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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요한복음20:19-23)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399
[성경본문] 요한복음20:19-23 개역개정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요한복음20:19-23/2020.4.12.오전)

1. 지난 4월7 일자 아사히 신문을 보니, 전 세계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외출 규제 대상이 된 사람들이 39억 인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도 지난 6일에 수상이 긴급 사태를 선포하고 동경, 오사카를 포함한 7개 현에 감염확대 방지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재택 근무를 하고 아이들도 학교를 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 내의 폭력과 이혼 사유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측해왔던 경제적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위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사회적인 조건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음과 양이라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음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을 말하고 양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지구 전체에서 억울하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 시키는 이 전염병에 무슨 긍정적인 면이 있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이번 전염병을 통해서 내 인생에서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것을 고쳐나간다면, 이 전염병으로 인해 도리어 전화위복을 가져오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대로 외출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가족들이 좁은 집안에 갇혀 사는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서 부부 싸움이 잦아지거나 가내 폭력이 일어나고 이혼까지 가는 그런 상황이라면, 그것은 지금까지 본인들이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이 이번 전염병이라는 재앙을 통해서 드러난 것 뿐입니다.
지금까지는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 있던 부부간의 문제가 드러난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구타하고 집안을 험악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면 부모 자녀 관계가 평소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장 경제 문제 때문에 살 길이 막막하다면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집안이나 사업의 경제 관리에 문제점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2. 사람은 누구나 위기라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준비하는 본능적인 방어 능력이 있는데, 평소에 그런 문제를 너무 소홀히 하며 살았기 때문에, 위기를 만나면서 사방에서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라도 내 인생을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문제를 고쳐 나간다면, 오히려 이번에 만난 이런 위기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주기적으로 교회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교회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그런 위기 상황에서, 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내 신앙을 평소처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이것은 외부의 문제 이전에 지금 까지의 내 신앙과 삶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더 큰 환란과 문제가 지구촌 규모로 우리를 엄습할 것이 분명한데, 그런 특수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지켜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환경과 조건에 관계없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안정된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면, 결국에는 이런 위기 속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 번 믿음에서 흔들리다가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여간해서 옛날의 자리로 되돌아가기가 어려운 것은 늘 24시간 우리를 호시탐탐 엿보면서 멸망에 빠뜨리려고 우리를 유혹하려고 하는 사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우리 영혼과 육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 하며 살도록 훈련하고 격려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그런 곳입니다.
성도들이 어떤 문제를 만나도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지만, 정작 우리의 영혼과 우리 인생을 확실하게 책임져 주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대하여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인생의 모든 소망을 걸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종교 생활로 자기 만족을 이루는 인생의 액세서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 주일을 기다리며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은 너무 약하고 우리의 신앙도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의 능력을 받아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복 된 자녀로 살아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이미 삼일 만에 무덤을 열고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인 제자들은 한결같이 박해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 달아 죽인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와 박해가 자신들에게도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같은 유대인들이면서도 다른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은 인간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마귀의 전략 무기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한 번 두려움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건강도 잃어버리고 인생의 목표도 잃어버리고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지위와 신앙심까지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4.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누가 찾아오겠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서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곳에 누가 찾아왔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고, 또 24절 이하에 보면 일주일 후에 또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26절에 같은 말씀을 반복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연약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사7:4) 고 하셨으니,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시34:4)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오셨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 하셨습니다. 이 때, 믿음 없는 도마를 위해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27절에 보니,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못 자국 난 손과 창으로 움푹 패어 구멍이 난 옆구리를 도마에게만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본문 20절에 보니 다른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연약하고 의심이 많은 인간들은 제 스스로 보고 만져보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핵심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근심과 고민에 빠져 있는 이유는 그들이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나고 믿음만 있으면 다 넘어갈 수 있지만, 믿음이 없으니 아무도 잡으러 오는 자가 없어도 제자들은 미리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5.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어려울 때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믿음을 소유한 자는 큰 능력으로 큰 역사를 체험할 수 있으며, 작은 믿음이라도 가진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용하면 그 믿음은 우리를 담대 하게 만들고 모든 환란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못 자국 난 손과 창으로 찔린 자국을 보여주시는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사람들이 내가 만난 어려움과 슬픔을 위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고 슬픔이 갑자기 사라집니까?
어려움을 만난 사람들을 찾아와서 곁에 있어주고 위로해 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두려움에 문을 잠그고 떨고 있는 제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물리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자 말자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부활의 능력을 인정하고 불신앙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6.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상처 난 몸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하신 것은 22절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는 것입니다.
인간은 보고 만져서 분명한 증거를 얻어도 또 다른 문제가 닥치면 여전히 실망하고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말씀으로 확신을 가지고 힘을 얻어서 집에 돌아가도, 내일이 되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평안을 잃어버리고 좌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잔소리 말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내 말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과 문제에 맡는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대신하여 오시는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믿게 되고, 성령 충만 할 때 주님의 일꾼으로 복음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면 세 가지 확실한 것을 얻게 됩니다.
첫째는,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히던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집니다.
성령님이 끊임없이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만져주시고,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여 새 힘을 얻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렵지 않으며,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23절에 기록된 대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는 말씀대로, 어떤 죄인이라도 다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7.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용서 받지 못할 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용서 받지 못하는 자의 가련함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고통과 억울함을 주었던 그런 사람이라도 분노 대신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으며 그래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내 마음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용서의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셋째는,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이 믿음의 길을 갈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세상에서 성공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귀한 것일수록 지키기 어렵고, 하늘나라의 보화인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면, 내 의지와 고집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믿음은 저절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힘으로는 이런 믿음이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자신의 못 자국 난 손과 물과 피를 다 쏟아내신 그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또한 그 위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제일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자가 우리들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씻을 수 없고,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도 부활을 소망 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이 좁은 믿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축복이요 영광인 줄 믿습니다.

8. 예수님의 못 박히신 손과 옆구리의 창 자국은 부활의 증거가 되며, 또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의 증거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이 죽음을 이긴 승리이며, 진리의 빛이 저주와 고통의 어두움을 이긴 승리이며, 원수 사단 마귀 권세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무너진 영적 승리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에게도 영원한 새 생명과 부활의 소망과 영광이 주어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세상을 이기는 축복의 사람이 된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21절에 보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이 세상에 부활의 증인으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18-20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19) 라고 하시면서, 영원토록 이 복음의 사명자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우리를 위해 다시 사신 예수님의 이 영광의 승리를 온 세상에 전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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