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으면(고린도전서13:1-3)
고영수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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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3: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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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랑이 없으면(고린도전서13:1-3/2020.5.10.오전) 1. 제 70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에큐메니칼 심사 위원상을 수상한 정신제로(精神0)라는 영화가 코로나로 인해 극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네트워크를 통해 유료로 배급이 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2008년에 이미 공개되었던 정신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야마모또 마사또모(山本昌知)라는 의사가 82세로 은퇴를 하면서, 병은 무엇이고, 늙음은 무엇이며, 일이란, 부부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내용을 줄거리로 다루는 기록 영화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야마모또는 자신이 환자를 대할 때, 병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인약(人薬), 곧 사람이 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들이 고독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가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그런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의사로서 은퇴를 하고 나니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같이 늙어가는 부인 방자씨와의 단 두 사람만의 새로운 생활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야마모또 의사의 의료정신과 그의 자비심에 감화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소우다 가즈히로(想田和弘)감독이 이 노인 부부의 삶과 그들의 사랑을 관찰하며 만든 영화였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그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마6:30)시고 먹이심으로 그들이 생명을 가진 목적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가진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게 어찌 삶의 근본적인 목적이 없겠습니까? 더구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어찌 사명이 없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육체를 위해 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행하며,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 줄 믿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소명이라고 합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정은 무엇이고, 자녀는 또한 무엇이며, 내 인생에 정말 가치 있고 보람 된 일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을 성취해 나가는 복된 인생과 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랑이 없으면" 이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만일에 사랑이 사라지고 없는 이 세상을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일에 이 세상에서 정말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산모가 산고 끝에 자기 자녀를 낳아도 결코 젖을 내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가 성장하는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든다고 학교도 보내지 않고, 아이들을 위한 의식주에 전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자녀들은 아마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을 하며, 누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누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받들어 섬길 수 있겠습니까? 지난 5월 8일, 조선일보 인터넷 판에 올라온 기사 중에 바다의 해파리에 관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해파리가 살기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빗해파리는 늦 여름에 엄청난 새끼를 낳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덴마크의 어느 대학에서 그 이유를 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9월초 부터 해파리의 먹이가 감소하면서 새끼들도 줄어드는데 웬일인지 빗해파리 만 늘어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해파리들의 뱃속에는 이미 낳은 새끼 해파리들의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짧은 생명의 연장하기 위해서 많은 새끼들을 낳은 후에, 자신들의 먹이가 부족할 때가 되면, 그 새끼들을 먹어 치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파리들의 이런 행위를 아무도 비판,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바다 속에 서식하는 보잘 것 없는 생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문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가족 중심으로 일으키는 전대미문의 흉악한 사건들이 거듭되면서, 이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정과 가족의 붕궤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 문제를 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무너지고 있는 가정의 문제는 어디서 시작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결혼 문제만 해도, 이제는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온갖 위기와 고통을 함께 하며 극복해 나간다는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려면 가진 소유와 사회적인 지위가 사랑하는 마음을 우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의 경우를 보면, 자신들은 특별한 은사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그래서 영적으로 어떤 특권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던 것들 중에서 방언과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아무리 큰 은혜와 능력과 신비한 체험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랑이 없다면, 이 받은 은혜와 능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의 말씀은, 1절의 능력을 초월하는 더 큰 믿음의 소유자가 있어서, 그 믿음의 능력이 위대한 역사를 일으킨다고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그런 말입니다. 3절도 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완벽한 사랑의 행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내면에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은 왜 그렇게 시민 단체며 비영리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런 조직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에도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지만, 많은 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사회정의나 인권이나 약자들에 대한 보호자 내지는 변호 단체로 위장하지만, 그들 속에 없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 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입니다. 4. 한국의 경상도 어느 시골 교회 목사님이 워낙 가난한 시골이라 교인들이 있어도 헌금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사모가 출산할 때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도시 교회의 도움을 청하기로 작정하고 몇 몇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큰 교회의 여전도회에서 매월 35,000원을 지원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헌금을 직접 와서 받아가라고 합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고 찾아갔는데, 문제는 만나기로 약속했던 여전도회 회장님이 바쁜 일이 있어서 무려 6시간을 기다린 후에 지원금을 받았는데, 목사님은 그 돈을 받고 나서 너무 서글퍼서 울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그 돈을 받으러 가지 말고 그 시간에 기도하고 있었더라면, 하나님은 이것 보다 더 큰 것으로 채워주셨을 텐데, 내가 기도는 하지 않고 사람들의 도움만 찾아다녔구나 하면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두 번 다시 헌금을 받으러 가지 않고 오직 무릎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늘 그 6시간의 기다림을 생각하면서 기도에 집중하니 목사님의 별명이 「했다하면 6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는 물론이고 온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사랑이 많이 식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 만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지식, 사랑이 없는 자선이나 구제, 사랑이 없는 신앙의 모든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5.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랑 많은 부모라도 자식에게 주지 못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소원하고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러나 내가 원한다고 그 성공을 자식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을 사랑하다 보니, 부모가 많은 재산을 물려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재산이나 능력이 결코 내가 사랑하는 자식의 것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도리어 유산을 남기는 그것 때문에 자식으로 하여금 더 큰 불행을 만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너무 가난하여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결혼도 겨우 52살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이라 하면서, 자녀들에게 이 부를 나누어주지 않고, 65세에 은퇴하여 죽을 때까지 한 때 국가 예산의 5%에 해당하는 재산을 전부 기부함으로 전 세계에 그가 세운 도서관이 삼천 수 백여 개에 이르고 많은 시설과 대학들도 설립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한 교회에 헌금 하는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만물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기 때문. 둘째는, 영적 전쟁을 위하여 유지비가 필요하며, 셋째는, 동정과 구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하늘에 보화를 쌓는 방법이며, 다섯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부모가 주지 못하는 것, 부모의 사랑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을 다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희생 재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6.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입니다. 그분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우리의 자녀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연약함과 허물을 덮으주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치료하시고 회복하시며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신앙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줄 수 있으며, 주님의 사랑이 먼저 우리 마음에 충만히 채워질 때, 우리의 자녀들은 영적으로 감화를 받으며 형통 한 길을 가는 줄 믿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대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경을 매일 읽는데, 한 장 읽으면 100원, 한 장을 필사 하면 500원, 외우면 1000원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하는데, 문제는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화 성경과 그림 성경을 사 주었고, 아이들은 그 책들이 너덜너덜 헤어질 때까지 보았는데, 나중에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게 되니 성경도 잘 읽고 이해를 잘 하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서 성경 퀴즈 대회도 일등하고, 암기하는 성경 구절은 삶에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가장 큰 사랑이요 선물입니다. 자녀가 세상에서 영악하고, 능력이 많아서 성공한다고 해도, 주일 성수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며 십일조도 못한다면 자녀를 향한 사랑이며 그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울이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결론을 내리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는 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길은 무엇입니까? 은사입니까? 능력입니까? 물질입니까? 명예입니까? 다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제일 좋은 길이란 사랑입니다. 이것은 13:13절에서 보여주는 대로, 믿음보다 소망 보다 우선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제일의 조건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면, 자식 사랑, 자식 교육은 성공한 것입니다. 7. 우리 몸이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몸의 호르몬의 밸런스가 깨지고, 비타민 등이 결핍하면 몸이 망가지고 생활 하는데 많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흉악한 범죄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자포자기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어릴 때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이 젊은이들을 키운 부모의 세대에도 마찬가지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험되어지지 못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나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이라고 하는 최고의 것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이나 자녀들이 더 이상 머 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가정은, 아이들이 기회만 있으면 가정으로부터 도망을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출하여 부모를 떠나서 세상에서 마음껏 자유나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프란시스코는 노래하기를,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줌으로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많으면 그것도 좋겠지만, 비록 돈이 없더라도 믿음 안에서 사랑이 넘치는 가정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이 날 위해 대신 몸을 주심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 교회에서 그렇게 믿음의 생활을 하고, 가정에서 그렇게 사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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