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 설교 자료 >
  • 주일예배 설교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라(하박국3:16-19)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63
[성경본문] 하박국3:16-19 개역개정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라(하박국3:16-19/2020.2.16.오전)

1. 마가복음 13장에 들어가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내용은 세상 종말이 다가오면 어떤 징조들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전쟁과 자연 재해로 사방이 고통에 빠질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21세기가 되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쟁과 테러는 물론이고 경제적인 혼란과 전염병으로 인해 세상은 더욱 흉흉해지고, 사람들의 도덕성이나 시민 정신은 이미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미국의 의회에서 미국 대통령이 연설문을 의장에게 건넬 때,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의장의 손을 모른 척 한 것과, 연설이 끝나자 그 의장이 연설문을 보란 듯이 찢어버린 것을 보면서, 이제 미국도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국가가 완전히 좌우로 두 동강이 났고,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 상태에 11월의 대통령 선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선거가 끝난 이후의 미국의 모습이 심히 염려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21세기는 미래에 대하여 소망이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제일 강한 자였기 때문에 전쟁이나 위기 국면을 맞이하면 그들이 앞장서서 싸웠지만, 지금은 어린아이들 다음으로 약한 세대가 젊은이들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생긴 신조어가 있는데, 삼포 세대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뜻이고, 그 뒤로는 오포, 칠포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경력과 집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에는 희망과 취미와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고 해서 칠포가 된 것입니다.

2. 일본의 경우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토리세대(さとり世帯)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욕심이 없고(의욕이 없다), 연애에 흥미가 없고, 여행을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휴일에는 집안에서 뒹굴면서 시간을 때우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아예 만나지 않으며 소비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장기 불황을 통해서 나타난 사회적인 현상으로 스스로 포기한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물가는 자꾸 올라가고 소득은 알게 모르게 줄어들고, 몇 년에 한 번 씩 지구촌 규모로 대형 악재들이 쏟아져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있는데, 특히 작년 12월 초에 발견된 우한 폐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향해 확진 중에 있고,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지금은 어려워도 내일이면 좋아지겠지 생각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장기 불황 시대를 거치면서 그렇게 두터웠던 중산층이 다 무너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말 산다는 것이 스트레스이고 고통입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삼포니 오포니 칠포니 하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렇듯 시간이 갈수록 세상은 살기 어려워지고 지금보다 더 많은 환란과 재앙과 전쟁이 지구촌을 휩쓸고 지나갈 것인데,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으며,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바른 대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고자합니다.

3. 먼저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기원전 600년 전후로 남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의 여호야김 왕 때에 하나님이 선지자 하박국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만연하였고, 부자와 권력자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선지자들은 거짓 평안을 말하고 피를 쏟으면서 쓰러져도 억울함 호소할 곳도 없으며,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그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마지막 메시지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 땅에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던 때입니다.
그 때의 선지자가 가진 답답함과 괴로운 심정이 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그 시기를 알지 못할 뿐, 분명히 가까이 다가 왔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심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점점 이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들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닙니다.
그런 상황에 부채질이라도 하는 듯이 의인들의 기도는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정한 시간이 오면, 사람들이 쌓아 놓은 모든 것은 바벨탑 처럼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이 지구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고통은 점점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예레미야 10:2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 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위기가 오면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될 대로 되라 설마 죽거나 망하기야 하겠는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는, 시대를 분별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과거 노아의 시대에도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실 때, 그 때 사람들도 이렇게 반응하였습니다.
비가 좀 심하게 오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멈추겠지 생각하고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안전하겠지 하던 사람들은 다 홍수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시대를 분별할 줄 몰랐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심판을 읽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위기의 시대에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본문 16절에 보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고 하면서 계속해서, "환란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히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므로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고 하였습니다.
잔인하고 흉포하기로 유명한 갈대아인들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유다 나라를 쑥밭으로 만드는 것을 알고 있는 선지자는 그것을 생각만 해도 창자가 뒤틀리고 뼈가 썩는 것 같고 입술이 떨렸다고 하였는데, 갈대아 인들의 손을 빌려서 범죄한 유다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이런 표현을 사용하겠습니까?

5. 우리는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놓고 우리도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흔들리거나 내 생명을 운명에 맡기고 사는 그런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비록 이 땅에 두 다리를 딛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 수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천국 시민권이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선포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29:11) 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어떤 흉흉한 소문이 들려도 그것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재앙이나 멸망이 아니라 도리어 소망과 구원과 위로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은 그 어떤 환란과 고통과 두려움도 다 물리치게 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굳게 세워주는 줄 믿습니다.

6. 요즘 하고 있는 큐티 본문을 보면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부활에 관한 내용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뒤에 늦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원망하듯이 예수님에게 말할 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는데, 마르다는 지금은 몰라도 마지막 날에는 모두가 살아나며 그 때 나사로도 살아날 것이라는 의미를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나사로를 살려 주시겠다고 했지만 듣는 사람은 다른 의미로 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하고 지금 내 삶 한가운데 일어나는 생명의 부활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
예수님은 분명히 지금도 살아날 것이고 앞으로는 영생을 누리리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정말 위대하고 어마어마한 능력이요 축복인데, 우리는 그것을 코끼리 비스킷처럼 그렇게 조그만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크기와 영적인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키워야 합니다.
일본이 2011년에 큰 쓰나미를 경험하고는 방재를 더 높이 더 튼튼하게 쌓는 것처럼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이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그런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도리어 위기를 기횔 만들어 가는 그런 신앙의 능력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7.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의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잡을 때, 로마에 끝까지 항거 한 헬라의 도시들은 그 땅에 소금을 뿌려 두 번 다시 그 땅을 경작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응징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도 임진왜란 때에 조선을 침공하여 도자기를 굽는 수많은 도공들을 잡아 가면서 남아 있는 가마들은 철저하게 파괴하여 더 이상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침략군은 무서운 것입니다. 전쟁에 패배한 약한 자들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짓밟힐 뿐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유다 나라에 있는 무화과나무는 더 이상 그들에게 양식이 되는 열매를 내지 못하게 되었고,
더 이상 포도나무는 음료수가 되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으며,
감람나무에서 더 이상 기름을 짜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 나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철저하게 망가지고 모두 무너져 내렸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가 그 동안 믿고 의지해 오던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때에, 이런 비참한 현실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그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떤 생각으로 어떤 자세로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본문 18-19절의 내용입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소망을 세상에 두지 아니하고, 무너져 내린 과거에 내 삶의 의지가 되고 소망이 되었던 그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지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9절에 보니 여호와는 내게 있어서 유일한 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8. 우리가 예수님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를 비교해 보면, 이전에는 염려와 근심과 낙심이 우리의 삶을 지배했는데, 지금은 감사와 기쁨과 평안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전에는 세상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했고, 지금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대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그는 우리의 기쁨과 소망과 능력의 공급자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 나라의 마지막 시대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눈만 뜨면 대형 사고 소식이고, 가슴 아픈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문제들이 지구촌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마음이 담대한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양심과 도덕이 마비가 되었고, 이성이 오염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만 괜찮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식의 이기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증거한 대로,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신"(시37:4) 다고 하였고, 느헤미야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느8:10)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사는 것을 기뻐할 때, 두려움과 고통은 물러가고 넘치는 축복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과 소망으로 삼아서 남은 삶을 통하여 열방을 향한 최고의 간증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십자가를 보라(누가복음 23:44-49) 고영수 2020.06.10 0 410
다음글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가(고전2:1-5) 고영수 2020.06.10 0 375

大阪中央教会 ⧧537-0023 大阪市東成区玉津3-1-33 (06) 6973-5540, 6929-1569 www.chuo.co.kr sirokita@gmail.com

Copyright © 오사카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9
  • Total82,933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