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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요한계시록 2:18-29)
고영수 2021-07-17 추천 0 댓글 0 조회 16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18-29 개역개정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네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요한계시록 2:18-29/2021.7.18.오전)


1. 사도요한이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가 가장 길고 내용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아디라 교회는 크고 중요한 교회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소아시아의 7교회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에 있는 가장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작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관심이 다른 교회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가 주님께 칭찬 받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19절의 말씀대로,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교회들 가운데, 에베소 교회의 경우에는 첫 사랑을 잃어버렸고, 처음에는 잘 하다가 나중에 그 첫 행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은데 반하여, 이 두아디라 교회는 시간이 갈수록 처음보다 더 좋아진 것이 자랑이고 특징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처음도 좋고 나중에는 더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처음에는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중에는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제일 못된 것은, 처음도 나쁘고 나중에는 더욱 나쁜 경우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주님 편에서 보실 때는, 이 두아디라 교회처럼 처음에는 좋지 않아도 나중이 더욱 좋은 경우를 매우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아무튼 두아디라 교회는 그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좋은 장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장점이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칭찬 받는 두아디라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상 교회의 연약함이고, 주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 교회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가 받은 책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자 이세벨을 용납하여 그의 잘못된 교훈을 받아들여 교인들로 하여금 행음을 하고 만들고 우상 제물을 먹게 만든 것입니다.


2. 지금 우리 시대의 경우도 우리의 신앙을 왜곡시키고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를 통하여 오늘 우리 교회와 이 시대의 신앙적 문제를 진단하여, 바른 신앙 바른 신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자 합니다.

그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시점은 교회가 지상에 탄생한지 벌써 반세기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각지의 교회들이 처음에는 활기차고 생명의 능력이 풍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명력이 힘을 잃기 시작했고,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신앙의 열정들, 그리고 확신들이 희미해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당시에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환경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헬라세계가 로마 황제 숭배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박해를 받는 와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유대인들만은 이 황제숭배에서 자유로웠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들이 유일 신앙 사상에 생명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 교회들도 유대교회의 한 분파쯤으로 생각하여 황제 숭배로 인한 박해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교회는 황제숭배의 강요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헬라 세계에 있는 교회들에게 칭찬과 위로, 그리고 책망의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사단의 졸개 노릇을 하는 여자인 이 이세벨의 교훈이 두아디라 교회를 위기로 내 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세벨의 교훈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세벨의 가르침은 버가모 교회의 발람의 교훈과 대동소이한 것입니다.

잘못된 교훈으로 믿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들로 음란한 일을 행하게 만들고, 우상제물을 먹게 만들어서 이 사람들의 신앙을 탈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우리가 21세기를 살면서 2천여 년 전의 상황을 유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헬라 지역에는 많은 우상들이 있었고, 특히 각 지역마다 각자의 직업에 따른 조합이 있었고, 그 조합에는 그들의 신을 모셔놓고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장사를 하던지 제조업을 하려면, 노동조합 같은 곳에 가입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두아디라 지역은 7교회 가운데서 가장 작은 도시에 속하였고, 남다른 특징도 없는 그야말로 존재감도 없는 지역이지만, 이 노동조합만큼은 다른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 가입을 하지 않으면 사업 허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조합에 가면 그들은 함께 자신들의 신 앞에서 연회를 베풀고 제물을 바치고, 그것을 먹고 마시면서 때때로 음행의 의식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상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생활 문제가 걸려 있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에 일본의 성결교단은 가장 많은 핍박을 받은 교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교단의 전도사 한 분이 그가 사는 지역의 순번에 따라 동네 반장을 맡게 되었는데, 반장이 하는 일 중에는 그 지역의 신사에 가서 그 신을 섬기고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이유로 그것을 거절하였고, 그 결과로 이 분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고, 마침내 견디다 못해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자살이라는 방법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아무튼 자신의 신앙양심에 위배되는 것을 생명을 걸고 지키고 저항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일본국가의 소집령에 의해 지바켄(千葉県) 부대에 소속이 되어 지금의 베트남으로 출병을 가게 되었는데, 그가 속한 부대가 신사에 모여서 신사참배를 하는데, 이 청년은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다가 체포되었고, 벌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신앙적 소신을 굽히지 않자 성난 상관들이 그를 군사재판으로 넘기려고 할 때, 일본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이 사람은 이 헌법의 조항을 들어 신사참배 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군사재판에 넘기는 것은 명백한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함으로 군사재판은 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때 맞은 상처로 평생 청각 장애로 시달렸지만, 성결교단의 목사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4. 두아디라 교회에 문제가 된 이세벨의 교훈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직장과 사업을 잃고서는, 이 지역 사람들과 등을 돌리고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살기 위한 세상과의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세벨의 교훈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교인이라도 우상재물을 먹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상제사에도 참여하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니 전연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가운데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주일 지키지 못할 수도 있고, 생활이 어려우니 십일조나 헌금을 내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형편에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내려야할 결단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그곳에는 생활 문제가 걸려 있고, 온 가족의 장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주님의 말씀은 매우 엄중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당장 “회개하라”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두아디라 교회 가운데서 일어나고 말았습니까?

20절의 말씀을 일본어로 보면, 이 두아디라 교회가 여자 이세벨에 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였고,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녀의 가르침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 본문 23절을 보면, 이 구절이 오늘 내용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고 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시며,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것을 판단하시며,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고 속는 것을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주목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벨과 그 교훈을 따르는 자들의 생각과 행위대로 엄중하게 심판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이런 저를 변명을 늘어놓지만, 하나님은 그 변명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숨어 있고, 어떤 의도가 감추어져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다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속아 넘어가도 하나님은 속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8장에 보면, 바울이 우상재물을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상 자체는 신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시험에 빠질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8:13).

하나님은 이런 사도 바울의 마음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주님은 각 사람의 분명한 이유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참으로 놀랍고 감사할 것은, 이 교회 가운데는 여전히 여자 이세벨의 교훈에 빠지지 아니하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왕상19:18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자니라”는 이 말씀처럼, 두아디라와 같은 아주 작은 교회 안에도 바알시대처럼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 함께 카멜레온처럼 변신해 가는 신자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신앙을 위해 제 목숨을 희생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25절에 보니, “다만 너희 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성도들에게 주님은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 권세를 함께 누릴 뿐 아니라,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하여 완벽한 승리를 얻을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둘째로, 새벽별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믿음의 싸움에서 마지막 까지 인내함으로 승리를 거둔 성도들에게는, 그 승리의 대가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주시겠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승리, 그분의 영광과 모든 권세를 함께 누리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도 그 때와 변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영광과 축복과 능력이 함께하시는 줄 믿습니다.


7.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벌써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예방 왁진도 진행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국가들 마다 신통한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리어 어떤 나라들은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정권을 유지하는 용서할 수 없는 악한 자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요즘 뉴스를 보면, 왁진을 맞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내용이 있고, 실제로 며칠 전에 일본의 어느 장관은 이런 정책을 발표했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고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런 환경 속에서 과연 내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기도하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의 우리의 믿음의 선한 싸움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쏟는 희생을 잘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의 선한싸움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유지하고 붙잡을 것을 권면하고 계십니다.

오사카중앙교회도 37년의 험한 세월을 보내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많은 것들이 예전보다 못한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문제들은 계속 늘어나고, 열심히 훈련 받은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고, 나아가야 할 앞길이 불투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였고, 소아시아의 모든 교회들의 문제이기도 하였고, 오늘 우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지상의 모든 교회들과 일본 땅에서 복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선교사들도 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명의 사람들처럼, 소아시아의 두아디라 교회처럼, 이세벨의 교훈에 빠지지 아니한 귀한 성도들이 우리 교회 안에도 다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한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만 너희 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에 맛본 구원의 감격과, 처음에 뜨거운 마음으로 잡은 이 십자가를 놓치지 말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굳게 잡아서, 세월이 갈수록 신앙과 삶이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보배로워져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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