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4:9-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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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브라함의 믿음(로마서4:9-16/2022.3.6.오전)
1. 제가 일본에 처음 와서 전도를 할 때, 사람들은 저를 보고 그리스도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 분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언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는지 살펴보니, 사도행전11장 26절에 나와 있었습니다.
25절부터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들처럼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17:16절에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어권에서는 남자 이름을 크리스도퍼(Christopher) 라고 많이 붙이는데, 탐험가 컬럼부스도 크리스토퍼란 이름을 가졌는데, 이 이름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짊어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으로 사도바울의 기록을 인용하자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갈5:24)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짊어졌다는 뜻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남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도 결국은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육체를 위해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곧 돌아가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소망하며 그것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 그런데 이 세상은 우리가 어디에 속한 사람들인지 자꾸 시험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마귀의 시험으로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놀라운 섭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지, 이렇게 살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우리에게 정확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10:28-29절에 보니,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한 번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선언을 취소하거나 번복할 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그 분의 영원한 상속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부인 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가는데, 우리의 이 믿음이 과연 어떤 믿음이며, 이 믿음은 내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가 언제 어떻게 하나님으로 부터 의롭다 함을 얻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이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행15:1절에 보면, 이방인들도 이스라엘처럼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잘못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입술로는 오직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이 율법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만드시는 조건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고, 죄 가운데서 씻음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되게 하셨고, 천국의 영원한 상속자로 삼아 주셨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이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바울까지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4.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시점이 할례를 받기 전이었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고 축복하시고 언약하신 시점도 할례를 받기 전이라는 것과, 이 때는 아직 율법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율법적인 행위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셨고 언약을 주셨고, 메시아의 탄생까지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할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에 관해서는 율법이나 그 율법이 요구하는 할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할례는 무엇입니까?
신10: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앞 구절인 15절에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민 중에서 택하셨다고 하였는데, 이 택함받은 자의 은총은 그들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입은 은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율법을 지킬만한 능력이 있어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 된 것은 순전히 일방적으로 "그들을 사랑하사" 되어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이스라엘의 특권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오직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인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할례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도 오직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5. 아브라함은 할례와 상관이 없이 이미 그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고 칭함을 입었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으로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의로운 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율법을 다 지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그 믿음으로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을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믿음에 속한 자라면, 이미 율법과는 상관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운 자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고, 그러나 만일에 율법에 속한 자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예외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취해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을 하나도 성취할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존재입니다.
국가가 정한 법이라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정하신 법인 율법을 누가 다 지켜 행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율법은 지금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온전한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가지 가운데 한 가지라도 어기면, 99가지를 잘 지켰다 하여도 나머지 한 가지를 범한 그것 때문에 불의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한계점입니다.
6.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완벽함이나 열심이 아니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가 드린 제사를 향기나는 제사로 받으시고, 그가 드린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된 공동체로서 지키는 규범 하나 하나도 우리의 믿음과 상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살기 원하지만 우리 육신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 필요한 것,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믿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고, 과거와는 상관이 없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963년 10월 19일 최전방에서 육군 중령인 이득주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참살한 고재봉이라는 살인마가 있었습니다. 애인이 면회를 왔는데, 신발이 없어서 중령의 신발을 훔치다가 걸려서 6개월 형을 살고 나와서는 복수를 하려고 저지른 살인인데 알고보니 그 때 중령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갔고, 그것을 모르고 새로온 중령의 일가를 도끼로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형무소에서도 얼마나 악독한지 창틈으로 들여다 보는 구치소 소장의 눈을 찔러버릴 정도로 포악스럽고, 그래서 눈깔 파먹는 지옥의 염라대왕이라고 별명이 붙을 정도였고, 틈을 보아서 탈옥을 해서 죽이지 못했던 박중령을 죽이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옥중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고 보니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며, 나같은 사람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가 너무 놀라워서 하루도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7일만에 성경을 일독하고 회개 기도하면서 이듬해 3월에 사형을 받을 때까지, 1,800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고재봉이는 율법으로 하면 100번도 더 죽어야 할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불쌍한 죄인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7. 아브라함도 율법과는 상관이 없이, 할례냐 무할례냐 상관이 없이, 아예 그런 것을 알지도 못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시고 믿음을 주시며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가나안의 축복은 물론이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칭의, 곧 이 의로움은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하여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승리의 병기인 줄 믿습니다.
사죄의 은총에 대한 확신, 구속함을 입어 의로운 자가 되었다는 확신은 더 이상 우리를 부끄러운 자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할례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할례는 정확하게 말해서 그가 할례를 받기 14년 전에, 아니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지기 전인 430여년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이 칭의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가 없다는 것과,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영원한 승리를 얻었다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 대신에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이 놀라운 축복이 아브라함처럼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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