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5: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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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제공: 대한성서공회
참 평화를 얻으려면(로마서5:1/2022.3.20.오전)
1.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가리켜 각하라고 하고, 그 부인을 영부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번에 대통령 당선자는 그런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존칭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걸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하라는 이 말은, 원래 일본 천황이 직접 임명하는 각료급 인사들(勅任官)과 군대의 소장 이상의 장군들에게 붙여주던 존칭이 일본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어느새 한국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존칭이 되어버렸고, 대통령의 부인을 영부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아버지에 대한 존칭으로 영존(令尊)이라 하고, 어머니를 영당(令堂)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대통령 부인에게만 사용되도록 한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지금까지 반일 선동에 앞장을 서던 사람들의 입에서 대통령 부부를 향해 이런 용어가 거침없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통령에 대한 이런 왜색적인 존칭이 사라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영국처럼, 대통령이나 수상에 대하여 국민의 눈높이 수순에서 다가갈 수 있다면, 정치적인 환경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느끼는 정서가 지금보다 더 부드럽고 좋은 환경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나라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변화에 있습니다.
그것도 퇴행적인 변화가 아닌 성장과 치유와 회복이 있는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지도자의 능력은 긍정적인 미래를 위한 리더십에 있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대한민국을 새 대통령이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로마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죄에 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이 인생에게 요구하시는 그 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5장에 들어오면서 그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의롭다 하심을 입은 사람, 즉 새사람을 입은 성도가 받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지난달 24일에 시작된 공산국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벌써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 이 전쟁터가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화평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주택가는 물론이고 병원, 학교, 심지어 아이들이 피난해 있는 극장까지 폭격을 해서 온 세상을 지옥처럼 만들어 놓고, 그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소행이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 화평을 얻으려고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지구촌의 현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는 늘 반대로 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 유엔이라는 조직 안에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있는데, 상임이사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다섯 나라가 유엔의 핵심이요 실세들입니다.
유엔이 아무리 긴급하고 중대한 사안을 의결하더라도 이 중에 한 나라만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유엔이라는 곳입니다.
중국을 통일하고 첫 황제가 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려는 목적도 이 평화를 위함이었습니다.
한, 위, 조 등 6개국이 쪼개져서 서로 대적하다보니 백성들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6개국 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 불신하게 만들고, 그리고는 차례 차례 이웃 나라를 정벌하여 기원전 221년에 대망의 통일국가를 이루었지만, 통일 10년 만인 50세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 통일국가도 1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진나라의 통일을 위해 백성들이 치룬 희생은 2/3가 죽거나 다쳤다고 하며, 정작 평화를 원하던 진시황 본인은 불노초를 구해서 영생을 누리려다고 객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류가 실제로 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개인의 삶은 또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화평을 누리면서 잘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고 하였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화평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키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절 중간에 기록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라는 이 말씀입니다.
3.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라는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장부터 4장에 이르도록 지금까지 말씀드린대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평을 깨트리고 인류를 저주 아래에 묶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화평을 원하고,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지만, 그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죄로 인한 저주 때문입니다.
죄가 탐욕을 일으키고, 죄가 인간관계에서 갈등과 질투와 미움을 일으키고, 또한 두려움을 가져다 주고 있기 때문에 평안도 화평도 평화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좌우로 나뉘어 공격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이런 것이, 사상이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죄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서 온갖 단체를 만들어서 사람들과 물자들을 모으고 지원하고 활동하면서 많은 수고를 하고 있지만, 그런 것으로는 이 세상에 참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입은 우리는 죄 사함의 은혜를 입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로움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축복이고 은혜중에 은혜인 줄 믿습니다.
원래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인간은 그분의 영광 앞에서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멀리서 경찰만 보면 피하여 숨지만, 죄가 없으면 길도 물어보고 도움도 구하고 가까이 가서 인사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이 우리를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영원히 입는 그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4. 십자가의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화평입니다. 관계의 회복이요 치유요 새로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입니까? 평안이고 쉼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이 다가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늘 고민과 갈등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여기에서 무슨 평안을 얻으며, 이웃과의 화평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분이 내 모든 죄와 연약함과 인생의 문제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죽음과 저주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그 분의 사랑이 죄 때문에 받은 과거의 모든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면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되고,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305장) 작자인 죤뉴튼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지만 7살 때, 폐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후로는 불량한 생활을 시작했고, 11살에는 배를 타는 선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온갖 악행을 일삼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만 골라가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군대에서 탈영도 하고, 노예로 팔려가서 고생을 하는 등,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22살에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선장을 그만두고 30살에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어, 82살까지 평생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하나님과 불화했을 때는 평안도 기쁨도 감사도 없었고, 파도처럼 제 인생에 고난이 계속해서 밀려 왔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 화평을 이루니 삶이 새로워졌습니다.
5. 어떤 사람들은 화평을 이루는데 왜 꼭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느냐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수고하는 단체나 훌륭한 인물도 많은데,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방법이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사53:5)고.
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인해 원수 되었던, 그래서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심판을 기다리던 우리를 위해 자신의 피를 쏟아 우리 죄를 씻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12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화평을 이루는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데 자신을 희생하신 분은 예수님 뿐이기 때문입니다.
몸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질병에 대한 처방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가 사람의 몸을 잘 고치며 명의 소리를 듣습니까?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어 그 증상과 함께 병을 일으킨 그 원인을 함께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비결 아닌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평, 이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전쟁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하나님을 떠나 마귀 편에 서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부부사이도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땅과 모든 환경은 엉겅퀴로 인간을 대적하여,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은 사라지고, 부부는 서로 원망하고, 형제들은 미워하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고, 땅은 인간을 대적함으로 죄악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6. 이런 잘못된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줌으로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분쟁과 미움과 고통의 원인이었던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동안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모든 관계가 회복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엉겅퀴를 내던 땅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도구가 되었고, 목구멍까지 열린 무덤 같았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여 고통을 주던 수많은 인간관계는 도움을 주고 축복의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복된 도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우리가 힘써 행할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이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평 가운데 머물도록 믿음의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자신의 믿음을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번 다시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믿음의 화영검을 세우는 것입니다.
둘째는 십자가의 복음의 핵심은 화평이요 회복이요 치유요 새로움이라고 하였습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해서 지금도 고통 당하는 이 지구촌 사람들, 특히 이 땅 이 민족에게 이 놀라운 화평의 복음을 증거하고 삶을 통해 나누어줌으로, 온 인류가 함께 평화를 누리는 그런 축복이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이곳에서 먼저 시작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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