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8:35-3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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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끊을 수 없는 사랑(로마서8:35-39/2022.9.4.오전)
1. 지난 1월에 효고켄의 시소(宍粟)에서 효노산(氷ノ山)을 지나 돗토리시로 빠지는 국도 29호선을 타고 달리면서 며칠 동안 계속 내린 눈으로 뒤덮인 산하를 촬영했는데, 지난주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소를 찾았지만 사진기에 담을 만한 풍경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눈덮힌 세상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같은 지역이라도 눈이 없는 세상은 전연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세상,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세상 사람들과는 전연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눈처럼 덮여 있는 그런 아름답고 포근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늘 험악하고 제 힘으로 살아가기에 고통스러운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누리고 맛보는 것과는 전연 다른 세상에서 그들이 가질 수 없는 은혜로운 삶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살아갈 때도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래서 늘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나는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그런 사랑으로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이런 관계로 맺어지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지난주에 28-30절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난 내용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 대해서 미리 아셨다면 당연히 우리가 도중에 죄짓고 타락하고 더러운 자가 되어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가 될 줄도 아셨을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철저하게 망가진, 그래서 포기해버리면 더 좋았을 우리를 하나님은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후회가 전연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시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가 도중에 죄로 망가진 우리를 보시고 그 사랑을 포기하셨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란 별 볼일 없는 가치없는 것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도중에 포기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구원의 능력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처음에는 놀라운 효과가 있었는데 도중에 그 효과가 사라졌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 사람들의 가짜 사랑놀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만일에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감격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다가 도중에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다면, 사도바울의 말대로 우리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고전15:19).
그러나 사도바울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도중에 무효가 되고 깨어지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얼마나 잘 안다고 그렇게 단언해서 말할 수 있습니까?
고후1:8-9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 받은 자같은 상황에까지 갔지만, 그런 곳에서도 건지시고 힘을 주시며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로 환란을 체험하면서,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끊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것입니다.
부모가 날 버렸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더이상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복수심에 분노하고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날 사랑하고,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나에게 힘을 주고, 그런 나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부모를 보면, 아이들은 어떤 시련과 장애물을 만나도 다 넘어갈 수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함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4. 우리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변함이 없고 끊어질 수 없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장애물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37절에 보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공을 향해 나아가게 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다 이기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잠시 동안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의 힘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변화는 먼저 안에서부터 일어나야 하는데, 겉만 변하고 그것도 일시적인 변화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다 위장이요 가짜요 엉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은 사람을 속에서부터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변화시키되,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한 것처럼, 우리를 변화시키되 영원토록 유효한 새사람이 되게 하는 줄 믿습니다.
5. 그런데 35절과 39절에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버리려고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35절에서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이라 하였고, 39절에서는 "높음이니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를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구약의 히브리어로 「사탄」이라고 부르며, 그 의미는 대적자, 유혹하는 자란 뜻이고, 신약의 헬라어로는 「디아볼로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소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를 풀어보면, 「디아」는 사이, 「볼로스」는 갈라놓다는 뜻입니다.
이같은 사탄의 세력이 끊임없이 하나님 사랑을 입은 우리를 유혹하고 방해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새사람 되었는데, 마귀가 와서 말합니다.
너 요즘 이상해졌어! 옛날에 거짓말하고 속이고 욕심내면서 살았는데 왜이래, 하던대로 하고 살아!
예수님도 유혹하던 그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는 도중에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행위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벧후2:22, 우리말 성경)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도, 모압이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거리가 되었"(렘48:26)다고 하였습니다.
6.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려는 마귀의 활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최대의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의심과 두려움입니다.
본문 36절을 보면, 사람들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그 사랑이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이고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환란과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39)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내 뜻대로 내가 기도한대로 응답받고 잘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날 위해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는 이 사실뿐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의 아들을 남을 위해 내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도 없고, 흔들수도 없으며, 그 사랑을 취소하거나 변경 시킬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34절에 보니,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7. 윌리엄 헌터는 경건한 개혁주의 부모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19살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메어리의 통치 아래 있었고, 그녀는 이번 부활절에 모든 국민을 소환하여 부활절을 성대하게 거행하고자 했으나, 헌터는 잘못된 여왕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헌터에게 비단을 짜는 방직기술을 가르치던 토마스 테일러는 그를 먼곳으로 피신시켰습니다.
헌터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갔다가 책상 위에 놓인 성경책을 보고 읽기 시작했고, 이 일이 발각되어 체포되고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가 여왕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 중인 것이 또한 발각되어 옥에 갇혔습니다. 심문관이 그를 심문하면서 요6장을 펴고 성찬식에 대하여 그 뜻을 물었고, 당시 영국은 성찬식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그런 잘못된 해석을 부인하였고, 이것이 이단죄로 단죄되었고 그에게는 화형이 선고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화형장에 끌려갔을 때, 여왕 메리로부터 편지가 도착했고, 너의 주장을 취소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고 하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당신의 아들에게 끝까지 강한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위해 기도하였고, 그는 불길 속에서 모두를 용서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신으로 신앙을 위협 당하는 너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물질 만능주의와 그 어떤 종교도 다 우리를 망치고 빼앗고 무너뜨리는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협상이나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환경이 어렵다고 상황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흔들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무릇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일요5:4)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첫째로 오늘 내 신앙은 어떤 일을 만나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신앙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영원토록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것과, 셋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언약으로 받았으니, 이 말씀들이 우리의 영원한 미래의 보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의 손길에서 그 누구도 우리를 빼앗을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삶의 능력이 되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영원한 축복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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