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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열심(로마서10:1-4)
고영수 2022-10-15 추천 0 댓글 0 조회 692
[성경본문] 로마서10:1-4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스라엘의 열심(로마서10:1-4/2022.10.16.오전)

 

1. 신앙생활에는 여러 가지의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고 늘 실패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영적인 감동이 없습니다.

분노심에 빠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한 마음, 미운 생각, 남들과 비교하면서 시기 질투를 가진 사람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발이나 창의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게으른 사람,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나 인격적으로 제대로 된 사람들은 다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서 습득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직접 내게 알려 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서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목동 출신 다윗이 학벌이나 교양이나 사회적인 경험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던 고난의 세월을 통해, 귀족이나 박사들도 따라 올 수 없는 능력의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최고의 성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이나 마음에 가득찬 분노심이나 게으름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특히 게으런 사람은 신앙생활도 인생도 다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새롭게 하시고, 그 마음으로 생각을 바꾸게 하심으로 인생이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성장하면서 교육이나 환경을 통해서 굳어진 생각입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부모가 돌대가리라고 몰아세우면, 아이는 평생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돌머리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면서 돌맹이 같은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몸이 아픈 병자는 늘 병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남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기당한 사람은 사람들이 사기꾼처럼 보이고, 그래서 늘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하면서 살아갑니다.

가난한 사람은 늘 궁핍함에 포로가 되어서 어렵게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돈을 벌어도 그것을 쓰지 못하고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엉뚱한 사람이 가져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야 말로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니,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 다 하였습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들을 때에도 자신이 평생에 쌓아 놓은 그 고정관념을 통해서 말씀을 전달받기 때문에 모든 것이 편협되고 부분적이고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능력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5장에 보면,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베데스다 라는 못이 있는데, 이곳에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유는 천사가 내려와서 그 물을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병자는 무슨 병이든지 치료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곳에서 치료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병자들이 찾아와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못된 생각이, 진리가 아닌 잘못된 정보를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베데스다 못에서 단 한 사람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38년된 병자로 그는 물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치료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을 만나야 내 인생이 새로워지는데, 나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믿고 의지하니 돌멩이 같은 삶을 살고 돌멩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매주 만나고 있는 이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그분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되었던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사실을 거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10: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그분 자체가 우리의 의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믿음 하나만 있으면 의롭고 거룩한 자가 되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사실을 거부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만분의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목숨을 걸고 열심을 내는 유대인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유대인들에게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절에 보니,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이 열심이, 방향을 잘못 잡아서 열심을 낼수록 잘못된 곳으로 나가도록 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흉내 낼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열심히 있었고, 우리는 그것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사람들도, 종교적인 열심, 특히 믿는 신에 대한 태도는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일본인들이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열심은 있지만, 2절에 기록된 대로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잘못된 지식이나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열심이란 것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도바울로서는 자기 동족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4. 열심을 내는 것은 누구나 본받아야 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진 이 열심은 첫째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 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당한 끔찍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의를 주시려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분노심을 가지고 죽인 것입니다

이 죄가 하나님의 진노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살육을 맛보고 이스라엘은 2천 년 동안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지식과 잘못된 생각은 우리 인생을 평생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듭니다.

칼빈이나 루터나 쯔윙글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깨달아서 그래서 시작한 것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처럼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카톨릭은 그들을 탄압하였고, 무섭고도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 수도 셀 수 없는 무참한 살육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5:17절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 자신이 율법의 완성자란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도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다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율법과는 상관이 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 열심은 도리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5. 둘째는 참된 의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 했습니다.

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열심을 내는 율법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그 누구도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의는 행위에서 난 의를 요구하지 않고, 믿음으로 인한 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구원이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요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전1:29)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왜나하면 열심 자체는 귀한 것이지만, 이것을 자기 공로나 자랑이 되면, 오히려 이것이 저주거리가 되고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구원받은 자의 감격이요, 하나님 자녀된 자의 뜨거운 감사일뿐입니다.

 

6. 사실 열심히 말하면, 사도바울을 따라 갈 자가 없습니다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3:6)였고, 1:14절에 보면,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을 내"었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상의 전통이 무엇입니까? 율법으로 자기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열심은 바울 뿐만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대단했습니다.

23:15절에 보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면서 전도에 열심을 낼 정도입니다.

당시로서는 바다는 매우 위험한 곳이고, 한 번 항해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심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세우고 자랑하려고 했으니, 남은 전도해서 구원하고 자신은 저주받아 멸망하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하고 참된 열심은 자기의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6:22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7. 그런데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우리에게도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힘으로는 의를 이룰 수도 없고, 공로를 만들 수도 없으니 그렇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였으니,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갓난아기처럼 하나님 품 안에서 우유병이나 빨고 있으라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또한 죄 가운데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받게 된 이유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43:21)이요, 또한 우리를 구원하사 온 세상에서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 알게 하기(37:20)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를 세우고 자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자랑하고 그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땅끝까지 전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본문 4절에 기록된대로 이스라엘처럼 자신의 의를 세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로 의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역할은 끝났고, 10절에 기록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바른 지식은,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자요 그래서 우리는 율법과는 상관이 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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