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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가(고전2:1-5)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76
[성경본문] 고린도전서2:1-5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가(고전2:1-5/2020.2.9.오전)

 

1. 지금 전 세계는 작년 12월 초에 발견된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감기 바이러스 유행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2009년 4월에 멕시코에서 발견된 신형 인플루엔자의 경우도 처음에는 돼지에게 감염된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5월엔 일본에서도 환자가 생기면서 처음에는 소강상태를 지속하다가 8월부터 12월까지 대 유행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 정부가 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사태는 보통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한 달쯤 이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내용이 실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비해서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중국에서만 이미 지난주에 감염자가 15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2만 4천 여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이번 바이러스가 2주 간 전후의 잠복기를 거쳐서 나타나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도 보균 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과, 중국을 포함해서 국가나 언론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감염이 두려워서 될 수 있는 대로 활동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경제에도 타격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우리 자신을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두려움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 모여서 예배도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2. 1340년대의 중앙아시아, 혹은 인도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2천 5백 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고, 이 숫자는 당시 유럽 인구의 30%에 해당되는 숫자였다고 합니다.

그 때 사람들은 이 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로 인한 여러 가지의 오해로 인하여 집단 학살이나 마녀사냥이 횡횡 하였고, 이로 인하여 사회적인 붕궤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했다고 합니다.

1918년 3월에 미국에서 시작된 스페인 독감의 경우는 5억 명이 감염되었고 5천 만 명에서 1억 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는데, 그 당시의 세계 인구의 3-5%가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국은 무오년 역병으로 불렀고 이 때 74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지구촌을 위협하고 고통 하게 만드는 일들은 전쟁이나 전염병 이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가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에 이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태초에서 부터 있었던 일이고, 여기에 대한 인류의 반응은 도전과 응전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첫 번째 위기와 여기에 대한 인류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 역사는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으로 인하여 인류는 에덴 동산이라는 지상 낙원에서 추방되어 바람 부는 황무지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전쟁이며 전염병이며 자연의 재해들이 이 지구촌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그 때마다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서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나가 싸워 이김으로, 새로운 경지를 열었고, 도리어 그런 고난과 도전을 통해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3. 오늘 우리가 만난 이런 위기의 현실 속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 인생이 두려워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고통 케 하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지상 낙원인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불순종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3:8-10절에 보니 그들이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이 때부터 인류는 오늘까지 두려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 두려움에 지배를 당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감정 중에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염려나 근심이나 두려움입니다.  

그 예로 고후6:4-10절에 보면 사도바울처럼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어려움 당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 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 다고 했습니다.

또한 고후7:5에 보면,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 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복 된 일입니까?

그러나 사도바울도 가는 곳 마다 만나는 사건마나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환란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6:18절에 가서는 하나님은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고 하면서 성도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심지어 히12:21에 보면,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노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불타는 떨기 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평생에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모세도 인간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죄는 시대나 사람을 가리지 아니하고 다 두려움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4. 그런데 사람들은 죄 때문에 왜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분명한 사실을 선언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롬 6:23절에 보니 "죄의 삯은 사망" 이라고 하였고, 롬 5:12절에도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 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죗값을 치러야 하고, 그 죗값은 영원한 죽음의 고통과 저주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 나가면 그 게임이 끝날 때 까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축구 선수가 볼을 가지고 상대방을 공격을 하면서도 볼을 빼앗길 염려를 하고, 골을 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상할까 두려워합니다. 야구 선수도 자기 팀이 이기기 있어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은 사업하는 사람도,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마음도, 정치하는 사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불안하게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지은 죄가 나를 따라 다니면서 죄에 대한 사망의 값을 내어 놓으라고 하는 죄의 추적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의 추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출 20:5에 보니,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죗값이 삼사 대에 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내가 낳은 자녀들은 물론이고 오고 오는 자손들에게 까지 그 죗값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업이 잘되고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풀려도 속으로는 불안해 하고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니 엉망이 되고 망하고, 평안이 없고 좋은 결과를 예상했는데 나중에 빠져나올 수 없는 실패와 고통에 빠지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정직하게 살고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죄가 주는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맛보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한계입니다.

 

5. 그러나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죄를 용서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두려움에 빠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 앞에서도 평안하고, 신앙의 박해를 당해도 당당하고, 귀신을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병자의 몸에 손을 얹은 즉 질병이 물러가고,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불평 대신에 감사와 찬송이 있으며,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요14:1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하셨고, 7절 까지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아는 만큼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물에 대한 것도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고 두려운 것이지 알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왠지 불안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알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모를 때가 문제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온갖 근심을 가져다주고, 그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사람 구실을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환경과 나쁜 조건 속에 있어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면 염려할 것도 근심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해 주신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를 세상에서 평안하고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게 하는 줄 믿습니다.

 

6.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 (벧전3:14) 라고 하였습니다.

남들은 다 두려워하는데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본문 2절에 보니 사도 바울의 삶의 목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는 소망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과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은 남들보다 더 많은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그것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왔을 때에는 그에게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두려움을 떨쳐 버린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둘째는, 본문 4절에 보니 "내 말과 내 전도 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실제 생활 가운데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꾀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5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어떤 것인지 뼛속까지 깊이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온 세상을 뒤집어 놓는 전염병에 두려워 할 이유가 우리에게 없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우리를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고 내일 일을 모른다 할지라도 근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우리의 남은 인생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과 같이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 하게 되려 하나니, 이는 네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하-21) 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번 우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더한 어려움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두렵게 만들 수 없으며, 그 어떤 실패와 고통을 만나도 그것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을 것은,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우리 안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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