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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함께 받을 복(갈라디아3:6-9)
고영수 2020-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429
[성경본문] 갈라디아서3:6-9 개역개정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브라함과 함께 받을 복(갈라디아3:6-9/2020.5.17.오전)

1. 1979년 12월 8일자 한국일보 5면에 보니,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녀는 1948년에 로마 교황 청의 허가로 인도 캘커타 빈민가에 학교를 설립하고 동시에 가난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헌신적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1950년에는 자선선교 수녀 단을 만들어서 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삼십 수년을 헌신해 오다가 1979년에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난 보다 더 지독한 병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결핍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굶주리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선진국으로서 매우 드문 사회적인 현상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것은 이지매, 즉 왕따라는 문화를 보편적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온 나라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의료나 복지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이지매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가혹한 처사와 언어에 의해 상처를 받고 있으며, 이런 상처는 전염병이 수습이 되어도 치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 사회에 오래 동안 후유증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에 대한 굶주림이나 결핍은 켈커타의 빈민 촌 같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지금 일본에는 의료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이 세상에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온정이 남아 있음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계속해서 현대 가정의 문제,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믿음의 가정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함께 행복하고 복 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전문가들이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름 아닌 믿음의 가정의 출산율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개신교를 믿는 신앙적인 동기 중에 모태 신앙이 21%이며, 부모나 배우자, 형제 등을 통한 가족 전도가 27%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개신교 신앙인의 비율의 반 가까운 숫자가 가족, 가정을 통해서 신앙이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친구와 선배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은 22%, 이웃의 경우는 10%, 친척이 3%라고 합니다.
결국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상대 하는 노방 전도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 자식 간의 신앙적인 일치는 85%에 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믿는 신앙을 대부분의 자식들이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치관도 부모나 가족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힘쓸 것은 온 가족이 함께 믿는 신앙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생각만큼 단순하거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대는 핵 가족의 시대로, 독신 가정이 늘어나고 동성애가 만연하고, 이혼 율은 올라가는데 출산율은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이런 사회적인 현상으로 인해 제일 많이 타격을 받는 곳이 교회이며 그 가운데서 보수적인 신앙을 유지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호주 국가의 경우는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 내 건 슬로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엄마를 위해, 다른 하나는 아빠를 위해, 또 다른 하나는 국가를 위해」.
저도 하나만 낳고 더 이상 낳지 않겠다는 자녀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기 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내용은 간단합니다.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손해는 볼 수 없고 최소한 본전 치기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정은, 한 사람의 생명이 출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격과 신앙을 배양해 가는 요람과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부모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사명은,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이라 하였고, 이 일을 위해서 교회가 옆에서 도울 수는 있어도 가정을 대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 교회의 창시자 칼빈이 유아 세례를 베푸는 근거를 부모의 신앙 고백에 두고 있는 것은, 그만큼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상을 변화 시키는 귀한 인물들 대부분은 이런 믿음의 가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훌륭한 신앙과 인격의 배경에는 반드시 그들 못지않은 훌륭한 신앙과 인격의 부모님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의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은 중요하고, 자녀 한 사람을 믿음으로 잘 키우면 세계적인 영웅이나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4.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9절에 기록된 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는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축복이 자자손손 전수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경건한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무엇이며 또한 어떤 것을 주셨습니까?
창18:18절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 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22:17-18절을 보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로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으라는 이 말은, 너도 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이 되고 크게 번성하며, 네 자녀 또한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 축복은 반드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형통하고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내가 원한다고 인생이 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습니까?
조금 전에 인용한 창 22:18절 끝에 보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하시면서, 마지막에 보면,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5. 성경에서 제일 처음에 나오면서 내용도 방대한 이 창세기를 누가 기록한 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었던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인 이 아브라함과 모세 사이에는 650년의 세월이라는 간격이 있으며, 창세기의 내용이 끝나는 부분에서 시작해도 모세에 이르기까지는 30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그 긴 역사를 가진 창세기를 기록할 수 있었겠습니까?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이라 하였고, 십계명의 경우도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계시의 말씀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경의 모든 저자는 하나님이 그 말씀을 감동, 혹은 영감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에 기록되었고 오늘 우리가 받아 읽고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모세 처럼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였고, 또한 언약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수시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브라함의 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 시대에는 받은 말씀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믿음을 유전 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하나님 중심의 삶과 구전(口傳)을 통해서 전수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부모들의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이어갔던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었습니다.

6.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이 아닌 구전과 삶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일에 오늘 우리에게도 기록된 말씀이 없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가르치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는 부모님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 교육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신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삶과 구전을 통해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구약 시대의 경우는 대부분의 신앙 교육을 가정에서 그것도 구전을 통해서 전수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흐름을 자녀와 후손들에게 끊이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들의 경건한 신앙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나타나는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고, 가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쌓고 예배 하며, 그들의 하나님 중심의 경건한 신앙이 믿음의 가정을 만들고, 약속이 있는 언약의 자녀들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행위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6절에 기록된 것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7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 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끔 보면, 그 가정의 부모들이 출산하고 양육한 자녀라도 생각이나 행함에 있어서 전혀 부모를 닮지 않은 그런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 부모들이 하시는 말이 무엇입니까?
저 놈은 누구 뱃속에서 나왔길래 저 모양일까, 합니다.
부모라도 자식의 언행이 나하고 닮지 않았을 때에는 혈연을 부정하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자랑 감이 되는 자식은 부부가 서로 자기를 닮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7. 부자가 되고 싶으면 먼저 부자처럼 생각하고 부자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데 부자처럼 돈이나 펑펑 쓰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도움을 받기 이전에 먼저 도움을 주고, 용서 받기 전에 먼저 용서하고 이해하며, 상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며, 물질에도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주부들의 경우를 보면, 생활이 어렵다고 남편에게 용돈을 한 달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것만 정확하게 계산해서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남편의 가능성과 미래를 죽이는 일입니다.
가정에 지출을 줄이더라도 남편 용돈을 넉넉하게 줘야 대인 관계도 넓어지고, 사회적인 경험도 쌓아가면서 점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복 받고 형통 한 길을 가기를 원한다면, 먼저 부모가 하나님의 복 받은 자녀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런 믿음의 삶을 자녀들에게 보여 줘야 합니다.
사람은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 것은 절대로 행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만큼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8. 작년 6월에 91세로 타계한 작가 다나베 세이꼬(田辺聖子)는 말하기를, 사람은 칼이나 재앙이나 전쟁으로 상처가 나고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만 상처 받으며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 그리고 감정이야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나와 내 자녀들의 언행에서 사람들을 죽이는 칼이 나오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능력이 나오기를 원합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죽어가는 이 세상을 살리고, 어두워가는 이 세상에서 생명의 빛이 되기를 원한다면, 부모가 먼저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 받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전해 주셨습니까?
8절에 보니,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생명을 통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세상에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해 주셨고, 그 결과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부모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들의 가정은 아브라함 처럼 언약의 말씀이 있는 가정이 되며,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축복의 가정이 되며,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에 의해 다음 세대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움을 입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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