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한국어)

  • 설교 자료 >
  • 주일 설교(한국어)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로마서7:15-25)
고영수 2022-07-23 추천 0 댓글 0 조회 730
[성경본문] 로마서7:15-25 개역개정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로마서7:15-25/2022.7.24.오전)

 

1. 야마자키 나오미(山崎直子)는 2010년 4월에 스페이스 샤틀 디스커버리(STS-131)에 탑승해 우주 공간에서 15일간 머물면서 활동하다 귀환하였고, 지금은 대학교수와 일본의 우주정책에 관한 일을 하고 있는 여성우주비행사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어릴 적에 우주전함 야마또(宇宙戦艦ヤマト)라는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아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웠는데, 마침내 그녀에게도 기회가 찾아 왔고, 미국의 나사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훈련 기간이 4-5년이나 길어지면서 정말 우주에는 갈 수 있는지, 이렇게 기약도 없이 훈련만 받아야 하는지, 불안과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훈련 기간이 4년째로 접어들었을 때, 2003년에 스페이스 샤틀 콜롬비아가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함께 훈련을 받았던 동료 7명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본부의 우주비행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말았습니다.

장녀를 출산한 뒤에, 기약도 없는 훈련에 다시 참가하려고 어린아이를 일본에 남겨놓고 떠나게 되었고, 그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무력감과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그녀를 붙들어 주고 새 힘을 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담임선생님의 하신 말이었습니다.

20세기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더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가 어느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한 설교 내용으로, 우리에게는 라인홀더 니버의 기도문으로 더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하나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내게 주시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소서.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고등학교 때에 들었던 이 말을 일기에 적어두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지금 나에게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리라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로 날아갈 확률이 1%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러시아에서 모의 군사훈련에 참여했을 때,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벽에 부딪히고 나는 할 수 없다, 싫다는 생각이 들어도 계속해서 그것을 실행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취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오늘 본문의 제목이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인데, 사람들은 의외로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많은 철학적인 언어들이며 학문적인 시도는 해답을 찾기보다는 도리어 사람의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우리에게 명쾌하고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4절에 보니,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아래 팔렸도다" 고 하였고, 17, 20, 23절에서는 내 안에는 분명히 죄가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안에 있는 이 죄가 암 덩어리처럼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나를 파괴하고 무너뜨리기 위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육신에 속하여 죄에게 팔리게 되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행하게 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되고,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17절의 말씀대로, 내 안에 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죄라는 것은 바깥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도바울은 이미 내 안에는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하는 죄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는 언제 내 안에 들어왔으며, 언제부터 내 인생의 주인처럼 나를 노예처럼 부리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윗이 우리에게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시51:5) 다는 것입니다.

죄는 이미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될 때 함께 잉태되었고,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출산할 때에도 나와 함께 이 세상에 나왔다는 말입니다.

마치 내 몸의 내 인격과 생명의 일부처럼 나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이러한 죄는 결코 내 힘으로는 제거할 수 없으며, 그것을 바꾸거나 변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만들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할 때, 우리는 속수무책 당해야만 하고,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20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격이나 우리 삶 전부가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음에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구원받은 자의 감격이 있고, 내가 새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 같고, 찬송을 불러도 구원의 감격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것 같고 무슨 일을 해도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신앙생활이 피곤하고 갈등이 깊어갑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전에 즐기던 세상으로 되돌아가서 쾌락과 욕심과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185-254)는 초기 기독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자며 교부였습니다.

그는 많은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켜낸 사람입니다. 서기 202년에 일어난 박해로 부친이 순교하였고, 자신도 수많은 옥고를 치르고 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지켰습니다. 그런 그가 게으름과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고환을 자르기까지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교회로부터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순교까지 당한 이렇게 훌륭한 신학자요 신앙인이라도 내 안에 있는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연약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4. 그런데 이런 사실을 두고 어떤 도덕폐기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실상에 대하여 좋은 핑곗거리를 얻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들어온 죄는 내가 아니다, 나 몰래 허락도 없이 들어온 죄가 행하는 악행에 대하여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하면서, 모든 죄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벗어버리려고 합니다.

나는 복음으로 선한 사람이 되었고 선하게 살기를 원하는데, 내 안에 들어온 죄가 제 마음대로 하므로, 그 죄에 대해서는 나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직장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게으르고 사고만 치면서 하는 말이, 나는 열심히 하고 싶은데 나는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싶은데 내 육신이 죄가 이것을 방해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 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육신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이 내 안에 머물면서 계속해서 나를 유혹하고 공격해서 나를 영원히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당연히 죄를 대적하여 싸워야 합니다.

내가 약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늘 패배하는 전쟁이라고 전의를 상실한 채 살아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인생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 22절 이하에서 내 안에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사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다도" 고 하였습니다.

 

5. 분명한 사실은 내가 하나님의 법, 곧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며 그렇게 순종하며 살기로 해도, 이 율법으로는 내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항상 내 속사람을 다른 법이 죄 아래에 굴복시켜서 나를 사로잡아 꼼짝을 못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내 안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악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4절에서 깊은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내가 한 번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너무 비참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것을 행하고 있는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요, 그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죄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비관만 하고 살 이유는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안에 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다는 것은 아직 내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싸울 때마다 내 속 사람이 패배를 맛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자 하는 그런 의지가 아직 남아 있으므로, 그래서 갈등과 고민이 있고, 또한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도 흘리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인 어그스틴이나 칼빈이나 루터는 이 갈등과 고통을,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에 나타나는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신앙인들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전쟁의 패배가 무엇이며, 양심의 가책도 모르기 때문에 갈등도 고민도 회개의 눈물도 없는 것입니다.

 

6.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도 또 다른 죄의 법 때문에 패배하다가 그 죄 때문에 영원히 죽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죄 아래 사로잡힌 연약한 인생이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25절에 보니 여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법이요 하나님의 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곤고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이 죄의 법에서 해방을 얻게 하신 이것입니다.

곤고함과 사망의 올무 속에서 고통하는 나를 찾아와서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삶과 영원한 미래를 소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늘 죄악의 포로된 고통의 삶을 살고 있을 때, 주님은 나를 찾아 오셔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나 대신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22절에서 말하기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 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안을 들여다볼 때에는 선한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이, 죄로 말미암아 늘 넘어지고 연약하여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이지만, 주님이 십자가로 내게 영원한 승리를 얻게 하셨으니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와 소망과 새 힘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7.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를 작사한 스파포드(Spafford)는, 변호사로 대학교수로 실업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가족과 함께 프랑스를 여행하려고 했으니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위해 가족을 먼저 보냈는데, 1873년 12월22일 새벽 2시에 대서양에서 영국 배와 충돌하면서 4자녀는 죽고 부인만 겨우 살아남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스파포느는 내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부인을 데리고 오기 위해 배를 타고 자녀들이 빠진 그곳을 지나갈 때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노래가 413장 가사였다고 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은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은 편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늘 죄악에 져서 패배하는 삶이라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셨으니, 그분을 믿고 따라가며 어려울수록 십자가를 붙들고 싸워 나아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승리의 삶을 영원히 사는 줄 믿습니다. ​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마서8:1-8) 고영수 2022.07.30 0 800
다음글 누가 나를 속이는가(로마서7:7-14) 고영수 2022.07.16 0 747

大阪中央教会 ⧧537-0023 大阪市東成区玉津3-1-33 (06) 6973-5540, 6929-1569 www.chuo.co.kr sirokita@gmail.com

Copyright © 오사카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8
  • Total88,992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