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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할지니라(신명기27:11-19,26)
고영수 2023-08-12 추천 0 댓글 0 조회 286
[성경본문] 신명기27:11-19 개역개정

11.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멘 할지니라(신명기27:11-19,26/2023.8.13.오전)

 

1. 미국의 풋볼 결승전에서 판매하는 복권을 구입한 사람에게 추천 직전에 그 복권을 되 팔도록 하여 그 결과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복권은 1달러로 두 가지 방식으로 판매되었는데, 복권을 사는 사람이 번호를 고르게 하는 것과, 판매자가 번호를 지정해 주는 것이었는데, 그 복권을 되팔 때 그들이 받고 싶은 금액을 물었더니, 자신이 번호를 선택한 경우에는 그 복권의 평균 가격이 8.67달러였고, 판매자가 번호를 지정해서 판 복권의 가격은 평균1.96달러였다고 합니다.

1달러 짜리의 복권이 이렇게 되팔릴 때 나타난 가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당첨이 되는 복권이라도 내가 번호를 선택한 것은 당첨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남이 지정해 준 번호는 당첨 확률이 낮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남들보다 대중에게 더 좋게 더 높게 평가받기를 원하는 심리적 현상으로, 이것을 가리켜 통제감의 착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합니다.

이것과 비슷한 현상의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내로남불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외도라도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지가 바뀌면 생각이나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시험이 끝나거나 어떤 일을 어렵게 마무리하고 나면, 뒤풀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래서 함께 먹고 마시고 떠들고 돌아다니는 것을 젊음의 낭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중년들이 오랜만에 나들이하는 버스 여행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은 추태고 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도 버릇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허구적 독특성(False Uniqueness)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제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잘못된 감정에 몰입되어 혼자 만족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그 백성들을 향해 말씀을 선포하면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멘할지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성도는 설교자가 아멘을 강요한다고 그것이 싫어서 교회를 나오지 않기도 하는데, 모세는 아예 아멘을 명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아멘의 의미와 함께 이 아멘이 우리의 신앙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십계명을 다시 대하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그리고 공급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누릴 축복에 관해서도 많은 약속과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가로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러한 순종에 대한 마음과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본문에 나오는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이 아멘은 처음에는 감탄이 포함된 응답의 말이었습니다.

선포된 말씀에 대해 그렇다, 확실하다, 진실되다, 신뢰한다, 동의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 아멘이 신약교회의 예배에서 사용되면서 진심으로, 혹은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면서 아멘하는 것은, 그 말씀의 내용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되도록 내가 노력하겠다는 의미입니다.

 

3. 십계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도덕적인 것을 먼저 떠 올리게 되는데, 성경이나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십계명이라는 것은 도덕적인 요구사항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내 힘으로 지킬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홉가지 계명을 잘 지켜도 나머지 한 가지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나머지 열심히 지킨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십계명 앞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명령인 이 10가지의 계명을 나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모른채 하며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좋은 해결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받아들이는 십계명은 인간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착하고 도덕적이고 예의 바르게 살라는 그런 계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아 그분 안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바깥에서는 율법이 우리를 쫓아 오면서 이 십계명을 다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나는 지킬 힘이 없습니다.

분명히 아멘은 진실로 그렇게 믿습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의미로 했는데, 돌아보면 그렇게 아멘으로 화답한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말하기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일요4:13)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부끄러운 존재라도 도피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면 율법이라도 우리를 추격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율법의 완성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4. 마틴 루터는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585)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고 불릴 정도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 하였는데, 우리도 과거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함을 입고, 하나님만 섬기는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상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아멘하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부모를 경홀히 여긴다는 했는데, 경홀히 여기는 것은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의나 격식도 없이 부모를 무시하고 때로는 비난하거나 조롱하고 망신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사람 중에 대표적인 것이 노아의 아들 가나안입니다(9:18-27).

취하여 벌거벗고 누운 아버지를 보고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질 쳐서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숨겼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었고, 셈과 야벳은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저주라는 말은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덫으로 잡으며 묶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부모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부모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이 죄로 말미암은 저주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아멘하는 것입니다.

 

5. 17절에 보니 이웃 사람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웃의 권한이나 재산 등에 대한 권리를 제 마음대로 침해하고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도적질 하지 않았고, 속이지도 않았다고 누구도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고의가 아니라도 부지중에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으니 이것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입니다.

18절에서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의로 남을 괴롭히고 장난이나 악의로 어려움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친구 사귀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고전15:33절에 보면,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 다고 하였고, 또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19절에 보면, 객이나 고아나 과부는 사회적인 약자들입니다. 보호하고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억울하다는 말의 의미는, 공정함을 잃은 것으로 재판에 관한 용어입니다.

곧게 된 것을 억지로 구부리고 저울을 고의로 한쪽으로 기울이게 하고, 어떤 물건을 길게 늘어뜨리는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6. 요즘은 한국 뉴스를 보면 화가 날 때가 많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이유는 뉴스의 초점이 된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 때문입니다.

딤전4:2절에 보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저주를 준비하셨고, 심판으로 멸망에 이르도록 계획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26절의 말씀에 기록된대로, 말씀에 아멘해야만 합니다.

이 아멘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표시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과 불순종은 강요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순종하여 선을 심어 축복으로 거두든지, 불순종으로 악을 심어 저주를 거두든지 그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이스라엘처럼 선포된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7.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시대는 하나님은 세상을 통치하시고 인간은 말씀에 순종하는 존재로 여겨졌는데, 그 이후로는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호모 데우스(Homo Deus), 미래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이 문명의 힘으로 하나님이 만든 지구를 정복하고 나서 이제는 무엇을 추구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인공지능, 유전공학, 나노기술로 천국을 만들어 낼지 지옥을 만들어 낼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하나님의 창조 질서조차 외면하는 이 시대가 양심의 화인을 맞은 이 세상 사람들을 이끌고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디로 가겠습니까?

3장에 보면, 이들은 다 치우쳐 무익한 자가 되었고,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며, 그래서 파멸과 고통이 그들이 가는 길에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말씀대로라면 이 지구촌의 파멸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 아멘으로 화답함으로 나의 주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서 이 땅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성취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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