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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신명기30:11-20)
고영수 2023-10-14 추천 0 댓글 0 조회 239
[성경본문] 신명기30:11-20 개역개정

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은 선택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신명기30:11-20/2023.10.15.오전)

 

1. 현대인에게도 하나님이 필요한가?라는 책을 쓴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대인 랍비 헤롤드 쿠시너는 말하기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신의 지문이 묻어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 삶에 쫓기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이라도 내가 하나님의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만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적인 자세가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태어난 아들이 생후 8개월 만에 체중이 더는 늘지 않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의사는 이 아이는 선천성 조로증이고, 노화의 속도가 빨라서 키는 90센티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고, 10대 후반에는 노인이 되어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나같이 경건하고 착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많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의사의 말대로 아들은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이 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4년 후에 그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생길 때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말하기를,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댓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묻지 말고,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물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불행을 극복해 나아갈 방법과 힘을 주시기 때문에, 그런 고난을 통해서 감사하고 용서함으로 그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신명기나 출애굽기 같는 내용을 강해 하다가 보면, 말씀이 어렵다는 그런 반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일어날 때, 먼저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말씀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 등으로 인해 닫혀 있다면, 아무리 귀한 말씀이라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도 않고 깨달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평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을 하며,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서슴없이 행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나를 위해서 아들의 생명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마음이 열릴 것이고 일단 마음이 열리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 처음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내린 명령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 즉 우리의 입에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말씀이 어렵고 순종하기 힘든 계명이 아니라 언제든지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생활 습관이라는 것은 처음에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면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실패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넘어가면, 어떤 것이든지 결단과 반복을 통해서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생활의 리듬이 깨어져서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3.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고 하면서, 25절에 가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강해집니다.

본인이 그것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이나 삶이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살면 자꾸 힘이 빠지고 낙심이 되다가도, 말씀을 들여다보면 새 힘을 얻게 되고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세상은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확신과 소망을 주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회복할 수 있고,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의 말씀에서 말씀이 내 입에 있고 내 마음에 있다고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이 말씀은 기쁨을 주고 새 힘을 주고 은혜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우리가 정욕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고통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이것은 우리 인생에 너무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자신의 고집과 정욕을 버리지 못하면 반드시 유혹을 받게 되고 그래서 세상 쾌락을 좇아가다 보면, 대부분 우상숭배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마지막에 있는 20절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에 힘쓸 것인지를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우리가 힘쓸 것의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셋째는,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탕자가 처음에 택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떠나서 독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 마음대로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선택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3절에 보면, 짧은 시간에 허랑방탕하여 상속받은 모든 재산을 다 낭비하고, 16절에 보면, 돼지가 먹는 나무의 열매조차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믿고 첫 번째로 선택한 결정은 제 인생을 가장 처참한 상태로 몰아가고 말았습니다.

어린 자식이 부모를 떠나 제대로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거나 의지하지 않고는 바로 살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두 번째로 선택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온갖 부끄러움과 자존심을 다 버리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19절에 보니 자신을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 집에 있는 품꾼, 즉 종 중에 하나처럼만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제힘으로 살아보니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 깨달은 것입니다.

집을 떠나고 보니 집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것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산비탈에 천막을 치고 살아도 부모가 있는 자녀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너무 다릅니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기도와 기대가 인생에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탕자는 혼자 살아보니 잘못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새의 큰 실패를 경험해 보니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종이 되어서라도 양식이 풍부한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도 첫 번째 선택이 실패로 끝나고 내 인생을 회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떨어지더라도, 두 번째 선택인 하나님 아버지께로 회개하고 돌아가면 24절에 말씀대로,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면서, 아버지가 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준 것처럼, 아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줄 믿습니다.

 

6.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서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가 어떤 것을 선택하던지 그 결과는 너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조금만 자라도 자기 생각, 자기 취향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의 간섭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에게는 지능과 경험이 미숙하다 보니 유혹에 약하고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위기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잔소리하고 간섭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어주면 해 오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있는데, 숙제해 오는 학생 중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다른 답안지를 보고서 베껴 오는 학생과, 문제를 놓고 스스로 풀기 위해서 씨름하는 학생입니다.

이 중에는 누가 시험 때에 좋은 결과를 얻으며, 누가 더 실력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문제를 두고 씨름하는 학생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만 아멘하고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사람과,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고민하면서 말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얍복 강의 야곱처럼 씨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누가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밤새 천사와 씨름한 야곱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32:28).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는 사람이 없는 기쁨과 영광은 바로 이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제의 우리의 선택이 오늘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분명한 지침을 주셨는데, 그것은 19절 끝에 보니, "내가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고집쟁이들은 하나님도 우리 육신의 부모처럼 간섭한다고 싫어할지 몰라도, 아버지의 사랑은 자녀가 아무리 많아도, 그 가운데 한 사람도 다치거나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다 좋은 것을 선택하고,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복된 것을 선택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탕자가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심령 속에 말씀의 불씨가 살아 있었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살기 위해서, 아니 영원히 살기 위해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영원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선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꿀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바꾸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래서 나는 연약하고 부족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를 사랑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이 일에 더욱 힘써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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