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27:1-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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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요단을 건넌 후에(신명기27:1-10/2023.8.6.오전)
1. 얼마 전에 송금하기 위해 돈을 들고 은행에 갔더니 긴 줄을 서 있었고, 오래 기다린 끝에 입금하는데, 1만 엔짜리 한 장이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니 돈에 기름이 조금 묻어 있었기 때문에 기계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뒤에는 많은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러 번 반복해도 소용이 없고 지갑에는 대체할 만한 돈도 없어서 그냥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아내에게 주면서 다른 돈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고, 오후에 다시 은행에서 송금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에는 아내가 통장과 돈을 주면서 나가는 길에 대신 입금해 달라고 해서 은행에 갔더니 또 입금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며칠 전에 제가 아내에게 바꿔 달라고 했던 그 기름 묻은 돈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더운 여름에 기름 묻은 만 엔권 한 장이 여러 번 사람을 괴롭히고 짜증 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소한 일을 두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이 지폐를 소중히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돈이 여기저기로 흘러 돌아다니면서 저에게까지 피해를 준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어찌 지폐에만 국한된 사안이겠습니까?
우리는 무심결에 아무 의도도 없이 하는 행동이라도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을 주고 심지어 큰 고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선한 행동을 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선행과 자랑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고통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는 완전할 수 없으며, 자랑할 것도 없고, 뽐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부끄러운 것이고 죄된 것이고 남을 고통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번째 선포하는 설교로, 모세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게 주는 유언과 같은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선택된 본문의 내용을 보면, 요단을 건넌다는 라는 표현이 3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정말 애굽을 벗어났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홍해 사건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니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바로 왕의 추격이 끝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광야 40년의 세월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며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전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요단강입니다. 이 요단 강을 건너야 약속의 땅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단이라는 이 지명은 애통한다, 흐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보면, 요단을 건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아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육체에 사로잡혀 살았던 나의 과거는 이 요단강에서 죽고, 이제부터는 구속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말씀에 붙들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과 광야 40년의 세월은 마치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품 안에서 지내는 세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단을 건너고 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이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스스로 행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두 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명령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그것은 첫째로 선포된 율법의 말씀을 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가르치며 행함으로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말씀이 곧 법이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 기뻐하시는 복된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누구나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말씀을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씀은 인생의 거울이 되어 우리 자신을 비춰볼 때 여기서 회개가 쏟아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산 간증이 우리 삶에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복된 교제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나없이 고통받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복된 관계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마귀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면서 죄에 빠짐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창3:18-19)이라 하였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저주받은 길이 열린 것입니다.
4. 이렇게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가지는 의문 중의 하나는, 왜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바른 대답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요셉의 고난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렸지만, 여기에는 야곱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미래 계획이 있었고, 그 아들 요셉을 축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내가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인내하면 반드시 요셉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마16:27)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 확신"(딤후1:12)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본문의 내용으로 하나님의 명령인 요단을 건너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성도가 이 요단을 건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광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단을 건너야 약속의 땅을 소유하고, 요단강을 건너야 하나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데,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육신의 원하는 바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에 기록된 축복의 약속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성도가 요단을 건너도록 하십니다.
어떤 이는 죽을병에 걸려서 고생하다가, 어떤 이는 사업의 실패를 통해서, 어떤 인생은 밑바닥까지 떨어져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한 후에 주님의 손을 잡고 요단을 건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려면, 세상에 사로잡혀 살았던 과거의 나를 버려야 하는데, 나를 버리지 못하고 고집쟁이로 살기 때문에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5. 사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인생의 짐이나 회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 누리는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주시는 것과 하나님만을 예배하도록 허락받은 이것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된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부모라도 멀리 떨어져 일 년에 한 번도 만나기 어렵다면, 당연히 부모보다는 다른 사람을 닮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를 통해서 만날 때마다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도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다는 이 말은 곧,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면 당연히 그분의 말씀을 우리의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법이 되고 기준이 되고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출6:7)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영원히 축복하시는 아버지가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아버지가 아들을 구원하신 것이고, 홍해에서 건지시며 광야 40년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왜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온갖 저주와 고통에 빠져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우리의 죗값으로 자기 아들을 대신 십자가에 내어 주셨고, 그의 보혈로 우리를 씻기시고 자신의 영원한 아들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복되고 놀라운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되었던 우리가 영원히 그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누리는 것을 너무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오직 믿음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고 하였고, 신약에서도 히10:39절에서 사도바울은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 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믿음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운 말씀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이 예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요단을 건너면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과,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7.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의 바벨탑이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혼란과 고통 속으로 빠져 들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여기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만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을 주시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신 이유는, 광야는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곳이요, 언약의 백성이 살아서는 안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단을 건넌 그곳에서, 약속의 땅에서 그 약속을 성취하며 영광을 누리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광야 생활로 만족하지 말고 언약의 성취를 위해 영적 요단을 건너 가기를 원합니다.
이 요단을 건너면서 옛 자아는 죽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백성으로 변해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그 명령과 규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인 명령과 규례를 지키며, 그 앞에 나아가 예배할 때,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고 그는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다함께 시103편 1-7절의 말씀을 봉독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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