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고린도후서7:5-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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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위로하시는 하나님(고린도후서 7:5-8/2016.9.25.오후)
1. 사사끼 히로시(佐々木洋)는 이와떼 출신으로 야구를 통해 성공을 기대했지만, 대학 2년 때, 주전 선수에서 탈락하면서 기숙사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인생의 허무를 처음으로 통감했하면서, 고민 끝에 그동안 운동선수로 책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책을 열심히 읽다 보니 헌책방에서 만난 책이, 나폴레온 힐이 쓴 「생각은 현실이 된다」는 책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꿈을 가지라, 목표를 만들라고 수도 없이 들었지만, 어떻게 꿈을 만들고 목표를 세워야 할지 구체적으로 배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생각하기를, 야구선수로서 자질이 없다면 지도자로서 성공해보자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28살에 최소년 감독으로 고시엔대회에 출전한다는 목표였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침내 이와떼껜의 하나마끼 히가시 고등학교(岩手県の花巻東高校)의 야구감독으로 취임하여 꿈대로 28살에 팀을 이끌고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그는 확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꿈은 반드시 실현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구체적인 꿈을 계획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긴다면, 꿈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오오따니 쇼우헤이(大谷翔平)가 야구부에 들어왔을 때, 그는 선배인 기꾸찌 유우세이(菊池雄星)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고, 사사끼 감독은 그렇게 해서는 기꾸찌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기꾸찌 보다 더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기꾸찌는 투수로서 시속 150키로를 던지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능가하기 위해서는 160키로를 목표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고, 놀랍게도 오오따니는 빠른 시간에 163키로를 던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꾸찌나 오오따니는 야구부에 입단할 때부터 이미 프로선수의 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인재들이 내 밑에 있는 동안에는 나도 대충대충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들을 프로야구 선발인 드래프트에 1위로 내 보낼 수 없다면 감독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 프로야구 보다 그 위에 있는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 보내는 목표를 세웠고, 이 목표를 그들과 함께 공유했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꿈을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 두 사람이 바다를 건너 메이저 리그로 건너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들이 우연히 바다를 건넌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부터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두 발로 바다를 건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이런 성공적인 이야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들고 힘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정반대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어느 뉴스 시간에 어떤 기자가 밝힌 충격적인 내용으로, 자신의 아버지는 술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인데, 그런 모습을 캠코더로 찍어 시청자들에게 그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결국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여러 가지 핸디캡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인간관계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기분전환으로 마시던 술을 끊지 못해 중독 상태에 빠지거나,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증에 잘 빠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술은 만병의 원인이 될뿐 아니라, 이혼, 별거, 독신, 실직, 가난,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람을 파멸시키고 맙니다.
이런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일본에 500만여 명인데, 이 숫자는 일본의 크리스천 인구의 12배가 넘는 숫자입니다. 일본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보다 술이 더 세고 영향력이 큽니다.
이런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외부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과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누가 나를 고통하게 만들고 있으며, 누가 나를 불행하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패배하게 만들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불쌍한 인생으로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파멸시켰고, 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내가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든 것뿐입니다.
3.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과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의 현주소는 어떤 곳입니까?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그곳에 나오는 사람들이 동일하게 인생에 대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전쟁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만 제일 불행하고 나 혼자만 고통 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내면세계는 쉴 새 없는 고통과 두려움, 근심과 낙심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도 마시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이상한 짓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믿음의 사람 바울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에게도 고통이나 두려움이나 근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지구촌에서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같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5절에서 바울이 하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라고 한 것은, 다른 곳에서도 육체와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4. 우리는 생각하기를, 전도자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능력 주시니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선교사들의 사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사건들과 능력들을 우리는 많이 듣고 있으며, 또 우리 주위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의 그런 능력과 기적의 배후에는 더 많은 아픔과 눈물과 고통과 실패와, 죽고 싶을 정도의 괴로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30-40대에 여러 선교현장을 방문하면서 목격한 것은, 선교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이나, 언론에 공개된 그런 감동을 일으킬만한 내용들도 많지만,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들의 땀과 눈물과 때로는 피를 흘리며 희생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선교사로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세계선교를 꿈꾸고, 일본 복음화에 대한 더 큰 열정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와 처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육체가 편치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란을 당하”고,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육체가 편지 못하다는 것은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과로나 육체를 괴롭히는 어려운 생활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방으로 환란을 당한다는 것은,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의 간계와 박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도무지 감당해 내기 어려운 환경과 조건이 밖으로는 다툼으로 안으로는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런데 바울의 마음을 괴롭히는 또 다른 큰 근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낳은 고린도 교회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야 할 고린도 교인들이 세상과 이단과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에 흔들릴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처럼 비도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주의자들과 이단들에게 속아서, 자기들끼리 편을 나누고 믿는 형제가 서로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염려하고 있으며 무엇을 근심하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 근심하는 그 근심은, 바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내가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돈이나 사업을 걱정한다면, 돈이 내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돈이요, 돈이 곧 나인 셈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지금까지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다른 근심, 다른 염려에 사로잡혀 보기를 원합니다.
세상 때문에, 돈 때문에, 자식이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자리지 못하고, 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믿으면서도 마음에 평안과 감사와 기쁨이 없는, 그런 나를 한 번돌아보면서, 나 때문에 한 번 근심해 보자는 것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친척이나 이웃이나 가족 때문에 한 번 근심해 보자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가 지금 얼마만큼 주님과 멀어졌는지, 어렵다는 핑계로 우리가 지금 얼마만큼 불충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 보자는 것입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내 마음속에는 너무 많은 핑계거리를 만들어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바로 이것을 염려하고 근심해 보자는 것입니다.
6.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기를, 마치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런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괜히 이 사람들을 꾸짖어 도리어 역효과를 내고 말았구나!
내가 차라리 편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근심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의 솔직한 책망과 꾸짖음이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바울은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나 생활 환경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자녀들인 고린도교인들과, 주님의 몸 된 고린도 교회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잠깐 근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근심과 염려가 반복되고 길어진다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고, 내 심령을 언약의 말씀으로 채우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그런 것들이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좌지우지할 것이고, 우리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고 하시면서 우리의 해야 할 일과 그 결과에 대하여 약속을 주셨습니다.
7. 하나님의 약속은 더디 오는 것 같지만, 근심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의 위로는 빨랐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근심을 버리고 기쁨으로 충만하도록 만들었습니까?
6절에 보니,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였”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파송한 디도가 그곳에서 가져온 고린도 교회의 소식이 바울로 하여금 염려에서 벗어나 기쁨을 얻게 하였던 것입니다.
7절에, “저의 온 것 뿐 아니라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한 것을 후회하였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고, 그 결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눈물로 회개하고, 자신들을 위해 오랫동안 염려하고 근심한 바울을 생각해서 감사하였고, 잘못된 가르침에서 떠나, 신실한 믿음과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근심하던 바울로 기쁨을 얻게 한 것입니다.
8. 10절에 보면,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바울처럼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었지만, 세상근심은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교회를 통해서 일본을 복음화 하기 위해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4대 목표가 있습니다.
일본 복음화, 세계 선교, 천국 일군 양성, 성전 건축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구호만 외치고 세월만 보내고 있을 뿐,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 근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염려하면 할수록 세상을 더 의지하게 되고, 마귀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고, 그래서 무기력하고 패배로 비틀거리는 비참한 삶이 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근심하고 염려한다면, 잠시 잠깐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우리에게 영원할 줄 믿습니다.
2022년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이 교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세상 염려를 내려 놓고,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십자가 복음을 위해 염려하고 수고한다면, 우리 안에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주님의 위로와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이러한 수고와 염려는 도리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근심이 될 것이고,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과 위로와 넘치는 축복으로 이 교회와 우리의 삶에 넘치게 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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