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사사기 21:25)
고영수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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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사사기21:2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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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사사기 21:25/2020.4.19.오전)
1.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는 자신의 저서 로마인이야기(ローマ人の物語)에서, 로마인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로마인은 지성에 있어서는 그리스인 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 족 보다 약하고, 기술은 에트루리아 인을 따라 가지 못하고, 경제에 관해서는 칼타고 인 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는 주변에 있는 다른 나라와 민족들과 비교해서 월등히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별 볼일 없는 로마 사람들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국가를 유지하면서 가장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과 제도를 충실히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질서 의식이나 준법 정신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나 민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했기 때문에, 그 힘으로 로마 제국의 번영을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총선을 치루기 위해서 국회에서 법을 바꾸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투표의 결과를 보면서, 정말 이것은 대한민국이 국가도 아니고 거대한 양아치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선배들이 피땀을 흘려 일구어 놓은 선진 대한민국이 불과 몇 년 만에 천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난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사기 서의 마지막 부분의 한 절이지만, 이스라엘이 출 애굽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는 긴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나 고통에 빠진 이스라엘의 현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이 21장 25절의 한 구절을 강론하기 위해서는 19장의 사건부터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2.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는 어느 레위인이 베들레헴 출신의 한 여인을 첩으로 삼았습니다.
문제는 이 여인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바람이 났고, 그것 때문에 부부 싸움 끝에 여인은 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석 달 후에 레위 인은 여인을 데려 오기를 결심하고 종 한 사람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장인은 사위를 보고 반기며 환대를 하였고, 여인도 남편을 따라 돌아가기로 했는데, 장인은 먼 길이 어려우니 체력을 돋우며 쉬었다가 천천히 돌아가라고 강권하는 바람에 나흘이 지났고, 닷새 째는 결심하고 길을 떠나려 했지만, 역시 장인의 강권에 못 이겨 겨우 오후에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지나 기브아에 이르니 해가졌고,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던 상황에 그곳에서 매우 친절한 한 노인을 만나서 그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동네 불량배들이 떼로 모여들어서 이 노인에게 레위 인을 내어 놓으라고 협박을 했고, 노인은 이런 악행을 하지 말라고 훈계하면서 레위인 대신에 자신의 처녀 딸과 레위 인의 첩을 내어 주겠으니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합니다.
반항하는 불량배들에게 레위 인은 자기 첩을 내어 주었고, 그들이 돌아가면서 밤새도록 그 여인을 능욕 하다가 해가 떠오를 때 쯤에 놓아주었는데, 그녀는 노인의 집 문턱까지 기어왔다가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레위인은 조용히 그녀의 시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것을 열 두 토막을 내어 온 이스라엘에게 보내면서 짐승도 하지 행하지 못할 이런 만행에 대한 복수를 호소했습니다.
미스바로 모인 이스라엘은 레위인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베냐민 지파에게 그런 악행을 행한 불량배들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했지만 거절을 당했고, 분노에 찬 이스라엘은 40만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였고, 베냐민 지파도 2만 6천 6백 명의 군대를 만들어 대항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스라엘의 처참한 연패였습니다. 두 번의 싸움에서 무려 4만 여 명이 죽었습니다.
3. 패전한 이스라엘이 벧엘에 모여서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올릴 때, 하나님은 내일의 승리를 약속해 주셨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고, 베냐민 지파는 겨우 600명이 살아남아 광야로 도망가서 바위 속에 숨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에 들어가서 가축들과 남은 사람들은 죽이고 성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 사람에게는 딸을 주지 않기로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고, 미스바 총회로 모이는 이스라엘 가운데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것을 알고는, 용사 1만 2천 명을 보내어 부녀와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주민을 학살하고 그 중에 처녀 400명은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제 정신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이 생각해 보니,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한 지파가 전멸 될 상황에 빠진 것을 알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은 남은 6백 명의 베냐민 사람에게 더 이상의 보복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고, 그들에게는 끌고 왔던 400명의 처녀들을 돌려주어 결혼하도록 했지만, 200명의 여자가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딸을 그들에게 내어 줄 수도 없는 것은, 이미 그들에게 딸을 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을 선언했기 때문에 그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편법이 명절에 실로에 모여 축제 할 때, 춤을 추러 나오는 처녀들을 베냐민 남자들이 납치해서 그들의 아내로 삼으면 그런 악행은 죄로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잘못 행하여 생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편법을 만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레위인 으로 부터 시작해서 베냐민 지파를 살리기 위한 자구책에 이르기 까지의 이스라엘의 생각과 행동이, 그들의 신앙과 도덕적인 수준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이스라엘이 과거에 애급에서 종노릇 할 때에 출 애굽 하려는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출 3:18절에 보면 모세가 애급 왕에게,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 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 해 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핑계를 댄 것이지만, 이스라엘이 출 애굽을 원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 때문이었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사모한 것은 하나님을 잘 섬겨 복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나안의 삶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 이상 가도록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과 탐욕이었습니다.
이미 설명 드린 19-21장의 내용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우상 숭배자들의 모습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말씀의 부재, 즉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어 성경을 보면 각자 자신의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에 왕이 없" 다는 것은, 스스로가 왕이 되었고 법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자유롭고 사람 살기에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고 하여도,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늘 어디엔가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생각의 끝에는 항상 최악의 경우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강퍅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린다고 하여도 낙심 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심으로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5. 본문의 배경이 되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이나 생각이 어떠했습니까?
레위인 이라면 종교지도자인데, 그들은 이미 도덕적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상태에서 떠나 있었고, 그야말로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생각에 옳다고 하는 것을 쫓아가기 때문에, 내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이스라엘 전체에 미치는 엄청난 불행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미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무시하고 편법을 사용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동족들 가운데 딸들을 강제로 납치하도록 베냐민 지파에게 허락하고, 그것을 항의하는 부모들의 문제는 자기들이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법치를 떠나서 이방인들도 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어야 했습니다.
먼저 기도하며 이스라엘이 당면한 이 고통을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섣부른 그들의 결단은 악행이 또 다른 악행을 불러오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법이나 신앙의 양심도 짓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대신에,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고, 그 결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타락한 한 사람의 복수심에 자극을 받은 전 이스라엘은 작은 지파인 동족 베냐민 지파를 공격하고 그들의 씨까지 말려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나라, 같은 민족, 한 형제가 이념이 다르다고 공격하고, 또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 건너 불 구경 하는 것도 지쳤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6. 인간의 불행이 어디서 부터 시작합니까?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 동산은 지상에서 그곳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곳은 없었지만,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기 시작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 생각을 따라가다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교인들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생각과 자기 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쓴 칼럼을 보니, 신자는 고양이 신자와 강아지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먹을 것을 주니, 고양이 자신이 하나님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아지는 그 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첫 부분에서 벌써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 부터 악하" (창8:21)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디모데는 내가 어려서 부터 자신은 성경을 알았고 이 성경은 사람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준다고(딤후3:15)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하고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남들보다 힘든 환경에서 자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사람들을 다 치료하시고 상처를 회복 시켜서 축복의 새 사람으로 세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야곱의 아들 요셉과 이새의 아들 다윗 같은 사람들입니다.
7. 우리가 가진 이성이나 도덕성이나 사회성은 불완전한 것들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이성의 세계를 넓혀 나가도 그것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고백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121:1-2).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인생이라도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늘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답을 얻기 원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와 민족과 열방 가운데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능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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