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50:14-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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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감사의 제사(시편 50:14-15/2023.7.2.맥추감사절)
1. 지금 전 세계의 인구가 80억이라고 하는데, 일본만 해도 1억2천 5백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모습이 다르고,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과 방향이 달라지고,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모습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삶의 목적이 그분의 말씀과 사랑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자녀된 자의 도리이겠습니까?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는 감사가 있어야 온전한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예배는 기쁨의 찬양이 나올 수 없고, 감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감사가 없는 예배, 형식적인 예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인의 제사가 그랬습니다.
그는 열심히 예배는 드렸지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감사가 없었습니다.
감사가 없으니 제사를 드린 후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이 튀어 나왔고, 마침내 인류 처음의 살인 사건이 된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살펴보면서 감사를 통해서 더 큰 은혜의 자리로, 더 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2. 첫째는 본문 15절을 보면,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평생 따라다니며 절대로 떠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은 죄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말미암는 고통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선언한 대로, 사람들은 죄 때문에 너나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 자체가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평안이 없으니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참 행복과 구원을 얻으려면, 고통과 영원한 저주를 가져다주는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갖 종교와 신들의 이름을 빙자하여 이 두려움과 고통에서 구원을 얻으려고 했으나, 인류 역사상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러 보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온갖 종교적인 행사는 도리어 고통과 허무함을 더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도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원죄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롭고도 유일한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의 은총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모두의 죗값을 치러 주시려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죄가 주는 온갖 고통과 두려움과 저주에서 우리 인생은 구원받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매일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로, 그는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0절 이하에 보면, 이 세상의 온갖 짐승들과 피조물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생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고, 이 양식을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투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최강으로 알고 있는 동물의 왕국의 사자도 사냥에 실패하여 굶주려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도 건지셨고, 홍해 바다 가운데서도 건지셨고, 광야 40년 동안에도 그들을 친히 먹이시고 입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목자 되신 하나님, 이 큰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땅에 살면서도 가나안의 축복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위에 우상숭배로 삶의 모든 환경은 점점 파괴되어 갔습니다.
마침내 축복의 땅이 고통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스라엘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일용할 양식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축복의 땅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죽음의 사막일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산다고 해도 하나님이 인생의 목자가 되어 주시지 않으면 고난에 고통을 더하고 슬픔에 저주를 더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장은 광야에서 농사할 수 없는 이스라엘을 먹여 살리기 위함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장차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늘 문을 열고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께 비를 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비로 인하여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잔을 채워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로 나아가면,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잔은 넘치는 줄 믿습니다.
4. 셋째로, 그는 우리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언약이 있습니다. 이 언약을 통하여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어디서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인생에 예배가 중요합니까?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시고, 축복을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그분과 우리가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에게 구원의 감격과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로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늘 우리의 예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은혜 충만한 자의 삶은,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고, 그분의 은혜를 입으려고 이 예배를 기다리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시50:23)다고 마지막 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예배는 기쁨의 찬양과 감사가 넘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 넘치는 제사가 되는 줄 믿습니다.
5. 넷째는, 그는 환란 속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가 언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절실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 감당이 안 되는 그런 환란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응답받을 때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우리가 남다른 은총과 축복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부르다 목이 터지고 심장이 터져 죽을 공허한 이름뿐입니다.
갈멜산 위에서 비 오기를 기도하던 선지자 엘리야와 영적 대결을 벌이던 450명의 바알 신을 숭배하던 바알 선지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고 선언하였지만, 그들은 반나절을 불러도 응답이 없는 자기 신의 응답을 기다리다 못해, 예리한 칼로 자기들의 허벅지를 깊숙이 찔러가며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기도했지만, 마지막까지 응답을 얻지 못하자, 불로 응답받은 엘리야와 성난 군중들의 손에 붙잡혀서 기손 시내에서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상18:40)
과연 음란하고 도덕적으로 끝장이 난 소동 성에 심판의 불이 내릴 때도, 그 성안에 온갖 신들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우상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불 가운데서 구원하는 신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의 신음까지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라라”(렘33: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며 기도하실 때,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 도왔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환란 가운데에서도 기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고민과 낙심은 잘해도, 고난 가운데서 기도할 줄 모릅니다.
힘없고 어리석은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면서도,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기도로 구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환란과 고통 가운데서 우리가 사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것뿐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했습니다.
7. 맥추절은 처음 익은 열매인 보리단을 묶어 감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 귀한 절기는 신약 시대를 여는 성령강림절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맥추절에 이 지상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지상의 모든 교회의 생일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시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귀한 감사절을 통해서 주님의 몸된 이 교회를 세우고 지켜나가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천년 기독교회의 역사 속에서, 교회를 이 지상에 잉태시킨 엄청난 사건인 이 맥추절과 오순절로 이어지는 절기를 결코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맥추절을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엄청난 축복과 역사를 가져오는 절기로 나와 우리 자손들이 계속해서 지켜 나가는 영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맥추절은 고통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광야의 시련을 넘어 마침내 약속의 땅에서 얻은 첫 곡식 단을 껴안고 감격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쁨의 축제이며, 동시에 성령 충만의 역사를 통해 교회가 지상에 태어나고, 그리하여 회개와 구원의 역사를 가져온 영적 충만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승리를 맛보는 축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쏟아지는 바로 이곳에서 나오는 기쁨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이고 우리의 영원한 기쁨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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