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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전을 사모하는 자(시편84:1-12)
고영수 2020-06-10 추천 2 댓글 0 조회 361
[성경본문] 시편84:1-12 개역개정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는 자(시편84:1-12/2020.6.7.오전)

1. 지난 금요일,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연합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던 요꼬따 시게루(横田滋)씨가 향년 87세를 소천했습니다. 원래 그는 도꾸시마켄 출신이지만, 일본 은행의 직원으로 니이가타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이 그곳에서 이전했습니다. 1977년 11월15일, 중학교 1학년생인 그의 딸 요꼬다 메구미(横田めぐみ)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돌연 소식이 끊어진 채로 행방을 알 수 없다가, 나중에서야 딸이 북한에 의해 납치 당했다는 것을 알고, 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43년의 세월을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40여 년의 세월을 일본 전국은 물론이고 해외에 까지 나가서 북한의 납치피해에 대하여 1,400여 회의 강연을 하면서 납치된 딸을 되찾기 위해서 많은 활동을 했지만, 결국 딸아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딸을 기다리는 동안, 그의 부인은 1984년에 니이가따시에 있는 일본 동맹 기독교단의 이가라시교회(五十嵐教会)에서 세례를 받아 크리스천이 되었고, 그는 2017년 11월에, 가와사키시의 일본복음기독교회의 나까노시마교회(中野島教会)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43년은 참으로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었고, 산천이 4번도 더 바뀌는 세월을 납치당한 딸로 인해 고통과 눈물로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비록 잃어버린 딸은 만나지는 못했지만,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그 분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2. 우리 인생이 영육 간에 함께 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겠지만, 인간은 죄 가운데서 출생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원한다고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말한 대로 지은 죄로 말미암아 고통의 세월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그런 죄가 주는 고통의 세월 속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선물로 받는 복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고 풍족하게 산다고 해도, 구원 받지 못하는 인생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영원한 저주와 고통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요시다 시게루상은 죄의 대가로 말미암은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안식과 축복으로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이라도 죄를 짓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 그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받은 구원과 영생은 내 잘못으로 인해 도중에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까?
더구나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삼키려고 한다고 했으니 걱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10:28절에서 아주 중요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러 주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와 저주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3.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구원이라면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잃어버리고 취소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불러 주셨고, 자신의 아들의 생명으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그 분의 사랑과 은혜로부터 우리를 빼앗을 자고 없고, 우리를 멸망시킬 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한 번 결정하신 일은 그 누구도 취소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만물의 주인이요 창조 주 하나님이시며, 우리 인생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롬8:39)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많고, 연약하고, 심지어 부끄러운 것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우리를 완벽하게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고 살리신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 인생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는데, 오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우리에게 교회를 선물로 주셨습니까?
또한 교회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며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4. 오늘 본문을 보면 시편 기자의 고백이 놀랍습니다.
1절에서 주의 장막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하였고, 2절에서는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병이 들었으며, 사모함이 지나쳐 통곡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소풍만 가도 전날 밤부터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설렜는데,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설렘과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런데 시편 기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성전, 곧 교회를 사모하다가 병이 들었다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인 이 교회가 어떤 곳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은 연약한 인간이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5절에 보니 "주께 힘을 얻고"7절에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 간다고 했습니다.
세상 삶이라는 것은 살면 살수록 힘을 잃고 힘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잘 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낙심하게 만들고, 인간을 연약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점점 망하고 죄 가운데로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오면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우리를 위해 예배하신 축복의 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연약함과 형편을 너무 잘 아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에게로 나아가면, 쉼을 얻으며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위로를 얻으며 은혜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성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에 고민을 하고 마침내 병이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5. 사실 현대인들에게는 적절한 휴식이 많고 유급 휴가도 많습니다.
그러나 휴식이나 휴가는 많아도 진정한 안식과 쉼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쉼을 통해서 더 많은 스트레스와 피곤과 고민이 늘어날 뿐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신에는 쉼표를 찍어도, 마음에는 절대로 쉼표를 찍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지치고 병든 현대인들에게 인생의 쉼표를 찍어 주는 곳입니다.
이 쉼표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나올 때, 인생의 목자 되신 주님이 찍어 주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양의 필요를 따라 생각하고 움직이며, 양들의 수준에 맞추어 이동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회사를 들어가도 입사하는 그날부터 무한경쟁의 지옥에 빠져서 피를 튀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남을 밟지 않으면 남에게 밟히게 되고, 내가 상대방을 넘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넘어지고 영영 일어날 수 없는 패배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공격당하고 늘 공격하고 감시당하고 감시를 해야 하고, 책망과 자책을 반복하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분노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내게 무슨 안식이 있으며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한가하게 인생의 쉼표를 찍으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로 나오면 목자 되신 주님이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내 안에 쉼표를 찍어 주십니다. 또한 성령의 감화하심과 도우심으로 우리의 심령에 평안함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라리"(마11:28) 고.

6. 우리가 세상에서 이리저리 빼앗기고 힘을 잃어도, 일단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나오면 주님은 우리 인생에 축복의 쉼표, 은혜의 쉼표를 찍어 주시면서 새 힘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도 내 안에 주님이 찍어주신 쉼표가 있을 때, 우리는 생명과 진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산 속에 있는 기도 원에 일주일 들어갔다 나오는데, 세상은 내가 없어졌다고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정, 우리 자녀들 내 삶의 환경은 전부 멀쩡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 원에서 내가 은혜 받고 기도 응답을 받고 새 힘을 얻고 내려오니 내가 늘 보던 세상인데도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새로워진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쉼표를 찍어 주시고, 그래서 내가 변화되고 보니 모든 것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힘인 줄 믿습니다.
어떤 대학의 조 교수가 교도소의 군의관 시절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을 많이 죽인 살인마가 사형을 집행을 앞에 두고 전연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난폭하게 굴었습니다. 사형 집행 당일에도 세상을 저주하고 법과 제도를 욕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군의관은 이 불쌍한 사형수를 위해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하는데 겨울에 입고 있던 외투가 다 젖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형 집행 2시간을 남겨 놓고 마음을 바꾼 사형수는 목사님에게 용서를 빌고 주위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성경 말씀을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형 집행 직전에 회개하고 세례까지 받은 후에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군의관이 그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시체에 손을 대는 순간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그의 시체를 감싸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에 빠졌는데, 그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의 영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군의관은 이 충격으로 3일 밤낮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의사로서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이런 현상을 통해서 영생과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목사가 되기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7. 시편 기자가 10절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 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 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에 보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12절에서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 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세상에서 실패하고 인생에서 모든 힘을 잃고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도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믿고 나오면 새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단을 이겨 영원한 승리를 얻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 거룩한 주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갈 길은 물론이고 내 영혼의 나아가는 길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며 이곳에서 예배 하는 자를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성전을 사모하며 예배 하기를 기뻐하는 자에게 인생의 쉼표를 찍어 주셔서 영원한 안식과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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