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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사야9:6-7)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51
[성경본문] 이사야9:6-7 개역개정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사야9:6-7/2019.12.22.오전)


1. 최근에 니이가타켄의 어느 중학교 3학 년생이 선생님의 태블릿 단말기의 패스워드를 알아내어, 자신의 휴대폰으로 선생님의 태블릿에 침입하여 자기 성적을 조작했다가 발각이 나서 소동이 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변명을 들어보면, 부모님에게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남을 속이거나 부정을 저지르면서 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도리어 부모님을 괴롭히는 것이고, 주위의 많은 사람을 실망 시키는 일이고, 제 자신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나 과정이 잘못되고 일탈하면 그것은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의외로 이 학생과 같은 부류의 생각을 가지고 범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도적질을 한다든 지, 빚을 갚기 위해서 강도짓을 하거나 사기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이 사람들에게는 선 악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과만 좋으면 방법은 무엇이 되던 상관이 없다든지, 나만 좋고 내편에게 유익이 되면 남들이 피해를 좀 보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불의를 행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도리어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감추거나 정당화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비교하고 공격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의 깊이를 더하면 얼마든지 올바른 시민 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화평과 기쁨이 넘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런데 이런 문제는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신앙 생활의 모습이 과연 올바른지,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볼 때에는 내 신앙과 인격에 문제가 없는지, 더 나아가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주님이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내가 속한 이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나는 얼마나 유익한 존재였는지 되돌아볼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여러 종류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지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다 함께 섬기고 다 함께 사랑하고 양보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오래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년 전에 신년을 맞이하면서 올 해는 좀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속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커지고, 여러 가지의 문제로 인하여 고통이 증가하는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내 안에서 조차 분쟁과 다툼, 그리고 섭섭함과 분노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내 안을 먼저 다스려야 삶에 변화가 오고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 가가 나의 이러한 고통과 안타까움을 알아주고, 위로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을 찾기 마련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바로 그런 분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3. 그런데 지금 누가 우리를 못 살게 만들고 고통과 분쟁과 분노를 가져다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는 그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으며, 세상의 온갖 유혹을 이기며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복된 삶을 추구하고 행복한 인생을 꿈꾸어도 우리를 괴롭히는 죄의 세력을 내 안에서 몰아내지 않고는 그런 복 된 인생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기는 누구입니까? 그는 평강의 왕이시며 그는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영원하신 분이요,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히던 죄의 세력을 꺾으시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분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시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그는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무엇이며, 또 지금 행하고 계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4. 본문에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다는 이 났다는 말의 의미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분도 인간이기에 연약하셨고, 인간이 당하는 모든 인생의 무거운 짐과 고통과 슬픔과 문제를 다 맛보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감당하지 못하고, 죄가 주는 고통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만이 겪는 아픔과 절망은 아닙니다. 모두가 겪는 일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겪으셨던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를 가리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린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사53:3)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문제를 맛보심으로 인생이 경험하는 고통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절망적인지 알아서 그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시궁창에 빠지고 똥통에 빠진 것처럼 사방이 고통하고 엉망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고난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였고, 소망이 없는 곳에서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더 찬란한 문명을 일구어내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면서 인내하고 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회개할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5. 1981년부터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던 김석균 목사님의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신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 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내가 힘들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도 쓰러지지 않고 굳세게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나 때문에 온갖 멸시와 고난을 참으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도 지셨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쓰러지면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씻어주신 우리 주님이 얼마나 슬퍼하실까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면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인도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6. 계속해서 본문에는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분이 왕으로서 자기 백성 된 우리를 위해 그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아니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그 분이 우리를 위해 그 어깨에 맨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영원한 저주와 고통 가운데 몰아넣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그곳에서 대신 죽음을 당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고 하면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사53:5) 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요 그 분의 정사, 곧 통치하심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죄의 대가를 그 분이 대신 치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통치방법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은 그 분을 가리켜 기묘자, 모사, 또는 전능 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기묘자라는 이 말은 히브리어로 「펠레」 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성을 초월하는 기이하신 존재로서, 비록 육체로 오셨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 분을 가리켜 모사라고 하는 이 말은, 메시야로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지혜와 모략의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7. 요즘은 온 세상이 경제라는 이 단어 하나에 묶여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선 악은 물론이고 법과 질서도 무시하고 국가나 단체나 개인이나 돈이라고 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돈이 되는 일에 매달려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어리석고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물론 돈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마는, 그러나 이 세상에서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생명이요 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선하는 것이 돈이나 양식이 아니라 지혜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비웃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지금 떡이 필요한 상황에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야 말로 사람을 살리는 지혜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는 떡을 살 수는 있어도 생명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떡으로는 배를 불릴 수는 있어도 영혼의 양식으로는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모든 죄와 인생의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넉넉히 지키며 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구유에 누워 있는 이 아기는 그냥 단순한 인간의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요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창조주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의 양식이 되는 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의해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말하기를, "무릇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일요5:4) 이라고 했습니다.

8.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아기 예수님을 가리켜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지구촌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평강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평강을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이루는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으시고, 먼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할 때, 세상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모든 물건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상미 기간이 있고, 심지어 부모 자식 부부 형제간의 사랑도 기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도 없고 기한도 없고 영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룰 것이라" 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버릴지언정 언약의 백성은 버리시지 않으시는 줄 믿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심히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키느아드」 라고 하는데, 이것은 질투심, 혹은 시기심을 말합니다.
이 여호와의 열심은 우리를 결코 원수의 손에, 마귀의 손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 뜨거운 아버지의 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이 뜨거운 마음, 불같은 질투심이 일어날 정도로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를 위해서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고 하면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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