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5: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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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부끄럽지 않은 소망(로마서5:1-5/2022.3.27.오전)
1. 지난주, 텔레비전의 뉴스 방송시간에 게스트로 나오신 교수 한 분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질문을 받자 첫 순간에 말을 더듬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방송 내내 그의 얼굴이 붉은 채 귀까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것이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의도와는 상관이 없이 누구나 순간적으로 실수를 하고, 소소한 실패도 할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요즈음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는 물론이고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도 전연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반성을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반복된 잘못을 하면서도 사죄는커녕 남들도 다 하는 것이니 문제 될 것 없다는 식입니다.
도리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상대방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도리어 당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얼굴이 붉어진다는 것은 체면을 중요시하는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직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개인 생각이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운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앉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선거 때에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 온갖 중상모략으로 상대방을 헐뜯고 공격하면서, 지키지도 못할 많은 공약을 남발하다가,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가면 그때부터 내로남불이나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도 못 본채 하다가 그것으로 끝입니다.
5년 내내 거짓말에 백성을 선동하고 괴롭히면서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데, 우리 자녀들이 지금도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자신의 허물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자세를 낮추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2. 오늘 본문 5절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에 대해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가진 이 소망에 대해서는 전연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소망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진 소망 중에 부끄러운 소망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세상에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그런 잘못된 소망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 안에서 가진 이 소망은 무엇이고 왜 이 소망이 부끄러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 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소망이 과연 무엇입니까?
8:18절에 보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 다고 하였으니, 본문에서 말하는 이 소망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려갈수록 사람들의 삶의 형태는 계획이나 미래가 없고 질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것이 마치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성도들도 환란이니 인내니 연단이라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실 아무리 경건한 성도들이라도 환란은 다 싫어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환란 없이 인내가 없고, 인내 없이는 연단도 없으며, 연단이 없는 곳에는 소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환란도 인내도 연단도 다 싫은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통과하도록 만드시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주부는 일주일 내내 집안 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러다 보니 늘 피곤하고 남들 다 가는 여행이나 여가를 즐길 겨를도 없지만, 그래도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볼 때마다 보람이 있고 새 힘이 솟아나고, 남편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 자신의 기쁨과 행복임을 느끼게 됩니다.
희생을 통해서 보람을 느끼고, 그 수고를 통해 자라나는 열매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3. 신앙생활도 내 뜻대로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무슨 보람을 느끼겠습니까?
신앙의 열매라는 것도 내가 수고하고 희생한 만큼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이 교회도 내가 얼마나 희생하고 정성을 쏟았느냐에 따라 교회에 대한 사랑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희생을 누가 기쁘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빌3:20절에 보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분명한 정체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현실이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가 있어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소망은 결국에는 그 소망을 가진 자를 부끄럽게 만들지만, 우리가 가진 하나님이 내게 주실 상급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이 믿음의 소망은 도리어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을 씻어주며, 모든 눈물과 고통까지 씻어주는 보배로운 소망인 줄 믿습니다.
소망을 가진 자는 환란도 부끄러움도 실패와 고통도 전부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가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결코 이 세상에 속한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은 왜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 속에서 소망도 없이 살아야 하느냐고 탄식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살면 살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고통과 절망과 낙심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화나 철학이나 어떤 과장된 허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요, 연약한 인생을 위로하고 새 힘을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래서 환란 가운데서도 소망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4. 십자가의 복음은, 소망을 잃은 사람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며, 유혹을 이기지 못해 계속 죄 가운데에 넘어지는 연약한 인생에게 새 힘을 주며, 슬픔과 고통 가운데 빠진 사람들을 건져주며, 그들을 위로하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다니엘 2장에 보면,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임금이, 간밤에 꾼 꿈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예사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바벨론에 있는 모든 박사를 불러 모아서, 그들에게 내가 꾼 꿈을 알아내고 그 꿈을 해석하라고 하면서, 그렇지 못하면 너희 전부를 역적으로 몰아서 집안까지 다 멸절시키고, 너희 몸을 두 동강을 내고 말겠다는 황당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벨론 최고의 실력자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로 인해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함께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근위대장인 아리옥을 만나 왕의 꿈을 알아내고 그 내용까지 해석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이 꾼 꿈은 큰 신상에 관한 것이고, 그 내용은 이 나라가 4대 제국으로 분열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왕의 신임을 얻고 대제국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해결이 불가능한 이것을 어떻게 다니엘은 알 수 있었습니까?
단2:28절에,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브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고 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가르쳐 주셨다고(단2:23)했습니다.
인생살이는 과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이 현실을 이끌어 나가는 모든 힘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우리에게 새 삶을 살게 만들고, 미래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이 소망이 우리를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가게 하는 것입니다.
5.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답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문제를 만난 인생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따라 창조하셨고, 우리 인생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아무리 죄가 크고 망가진 인생도 그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돌아온 탕자처럼 우리를 안아 주시고 평안과 기쁨과 영원한 소망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은 부끄러움으로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영원한 기쁨이요 영원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골3:2절에서 이러한 소망을 가진 자의 삶이 어떤 삶이 되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는 이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의 것을 가지고 염려하는 이 생각이 가져다주는 유혹은,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견디기 어려운 환란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상급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는 그 어떤 환란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을 이루는 복된 과정이 되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상 18장에 보면, 갈멜산에 올라간 엘리야는 혼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우상숭배자들과 맞서 영적인 싸움을 할 때, 제단 위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응답을 받았고,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던 이스라엘에 큰 비를 내리는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본문 3-4절의 말씀대로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의 핍박이라는 환란 속에서 인내의 꽃을 피우고, 인내 가운데서 연단이라는 성장을 이루고, 연단 속에서 소망이라는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6. 그런데 문제는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고 흔들림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왜 우리는 조금만 일에도 잘 흔들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실망을 주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까?
마13:21절에 보면 그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 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일 힘이 없고 불쌍한 나무는 뿌리가 없거나 뿌리가 있어도 너무 연약한 나무입니다.
뿌리가 약하면 작은 바람에도 넘어지고, 잠시 쏟아지는 비에도 뽑혀 나가고,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영양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에도 튼튼한 뿌리가 있어야 그 뿌리를 깊은 속에 내리고 든든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튼튼한 뿌리가 있으면, 다니엘처럼 어린 나이에 포로가 되어 남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도, 그 나라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 최고 권력까지 누릴 수 있으며, 엘리야처럼 850대 1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죽어가는 백성을 살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을 두려워하거나 연단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것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미래에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부활에 대한 이 소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하고 전파하고 나누어야 할 기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말씀드린대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8:18)다고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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