더욱 성탄절을 상업화하는데 공헌하고 말았습니다.

3. 그러나 세속 사회가 어떤 성탄절을 보내던지 주님의 교회는 메시아 탄생이라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역사를 기념하는 복 되고 영광스러운 성탄 본질의 축하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가 기록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2:10)임이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그를 가리켜 “평강의 왕”(사9:6)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실 때에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에, “네 말이 옳도다”(마27:11) 고 하심으로, 자신이 온 인류의 왕 되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탄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천하 만민에게 완벽한 구원을 주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1:21절에서,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세상에는 많은 왕과 영웅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 누구 한 사람도 자기 백성을 위해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실상은 연약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그들이 어떻게 인생을 고통 하게 만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어떤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참된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종교와 사상과 선행, 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줄 믿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이 아기 예수만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며, 그 분만이 우리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에게 참 평강의 왕이시오, 참 구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4. 문제는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를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를 만 왕의 왕으로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경배라는 단어는, 「프로스쿠네오」라고 하는데, 이것은 절한다, 엎드린다, 가치를 돌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목적은, 왕 중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절하고, 엎드려 경배함으로 그를 보내신 하늘의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왕께 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11절에 보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 다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이런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성탄의 분명한 목적들을 나타내셨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은 박사들의 길을 초자연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먼 동방에서 별을 보도록 하였고, 그리고 그 별의 인도를 받게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하였으며, 그 별로 하여금 아기 예수께서 누워 계시는 곳을 정확하게 지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박사들의 기쁨은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령의 감동하심은, 처음에는 그 의도를 잘 알지 못해 의심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때, 우리의 삶과 우리의 예배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으며,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5. 또한 그들이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면서 감사의 예물을 드림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에는 각각 귀한 신앙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황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신 사실을 고백하는 예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며 내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한다면, 오늘 우리는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그분께 드림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신앙의 가치와 능력은 내가 그 분께 올려 드리는 예물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도 많이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나의 가장 귀한 것으로 그 사랑을 표시하듯이,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의 귀한 것으로 섬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 되신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죄와 고통과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주셨는데 어찌 입술로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로 유황을 예물로 드렸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는 연약한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올리고 계십니다.

6. 세 번째로 몰약을 예물로 드렸는데, 이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피 흘려 죽으시는 그의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의 출생은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나고, 행복과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탄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누리기 위해 출생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어린 양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연약하고 죄와 허물이 많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슬프고 가슴이 아픈 것은, 우리가 그 분의 고난과 희생을 입술로만 고백할 줄 알았지, 우리 자신을 주님을 위해서 내어주는 희생이 없다는 사실이 괴로울 뿐입니다.
과연 오늘까지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드렸으며, 그를 위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습니까?
미국의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의 아내가 회사에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눈이 멀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여전히 회사를 나가는데, 처음에는 남편이 회사까지 바래다주었고, 또 함께 퇴근하면서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이제는 더 이상 함께 다닐 수 없으니 혼자서 출퇴근 하라는 것입니다.
배신 감에 고통스러웠지만, 홧김에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버스 운전사가 하는 말이 당신은 참 복이 많은 여자라고 말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당신 남편이 하루도 빠짐이 없이 당신의 뒤를 따라 다녔고, 버스도 옆자리에 앉아서 다니면서 당신을 지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몰랐지만 남편은 아내를 말없이 지켜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7.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늘 나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내가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천국 지옥도 몰랐지만, 이미 그 때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해 주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제일 불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리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를 보내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 최초로 만난 가장 중요하고 복 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나에게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한 확실한 고백을 베드로가 먼저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예수 그리스도 그는 나와 우리의 영원한 왕이요 영원토록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 평안을 주셨고, 세상에서 얻을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살 수 있도록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는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섬기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이 경배를 통해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기도가 응답 되며 내일에 대한 소망이 넘치는 참된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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