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19:1-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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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4.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11.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12.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13.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의 피난처(신명기19:1-14/2023.2.26.오전)
1. 나쇼날의 회장, 마쯔시다 고노스케씨(松下幸之助、1894-1989)가 80살이 되었을 때, 부하에게 솔직한 마음의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참고서 정도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그런 교과서는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고노스케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의 일류라고 알려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솔직한 마음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늘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최근에는 그런 마음에 자꾸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사원들의 좋은 점을 봐야 하는데, 그들의 단점을 보면서 불만이 생기고 마음의 평정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4년에 만들어 낸 것이 「正直な心になるために(PHP文庫)-솔직한 마음이 되려면」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가 원하는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는 교과서 였던 것입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정상적인 국가이고, 사람들이 과연 제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분노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올 때에는 한일간의 격차가 30년 이상, 한국이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첨단 기술이나 국가경쟁력은 불과 몇 년 차이로 좁혀 졌지만, 지금의 국민성을 본다면 한 세대가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결국, 개인의 인생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국가의 장래는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기를 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고 발버둥을 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한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 하는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매 주일 만나고 있는 이 신명기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마음의 교과서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무엇을 선택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다신교 신앙과 우상숭배로 가득하고 지나치도록 타락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니면 도무지 인간으로서 바로 살아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살았습니까?
신8:3절에 보니,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하려 하심이라" 고 하면서, 4절에 보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 다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젖먹이처럼 그렇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6:5절에 보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는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쁜 머리를 써가면서 제 몸을 상하게 하면서 죽도록 수고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생존방법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무슨 특별한 비법이나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순종이 나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분을 닮아가는 온유와 겸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사랑하면 참을 수 있고, 원수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은 도피성에 관한 내용으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의 살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5-6절의 말씀처럼, 전연 의도하지 않고 부지중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그가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생명을 노리는 자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5)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도피성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원한이 없이, 분노나 미움도 없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로 인한 살인은 무분별한 복수자의 손에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도피성은 요단강 동쪽에 3곳, 서쪽에 3곳으로 도합 6곳이 만들어 졌습니다.
이곳에 피한 살인자는 절대로 그곳을 나오거나 떠날 수는 없지만,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사면이 된 것입니다.
둘째는 11절에서 보는 대로, 의도적인 살인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해서 숨어 기다리다가 그를 공격하여 죽이는 일입니다.
문제는 분노와 복수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면, 율법은 그 살인자를 어떤 경우에라도 살려두지 말고 죽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살기 위해서 도피성으로 도망해 숨어도, 그를 끌어내어 보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죽임을 당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살인사건의 뉴스나 재판에 관한 내용을 보면, 살인범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죽일 의도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도, 일단 살인자의 죄를 가볍게 해 보자는 것인데,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내용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4. 문제는 하나님이 왜 이런 도피성을 만드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롬3장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인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놓여 있다고 말하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10,11)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결백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선한 것처럼 떠들지만, 인생은 너나 없이 다 죽을 죄인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반드시 받아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야 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연약하고 실수가 많기 때문에, 그래서 원치 않는 결과를 언제든지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 후회하고 억울해 하고 할 수 만 있으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인생을 탄식하고 있습니다(롬7:18-19).
이런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이스라엘 가운데 도피성을 만든 것처럼, 우리에게도 피난처를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이 지은 죄만 보면,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저주받고 영벌에 들어갈 인생을 하나님은 불쌍히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이라도 피해 도망갈 도피성을 주셨는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피해 도망하면 살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어떻게 열렸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갈보리 십자가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5. 롬8: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 다고 하였고 하였고, 계속해서 롬8:39절에서는,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 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어떤 죄를 지은 인간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도피성, 곧 피난처로 삼으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으며,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죄의 삯은 사망"(롬6:23) 이라 하였는데,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도망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그 죗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기 때문에, 누구라도 심판이 아니라 도리어 용서받고 구원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입니다.
사람들은 동기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합니다. 아무리 선하고 아름다운 동기가 있어도 인생의 모든 것은 결과를 가지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동기를 생각하시고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그래서 명백한 살인이라는 결과가 나왔어도,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지를 살펴보십니다.
그래서 내가 원치 않는 죄를 짓고, 내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는 그런 우리의 삶을 불쌍하게 보시기 때문에,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것입니다.
6. 우리가 성경에서 얻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진리가 무엇입니까?
인간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사울을 건국의 왕으로 세웠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겸손하고 부드러웠던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문제투성이였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좋게 보았지만, 좋게 본 만큼 실망이 더 컸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온 나라를 우상숭배의 소굴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다 그랬습니다.
이같은 모습은 지금 21세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결과는 항상 끔찍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늘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변함없으신 마음으로 그들을 부르셨고, 회개를 촉구하시면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버린 이스라엘이 돌아올 길조차 잃어버렸을 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우리를 위해 피난처로 보내신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그 은혜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다" 고 했습니다.
또한 시46:1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면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을 주고 의지할 곳은 더욱 없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신뢰한 만큼 실망과 상처가 큰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8-29)고.
7. 예수 그리스도는 삶에 지친 자에게는 피난처가 되시고, 죄로 말미암아 무너지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시고, 문제를 만나고 마음과 몸이 병든 자에게는 치료와 회복의 능력이 되십니다.
주님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로 가면 우리 인생은 물론이고 내 영혼에도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고 그에게로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고 안식처가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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