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9:6-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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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약속의 자녀(로마서9:6-18/2022.9.25.오전)
1. 이전에 성지순례 중에 터키에 갔다가 놀란 것은, 1천 년 이상 된 유적들은 너무 흔해서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사도바울이 태어난 지방 도시인 다소를 방문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만큼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대대로 이어 내려온 1천년이 넘는 사업장(老舗)이 많습니다.
그중에 가장 역사가 깊은 회사는 오사카의 공고구미(金剛組)라는 건축회사로, 성덕태자(聖徳太子)가 초청한 백제인 공고시게미츠(金剛重光)에 의해 서기 578년에 설립된 회사로 지금까지 1,400여년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에서 최고로 오래된 사업장입니다.
창업 500년 이상된 기업만 32개며, 백 년 이상으로 공인된 것만 3만3천이 넘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사업들이 도중에 무너지지 않고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사업을 일으키면, 대부분의 경우는 그 창업자가 죽으면 회사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업장과 재산을 물려받을 때에는, 대부분 장남이 승계하게 되지만, 아들이 없거나, 있어도 본인이 사업을 물려받는 것을 거부하거나 능력이 되지 못하면, 그 사업장은 소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 지역에서는 이럴 경우에는 딸이나 부인 쪽으로도 승계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장남이 있어도 승계자로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재산은 장자에게 물려주지만, 사업은 직원 중에 가장 우수한 인재를 반또(番頭)로 세워서 딸이 있으면, 데릴사위로 들여 가업을 잇게 하였습니다.
그 집안의 혈통이 아니라도 능력만 인정받으면, 가업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 내용을 보면, 성경에도 이와같은 비슷한 사례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6-7절을 보면, 이스라엘인에게서 났다고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씨라고 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이 밝히고 있는 영적인 원리를 깨달아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롬4:3절에 보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고 하였는데, 이 말씀의 핵심은 오늘 본문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육체나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이스라엘에게서 났다고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더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본문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삭이 아니라 사라의 여종인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입니다(창16:15-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7절에는, 둘째 아들인 이삭을 통해서 난 자녀가 진짜 아브라함의 씨라는 것입니다. 아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를 원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통해서 난 자녀가 믿음의 자녀요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3. 악명 높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6백만이나 학살했는데, 그때 그가 만든 유대인의 기준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도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도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참 유대인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창17장에 보면, 이스마엘을 출생한 지 약 13년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의 출생을 예고해 주시는데, 아브라함이나 부인 사라는 이스마엘이 자신들의 후사를 이을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17:19절에 보면,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새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이 99세로, 사라가 90세로 이삭을 출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삭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은, 이삭이 출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을 주셨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성취하시려고 그 약속을 따라 이삭을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무리 장자로 태어났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출생은 아브라함 부부의 불신앙을 따라 불의한 방법으로 태어난 자식입니다(창16:1-3).
4. 계속해서 본문 10절 이하에 보면, 이삭과 그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님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을 비교하시면서, 그들의 행위나 공로를 따라서 그들을 구별하시거나 또한 약속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왜 형 에서는 버리고 동생 야곱을 선택하여 약속의 자녀로 삼으셨느냐고 불평합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불의하신가?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5절 이하로 내려가 보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렘18:1-6절의 토기장이의 비유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토기장이는 자기 뜻대로 흙을 가져다가 그릇을 만드는데, 4절에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고 하였습니다.
토기장이가 자기 임의대로 원하는대로 그릇을 만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불의한 일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자신의 선한 뜻을 따라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자신의 영광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며 축복하시는데, 그래서 본문 18절에 보면, 이 일에 대하여 누가 시비를 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전부가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용납하시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 왕의 마음도 하나님이 완악하게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 중심의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주시는 약속입니다.
5. 갈4:22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다 같이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태어났고, 이삭은 믿음 안에서 소망이 있는 약속의 자녀로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를 따라 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일에 대해서 고전15:39-41절에서,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고 하면서,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며, 각각 그들의 받을 영광도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성도들 가운데서 아들, 아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들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아들에게 이삭처럼 야곱처럼 하나님의 언약이 있느냐 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스마엘의 인생도 좋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도 한 민족을 이루고 에돔의 조상이 되어 잘먹고 잘살았지만, 약속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축복하시는 존재는 약속의 자녀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며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갈4:31절에 보니,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 라고 하였는데, 어째서 우리가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 즉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6. 우리는 예외 없이 불순종으로 망한 아담의 후손으로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아예 저주 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인생을 불쌍히 보시는 하나님은, 그중에 얼마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그 가운데 우리를 택하셨다가 때가 되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십자가 보혈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어지는 약속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핏값을 주고 사신 몸된 교회로 불러 주셔서 지금까지 우리의 믿음을 양육해 주셨고,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모든 환란에서 보호해 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게 하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만세전에 계획하신 그분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확신하면서,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갈1:15
-16) 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순수한 이스라엘인인 사도바울 조차도, 자신이 혈통을 통해 택함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도록 나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7. 그렇다면 믿음으로 약속의 자녀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자유로운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누리는 것과 즐기는 것과 성취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이런 생각이 정말 정확하고 바른 판단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만큼 참된 자유를 누리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22)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진리를 다 행할 수는 없지만, 이 진리를 아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주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영원한 자유와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욕과 탐심에 묶여서 노예처럼 살아가면서도, 죄에게 사로잡힌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 모든 것은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며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가르쳐 주고, 십자가의 복음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이것이 약속 있는 자녀들의 삶인 줄 믿습니다.
약속을 받은 자녀는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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