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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신명기26:1-11)
고영수 2023-07-22 추천 0 댓글 0 조회 288
[성경본문] 신명기26:1-11 개역개정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신명기26:1-11/2023.7.23.오전)

 

1. 일본의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다까라즈까극단(宝塚歌劇団)에 어느날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출입하는 모든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붙어 있는 벽보를 주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추녀의 25가지 조건(ブスの25箇条)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웃지 않는다/ 예의가 없다/ 입은 항상 굳게 닫혀 있다/ 자신감이 없다/ 자신은 항상 정당하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한다/ 책임을 전가하는데 뛰어나다/ 늘 주어진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 충고를 듣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주위를 어둡게 만든다/ 문제의식이 없다/ 자신이 추녀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다까시로 게이(貴城けい)라는 여배우가 쓴 글의 일부분입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써서 붙여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이 대자보를 보면서 25개 전부가 자기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여기에 적힌 문제점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보자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만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문제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힘의 원동력이 되고 매력이 되며 행복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며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성공과 행복을 바라보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얻어야 할 우리가, 늘 세상에 대하여 염려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많은 소유를 늘리고, 더 확실한 미래의 보장을 위해 온갖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으려고 동분서주하며 산다면, 적어도 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염려와 고통과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은 맥추감사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이 무엇이며, 우리는 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며 사는 것이 참 믿음의 삶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밝히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기적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그 하나님의 손길은 어떤 손길입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한 대로 베풀어 주시는 축복의 손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의 원리나 핵심이 무엇인지 확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성경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비유 중의 하나가 결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결혼의 조건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랑입니다.

서로가 사랑해서 시작하는 결혼생활은 서로가 서로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헌신하지 않으면 그 결혼생활은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요즘의 결혼이라는 것이, 먼저 상대방에게 넌 날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연 알지 못하는 남남끼리 만나서 미래의 인생을 준비하려면 상대방의 무엇을 믿고 내 인생을 맡길 수 있겠느냐 하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먼저 상대방을 위해서 헌신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상대방의 헌신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한다면, 이것은 사랑의 결혼이 아니라 계약 결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약속 받고 결혼을 한다면,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거래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이것저것 해 주시면 충성하고 신실한 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일방적인 은혜와 구원에 감격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며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3.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신부가 신랑을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3:18-19절에 보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하면 그것으로 충분 것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결혼서약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그들에게 장래를 약속하면서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마가복음 1, 2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그의 소문을 듣고 또한 그의 하시는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를 때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나 결혼이라는 것도 계산하면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믿고 따라가다 보면 미래가 보이고 길이 열리고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도 인간의 삶도 원리는 똑같은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믿고 따라가는 것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믿고 순종함으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주시는 땅이라는 내용입니다.

2, 3, 9, 10, 15절의 말씀에서 계속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땅이나 재산을 소유하게 될 때,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하는 것은 소유주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땅의 소유주는 우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8장에 보면, 국가의 흥망성쇠와 국가적인 재앙도 하나님이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무엇을 얼마나 성취하고 많이 소유했건 상관이 없이 우리는 다 하나님 집의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3:23-24)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섬김의 도리를 다하고 난 후에 약속의 상급을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주님의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땅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5. 첫째는, 그 땅의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여호와의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 이라 했습니다.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는,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면 당연히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의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고려 시대부터 소작농이 있었는데, 이것은 땅의 주인이 노비나 다른 사람들에게 땅을 빌려주고, 그곳에서 수확한 것을 주인과 농부가 반반씩 나눠 갖는 방식인데, 나중에 땅을 빌려준 지주의 권리가 강화되면서 수확의 7~8할을 주인이 가져가고 나머지를 농부가 가져가다 보니 분쟁이 끊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1949년에 농지개혁법이 생기면서 소작농제도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만, 그 뒤로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소작농이 생겼고,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는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땅이 없는 이스라엘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면서 첫 소산물을 일부를 가져오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예식을 통해서 땅이 여호와의 소유임을 고백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이미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9) 고 하였습니다.

 

6. 그런데 본문 5-11절의 내용을 보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요,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한 절 한 절 말씀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5절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 민족은 그 출발이 방랑하는 아람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방랑한다는 뜻은, 소멸하다, 멸망하다, 길을 잃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고 보잘 것도 없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언약의 백성으로 큰 민족을 이룬 것입니다.

그야말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8:7)는 말씀 그대로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방 나그네로 비록 세상이 볼 때 연약하고 보잘것없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일본의 영적인 이스라엘로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6절에서는 애굽에서 이방 나그네로 당한 학대와 괴롭힘과 중노동에 시달림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망 없이 죽어가던 그들이라도 7절에 보니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고통과 압제를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 가서는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 다고 하였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 고통과 슬픔과 부끄러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당하는 고통을 보시고 직접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막막하고 욥처럼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도,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강한 손이 함께 하시고, 편 팔로 우리를 붙들어 보호하시고, 마침내 약속을 성취하는 축복의 장소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것이 9절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목자임을 믿습니다.

 

7.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10절에 보니, 소산의 맏물을 모아서 풍성함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의 행위는 입술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니, 그곳 토지의 첫 소산물을 종류별로 모아서 광주리에 담아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로 가져다가 제사장의 손을 빌려 제단 앞에 놓고 감사와 감격한 마음으로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구원의 은혜를 입고 축복을 받고 언약의 성취에 감격하는 하나님 백성 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사방을 밝히듯이, 구원의 감격과 받은 은총과 축복에 대한 감사를 11절에 보니, 가족은 물론이고 레위인과 나그네를 초청해서 함께 즐거워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개인이나 가족이나 나에게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들과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만나고 내일부터 영영 볼 수 없을 길가는 나그네까지 불러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흘러넘치는 풍성한 축복인 줄 믿습니다.

8:10절에 보면,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천국 잔치는 강권하여서라도 자리를 채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8. 본문에 계속해서 반복하는 내용이 "네 여호와께서""네게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것은 내가 지은 죄뿐이고, 나머지는 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축복도 구원도 은혜도 감사도 영원한 생명도,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근심하는 대신에 기뻐하고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의 일부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요즘은 너무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하다 보니 상대적인 박탈감, 상실감이 점점 커지고, 이틀 전에는 한국에서도 묻지마, 칼부림으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입니다.

비교하면 불평이 쌓이고, 있는 것으로 감사할 줄 모르면 불만과 낙심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는, 늘 나에게 최고의 것으로 베풀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약속하신 언약대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는 것은 그들을 축복하시기 위함이지만, 동시에 이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과 연약한 자들과 함께 기쁘하고 즐거움을 나누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도 낙심도 실망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면,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서 말씀을 통해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를 누리도록, 우리를 영육 간에 가장 귀한 것으로 영원토록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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